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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연봉 20억 받을때 난 비참한 생활…죽기전 한 풀고 싶어"[단독인터뷰] '정수장학회 원소유자' 고 김지태씨 미망인 송혜영 씨
곽상아 기자 | 승인 2012.07.16 07:24

"(정수장학회는) 개인의 것이 아니고 공익법인인데, 제가 이사장을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관계없는 제가 이사장을 관두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는 것인가요?" 지난 10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은 '아킬레스건'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해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며 일관된 단호함을 보였다. 2005년, 2007년 두 차례 '국정원 과거사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와 '진실 ·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강제헌납"이라고 결론내렸음에도 이는 '정치공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영장도 없이 끌려갔던 1962년의 기억

   
▲ <미디어스>는 정수장학회 창립 50주년을 하루 앞둔 13일, 고 김지태씨(전 삼화고무 회장) 미망인 송혜영씨를 만났다. ⓒ곽상아

지난 14일은 정수장학회 창립 50주년 기념일이었다. 부일장학회가 강제로 국가에 헌납돼 정수장학회로 넘어간 지 벌써 반백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미디어스>는 정수장학회 창립 50주년을 하루 앞둔 13일, 고 김지태씨(전 삼화고무 회장) 미망인 송혜영씨를 만났다. 1962년 송씨는 남편인 김지태씨가 일본에 가 있는 사이 김지태씨의 귀국을 종용하기 위한 인질용으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1달 반 가량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가슴 속에 피맺힌 한이 있다"는 송혜영씨는 50년 전 영장도 없이 새벽에 끌려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새벽에 갑자기 두 사람이 찾아왔어요. 중앙정보부에서 왔다고 하더군요. 영장도 없이, 다짜고짜 '할 이야기가 있으니 가자'면서. 무슨 죄목인지도 모른 채 중앙정보부 부산지부에 끌려가야 했지요. 아침에 도착했었는데, 점심이 지나도록 굶기면서 그냥 기다리게 하더니 오후에는 형무소에 집어넣었어요. 제가 회장님(남편인 고 김지태 회장을 의미)과 독일여행에서 기념으로 사가지고 온 다이아반지와 카메라에 대해서 '밀수'라고 하면서…. 정말 기가 막혀서…. 그때 당시 장신구 하나 정도는 승낙됐기 때문에 저 역시 손에 낀 상태에서 (세관원에게 반지를) 보여주었고 그게 자동 신고되는 거였거든요.

이후에 제 재판이 시작됐고, 세관원도 재판에 불려왔는데 그 사람이 뭐라고 하겠어요? 당연히 '정상통과된 물건이고, 밀수가 아니다'라고 하지요. 그런데 며칠 있다가 그 사람이 세관원 자리에서 해고되더군요. 그 가족은 어떻게 됐을까요? 참 그때는…기막히는 일이 많았지요. 제가 그때 감옥에서 한달 반 정도 있었어요. 회장님은 건강이 안좋아 일본에서 치료중이셨는데, (제가 인질로 잡혀있으니까) 귀국했고, 귀국하자마자 중앙정보부에 끌려갔지요. 그후 저는 사흘만에 풀려났구요…."

박근혜가 연봉 20억 받는 사이, 돈 되는 것 다 팔아 생활비 충당

   
▲ 송혜영씨가 남편인 고 김지태씨가 남긴 수첩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 ⓒ곽상아
사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9년 10월 26일 갑작스럽게 사망했을 당시 김지태 회장 측은 '이제는 부일장학회를 돌려받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강탈한 장본인이 죽었으니까 조만간 되찾게 될 줄 알았다"는 것. 그러나, 상황은 유족들의 바람과 정반대로 흘러갔다. 뒤이어 들어선 전두환 정권은 5.16장학회(부일장학회)를 고 김지태씨 가족들에게 돌려주기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남은 가족들에게 '사유재산'으로 안겨주었다.

"절망했습니다. 박근혜 의원은 김 회장님이 '자발적으로 장학회를 기증한 것'이라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예요. 회장님께서 장학회에 대해 큰 애정을 가지고 좋은 일도 많이 했는데, 이렇게 강도질할 수 있는 건가요?

정수장학회는 지난 50년간 3만여명에게 장학금 혜택을 주었다고 하는데, 왜 남의 돈을 뺏어서 장학금 준다고 생색을 내는 걸까요? 부일장학회는 1년에 3000명씩 장학금을 주었고, 그걸 50년으로 환산하면 15만명이에요. 만약 부일장학회가 계속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훨씬 더 많은 학생들이 장학금 혜택을 받지 않았겠습니까?"

정수장학회가 사실상 박근혜 의원의 사조직으로 전락해가는 사이, 장학회의 원 소유자였던 김지태씨의 미망인 송혜영씨는 힘겨운 삶을 살아가야 했다고 한다.

