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에 출연하기 전까지 안철수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유복한 환경에서 나고 자라 우리나라 극소수 수재들만 들어갈 수 있다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90년대 초반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하여 제법 큰 사업체를 경영한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으니까요.

똑같은 출발선상에서 뛴다고 하나, 실상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체격, 체력, 뛰는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불공정한 게임. 그 게임에서 태생부터 에이스일 줄 알았던 안철수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해도 반에서 중간 정도하는 '보통 학생'이었다는 발언은 자식의 성적을 올리는 방도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는 대한민국 상당수 학부모들의 귀를 쫑긋하게 했습니다.

<무릎팍도사> 출연 때도 화제가 되긴 했지만, 오늘날의 안철수를 만든 힘은 다름 아닌 독서입니다. 어린 시절 부모의 강요에 의해 장시간 책상 앞에 앉아 시키는 공부만 열심히 하는 대신 도서관에서 지내면서 다른 세계를 폭넓게 체험했던 그 소중한 시간들이, 의대를 졸업하고도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고 이 땅의 청춘들에게 인생의 지혜를 일깨워주는 멘토로도 나아갈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던 것이죠.

그런데 책의 줄거리와 내용, 그리고 주요 등장인물만 파악하기 바쁜 보통 사람들의 책읽기와는 달리, 어린 시절 안철수가 책을 읽었던 방식은 다소 독특합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는 데 급급해하는 대신, 인물의 생각과 감정에 집중하면서 'Sympathy(동정, 머리로 하는 공감)'가 아니라 'Empathy(가슴으로 하는 공감)'를 했던 안철수는 그때부터 타인의 행동과 그 사람 자체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이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하는 세계를 '책'을 통해 배우고 익혀온 안철수는 스스로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할 수 있었고, 그동안 어떤 선택 기회가 주어지든지 타인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판단과 직관에 의해 움직여왔습니다.

어릴 때부터 '책'과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에 대한 '자각'이 있었던 안철수와 달리, 대부분의 대한민국 학생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어야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지만, 대부분의 경우 '책'에 적혀있는 검은 글자 읽기에 급급했습니다. 책을 읽더라도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기보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유식함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활용합니다.

더욱 중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입시 준비’라는 이름하에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보지도 못하는 나날들을 보내게 됩니다. 가끔 '책'을 읽어야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교과서와 문제집이고, 그 외의 양서들도 읽고 싶어서 선택하기보다 훗날 입시를 위한 '논술' 대비로 그 마저 '교과서'와 같은 용도로 활용됩니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 판단하기보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공부에 전념하고 진로를 결정했던 학생들은 그저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공부하면 인생이 순탄하게 잘 풀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우수한 성적으로 소위 '명문대'에 진학하고 부모님이 원하는 전공을 택하는 행운을 얻은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때부터 진지한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이 학문의 미래 비전에 대한 회의와 내가 이걸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

하지만 이런 절망과 고민에 빠진 청년들과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대화를 들어주고 희망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저 보통 학생들과 차원이 다른 소수의 '성공 표본'을 보여주며 "이 사람들은 이런 힘든 상황에서도 성공을 일구었는데, 너희들도 꾹 참고 남들보다 능력을 더 쌓으면 잘 살 수 있다"면서 다그치기에 바쁩니다.

이에 많은 학생들은 맨 꼭대기의 아련한 한 줄기의 빛을 보고 이 칠흑같이 어두운 동굴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 대신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 전념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아닌, 세상이 우러러 보는 분야를 택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너도나도 똑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게 됩니다. 다른 이들보다 더 좋은 스펙을 쌓아야 더 빨리 동굴에서 빠져나올 수 있기에 같이 공부하는 동급생들은 '경쟁자'이자 '라이벌'일 뿐입니다.

자꾸만 남이 쌓은 스펙과 자신이 쌓은 결과를 비교하게 되고 뒤쳐지지 않기 위해 더더욱 '경쟁'의 '경쟁'에 몰입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는 점점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이 치열한 전투에서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이니까요.

허나 정작 동굴에서 빠져나가는 이는 얼마 되지 않고, 대부분의 도전자들은 자기가 정말로 무엇을 잘하고 무엇에 필요한 인재인지 인식하지 못한 채 '낙오자' 혹은 '패배자'라는 딱지를 붙인 채 깊은 절망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청춘의 특권을 포기하고 안정적으로 먹고살기 위해 '스펙'에만 전념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과 실패에 대한 '자괴감'입니다. 이에 청년들의 자살율은 높아질 수밖에 없고, 지금 상황도 불안한터라 미래까지 생각해야 하는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잘하는지 알지 못한 채, 그저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무조건 좋은 대학을 가야한다며 쉬지도 않고 공부만 해야 하는 스트레스에 원형 탈모가 생겼다고 <안녕하세요>를 통해 하소연하는 14세 소녀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 결코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조기 교육과 선행학습만이 아이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믿는 풍토가 만연한 대한민국 교육 현실에서,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로망 '서울대 의대'로 진학한 보통학생 안철수의 성공 가도는 결과만을 놓고 보면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안철수에게 집중해야 하는 것은, 그가 조만간 대선에 출마하는가 혹은 그가 어떤 업적을 이루었는가 등 단순히 드러난 '결과'가 아닙니다. 의사로, 사업가로, 대학교수로 살면서도 다른 이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이해심을 가지게 된 '과정'이지요.

안철수는 어떻게 해서든 남을 이겨야 살아남는다는 게임의 룰을 먼저 배웠던 사람들과는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임이 확실합니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해왔고, 결과만이 아닌 과정으로 자기와 다른 타인을 이해하는 법을 먼저 배웠던 안철수. 유력한 대선 후보로 평가하기 이전에 인간 안철수는 지금 무수한 경쟁과 입시 스트레스에 아파하는 교육 현장의 구성원과 사회가 주목해야 할 모델이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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