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장학회 비판 기사가 부산일보 지면에 실린 것을 이유로 이정호 편집국장에 대해 대기발령 조치를 단행했던 부산일보 사측이 이번에는 '정수장학회 사회환원'을 촉구하는 외부 기고가 지면에 연재되는 것을 문제삼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이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정수장학회는 부산일보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으며, 부산일보 구성원들은 대선을 앞두고 정수장학회와 부산일보의 일방적 관계가 편집 방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민주적 사장 선임제도를 요구하는 등 '정수장학회 사회환원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부산일보 노조는 내달 20일 새누리당 전당대회를 지켜본 뒤 파업 돌입 여부를 최종 결정할 계획이기도 하다.

▲ 13일자로 업무가 정지된 이정호 편집국장(왼쪽)이 이호진 노조위원장(오른쪽)과 함께 부산일보 사옥 앞의 '열린 편집국'에 앉아있는 모습. ⓒ언론노조

부산일보 사측은 지난해 11월 정수장학회 비판 기사가 부산일보 지면에 실린 것을 이유로 이정호 편집국장에 대해 두 차례의 대기발령 조치를 단행한 데 이어 법원에 '직무수행 및 출입금지 가처분'까지 신청했으며 지난 11일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짐에 따라 13일자로 이정호 국장은 국장직에서 물러난 상황이다. 이정호 국장은 "내달 24일로 예정된 '대기처분 무효소송'을 준비하겠다"며 부산일보 사옥 앞에 외부 집무실을 차렸으며, 현재 부산일보 편집국은 이양삼 부국장 대행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16일 오전, 부산일보 경영진은 2005년 국정원 과거사위에서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부일장학회 헌납사건' 조사를 담당했던 한홍구 교수의 정수장학회 관련 기고가 부산일보 지면에 실릴 계획이라는 편집국의 보고를 받은 뒤 긴급 임원회의와 국실장 회의를 소집했으며 이후 국실장들과 함께 편집국을 찾아가 "오늘 신문에서 빼고, 오후에 대화를 통해 결론을 내리자"고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편집국에 공문을 보내 "특정세력의 일방적 주장을 담은 내용이 신문에 게재될 경우 본사는 물론 정수장학회에 대한 명예를 크게 훼손하는 것"이라며 "사장 지시를 어기고 지면에 게재할 경우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함을 통보한다"고 밝혔다.

▲ 16일 부산일보 홈페이지에 실린 한홍구 교수 기고 1회 캡처.
이에, 편집국 구성원들이 "이미 전체 부팀장의 의견을 물어 (기고를 연재하기로) 결론난 상황이므로 (경영진의 제안을) 수용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하자 한홍구 교수의 기고는 16일, 17일자 부산일보 지면에 무사히 실리게 됐다. 그러나, 경영진이 공문을 통해 "지면에 게재할 경우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밝힌 만큼 향후 징계조치 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홍구 교수의 정수장학회 관련 기고는 매주 2회, 총 10회 예정돼 있다.

이와 관련해, 부산일보 노조는 17일 특보를 내어 "사측이 기고 시리즈에까지 촉각을 세우는 것은 최근 정수장학회 문제가 다시 이슈로 부각되기 시작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부산일보가 편집권 독립보다는 재단의 눈치를 본다는 사실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선 부산일보 총무국장은 18일 <미디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지금 편집국이 완전히 따로 가고 있다. (경영진의 뜻과는) 전혀 다르게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라며 "(한홍구 교수 기고와 관련해 향후 어떻게 책임을 물을지는)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조선 국장은 '경영진이 정수장학회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노조의 비판에 대해서는 "노조의 생각일 뿐"이라며 "이미 편집국은 독립을 누리고 있는데, 뭘 더 독립해야 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