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의 눈물은 눈물보다 한숨이 더 나왔다. MBC 명품다큐 눈물 시리즈로서는 조금 다른 자세를 취한 남극의 눈물은 뭔가 쇼킹한 장면보다는 생각할 기회를 주고자 했다. 남극의 실질적인 지배자 펭귄을 대하는 다큐팀의 낮은 자세는 비단 추위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황제펭귄은 꽁꽁 얼어붙은 남극에서 300일을 버티는 다큐팀에게 자연의 경탄을 넘어 존경심마저 심어준 것은 아닐까 싶다. 그저 단순하게 종족번식의 본능이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 없는 믿기 힘든 일들이 황제펭귄들에게 벌어져왔다.

부모는 언제나 자식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자세를 갖추고 있다. 그것이 순간적으로 선택해야 한다면 어느 부모라도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한 넉 달간의 지독한 인고라면 좀 다르다. 넉 달 간을 먹지도 않고, 혹독한 남극의 추위를 맨몸으로 견뎌야 하는 일이라면 아무리 부모라 할지라도 자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모든 동물의 세계가 그러하듯이 번식을 위해 남극대륙 깊숙이 찾아온 황제펭귄 수컷들은 맹렬히 자기 짝을 찾는다. 결코 쉽지 않은 쟁탈전을 통해 짝을 찾았고, 마침내 사랑을 나눌 수 있다. 그리고 그 한 번의 사랑으로 수컷 황제펭귄은 아주 길고 험난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자식에 대한 지극정성은 지구상에 황제펭귄만한 동물은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 황제펭귄의 피눈물 나는 자식사랑은 본 것만 해도 행운이자 행복이었다.

여기까지는 방송을 보면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300일의 남극 취재에는 이만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펭귄들과 정면으로 눈을 맞대고 촬영한 카메라 감독들의 마음은 다큐에 다 담겨지기 어렵다. 작가가 따로 있어서도 그렇겠지만 카메라 감독은 말이나 글보다는 아무래도 그림으로 그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 우선인 탓일 것이다.

북극으로 시작해서 아마존을 거쳐 남극까지 스스로를 학대하듯이 오지 촬영을 도맡아 해온 MBC 다큐팀의 영상담당 송인혁 카메라 감독의 화면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이 책으로 옮겨졌다. 출판사 미래의 창이 송인혁 감독의 사진과 작가 은유의 글로 정리한 <황제처럼>.

송인혁 감독이 직접 쓴 글이었다면 더 좋았을 수도 있겠지만 굳이 작가의 에세이로 대부분을 채운 것은 남극의 황제펭귄이 주는 인간에 대한 교훈이 너무 버거웠을 수 있다. 다소 거친 사유를 하는 사람이라면 대단히 정제된 작가의 에세이가 너무 지당한 말씀인 것이 불만일 수는 있다. 그렇지만 에세이에 담긴 글들은 차분하고도 뜨겁게 황제펭귄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다행(?)히 송인혁 감독의 이야기인지라 당연히 그림이 더 많고, 활자는 상대적으로 적다. 그렇다고 그림과 글을 빨리 읽고 페이지를 넘긴다면 그것은 너무 쌀쌀맞은 독서다. 글과 그림이 부족해서 그렇게 편집했을 리가 없다. 그 많은 여백에 독자의 상상과 생각을 담으라는 뜻이다. 천천히 읽고 느긋하게 상상하다보면 한여름의 불볕더위도 조금은 속일 수 있다.

그리고 무릎팍도사에서도 듣지 못한 송인혁 감독의 내밀한 토로도 꽤나 흥미롭다. 그의 이야기를 듣자면 다큐 바깥의 또 한 편의 다큐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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