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로마시대 호민관쯤으로 여기는 박근형의 말은 현실을 투영하는 아픈 사실이지만 진실은 아니다. 쿠데타와 독재 그리고 정경유착으로 얼룩진 한국 현대정치사가 만든 질곡일 따름이다. 또한 가진 자의 오만이다. 그런 오만과 착각을 깨뜨린 것은 강동윤 동영상이 공개된 이후 만사를 제치고 투표소로 나선 국민들이며, 91.4%의 경이적인 투표율이었다.

결국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된 강동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쇠고랑뿐이었다. 백홍석이 원했던 대로 황반장은 백홍석의 두 팔에 채웠던 수갑으로 강동윤을 체포했다. 그 전에 서 회장은 전세기를 대기시켜놓고 도피를 권유했지만 강동윤은 모든 것을 단념했는지 마지막까지 초라해지는 꼴은 피했다.

그리고 한오그룹에 대한 모든 비밀을 묻어버리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 약속으로 강동윤은 아내 서지수를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한때나마 그를 지지했던 국민들에 대한 마지막 임무마저 저버렸다.

그렇지만 부정한 권력의 탄생을 국민의 힘으로 막아낸 것은 아무리 드라마라 할지라도 의미가 매우 크다. 그리고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절대적인 국민의 힘 91.4%에는 비밀이 담겨 있었다. 거꾸로 하면 4.19가 된다는 점이다. 미완의 혁명이었던 4.19를 완성시킬 희망의 숫자가 바로 투표율 91.4%라는 작가의 간절한 소망이 읽혀지는 눈물겨운 비밀이다.

더욱이 올해 대선의 유력한, 강동윤만큼은 아니어도 어쨌든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 쪽에서 5.16이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망발이 나오는 시점에서 국민이 이기는 숫자에 4.19가 등장한 것은 천기누설이나 다름없는 우연이다. 그러면서 화면에는 젊은이들의 투표장면을 더 많이 잡았다. 투표율 91.4%의 희망은 젊은 층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을 때 가능한 수치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이 결말을 결코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투표결과를 본 박근형의 대사에 담겨 있다.

“이 나라 백성들 맘을 우예 알겠노. 4.19가 일어났을 때는 민주주의다 뭐다 그래 난리를 치더만, 한 해 뒤에 5.16이 일어나니까 민주주의보다 경제발전이 중요하다고 난리를 쳤다 아이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게 이 나라 백성들의 맘인기라”

이 대사야말로 작가가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지막 말일지도 모른다. 1960년대는 진짜로 먹고 살기 힘들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2012년의 대한민국은 안녕하실까? 불행하게도 안녕치 못하다.

서 회장이 자신에게 고자세인 당선자를 혼내줄 요량으로 아들에게 당선자 오찬에 회장이 아닌 사장급을 보내고, 지방의 중요 공장을 중국으로 옮긴다고 알리라고 하고, 자사 경제연구소의 새해 경제지수를 조작해서 발표하라는 지시를 한 것은 그것들이 국민들에게 먹히기 때문이다. 이 대사를 쓴 작가의 의도는 더 이상 속지 말라는 뜻이다. 쉽게 이상을 버리지 말고, 조급하게 실망하지 말라는 뜻도 될 것이다.

선거는 더 이상 훌륭한 지도자를 뽑는 아름다운 행사가 아닐 수도 있다. 최 검사의 말처럼 단지 나쁜 놈을 걸러내는 소극적인 제도로 전락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거기에 있기에 우리들에게 추적자가 제시한 91.4%는 단순히 기적이 아닌 국민에게 요구하는 양심의 숫자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추적자 종영일은 제헌절과 겹친다. 이 또한 절묘한 우연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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