"가지고 있는 것 중에 돈 되는 것은 모두 팔아서 생활비로 써야 했어요. 하도 생활이 힘들어서 62년에 박정희 정권이 '밀수죄'라고 했었던 다이아반지와 카메라도 다 팔아서 생활비로 썼어요. 그 물건들 때문에 난생 처음으로 형무소까지 갔었고 온갖 고초를 당했기 때문에, 웬만하면 팔지 않으려 했었는데…생활이 곤란해서 팔지 않을 수 없었지요….

지금도 생활이 매우 힘들어요. 위수술, 뇌수술 등 큰 수술을 5번이나 해서 건강도 안좋은데 병원비도 없고. 택시 탈 돈도 없어서, 65세 이상이 사용할 수 있는 무료 지하철 표를 이용하면서 다닙니다. 그런데…저와 달리 박근혜 의원은 정수장학회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연봉으로 20억 넘게 가져가지 않았나요? 이게 정상적인 것인가요?"

"박근혜 측이 정수장학회 털고간다"고? 정치적 쇼다

박근혜 의원 측이 대선을 앞두고 고 김지태씨 유족과 접촉하는 등 '정수장학회' 문제를 털고 가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으나, 송혜영씨는 이 보도에 대해 "전혀 사실 무근의 보도"라며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박근혜 의원 측에서 전혀 연락온 바가 없다"며 "박근혜 의원이 실제로 유족들과 논의한 것도 없으면서 마치 해결의지가 있는 것처럼 정치적 쇼를 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는 것.

"만약 우리와 접촉을 했다면 (대선출마를 선언할 때) 어떤 여지가 있었을 텐데,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지 않았습니까? 박근혜 의원이 대통령이 되어서 새 시대를 열겠다고 하는 걸 보면서 해묵은 정수장학회 문제도 잘 해결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출마선언날 밝힌 내용을 보고 대단히 실망했어요.

부디, 박근혜 의원이 저희 유족들의 뜻을 헤아려 주셨으면 합니다. 재산을 강제로 헌납당한 이후, 저는 생활비 걱정을 하면서 사는데…. 계속 이러는 것은 인간된 도리가 아니지 않아요?"

송혜영씨는 '사회환원'이라는 김지태씨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서는 "박근혜 의원 측 이사진은 전부 물러나고, 예전의 부일장학회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송씨는 지난 6일 차남 김영우씨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박근혜 전 대표의 사과도 아니고, 최필립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진의 강제퇴진이나 그런 게 아니다"라며 "유족들이 추천하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사들이 장학회를 운영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밝힌 것에 대해서는 "차남의 의견일 뿐 유족 전체의 뜻이 절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현재 차남이 가족들과 동떨어진 생각을 혼자서 하고 있다. (차남을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이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차남 한 명의 말만 듣고 '유족의 뜻'이라고 보도해선 절대 안 된다"는 것.

마지막으로, 송씨는 "박근혜 의원이 좋은 일 하는 셈 치고, 이제 그만 정수장학회를 유족들에게 돌려줬으면 한다"며 "내가 죽기 전에는 반드시 부일장학회를 되찾아서, 남은 가족들끼리 '사회환원'이라는 회장님의 유지를 받들고 싶다"고 호소했다.

"제 나이가 80을 넘겼습니다.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병 투성이인데…. 제가 굉장히 한이 많은 사람입니다. 죽기 전에 한 좀 풀고가고 싶어요. 돌아가신 회장님께서 부일장학회를 되찾고자 얼마나 애쓰셨는지 몰라요. 죽어서라도 '영감, 생전에 그렇게 되찾고 싶어하던 부일장학회를 드디어 원상복귀시켰어요. 좋지요?'라고 말할 수 있도록이요…. 아버지가 한 나쁜 짓을 딸이 바로잡는다면, 아버지도 살고 자기도 사는 길이 될 텐데 왜 저렇게 붙들고 있는 건지 정말 도통 이유를 모르겠네요…."

곽상아 기자  nell@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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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jade 2012-08-24 14:00:37

    그 다이아반지를 팔았다구요? 그럼 한 10억을 되었을 건데.... 아마 62년도에 가지고 온 자그만한 반지가 7캐럿 짜리이거든요. 7캐럿 다이아라 보기만 해도 좋을텐데....   삭제

    • ㅋㅋㅋ 2012-07-17 09:19:4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262&aid=0000001217
      http://blog. joinsmsn.com/media/folderlistslide.asp?uid=cjh59&folder=27&list_id=9463619

      나석주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 사건


      나석주 [羅錫疇, 1892~1926.12.28]
      [출처] 나석주 [羅錫疇 ] | 네이버 백과사전

      한말의 독립운동가. 의열단(義烈團)에 입단하여 식산은행에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인들을 죽였다. 동양척식주식회사에도 투척하였으나 불발하여 조선철도회사에 가서 일본인들을 저격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나석주 [羅錫疇 ] | 네이버 백과사전


      황해도 재령군(載寧郡) 북률면 진초리에서 출생하였다. 명신학교(明新學校)에서 2년간 수학하고, 23세 때 중국 지린성[吉林省] 북간도(北間島)로 망명, 4년간 신흥무관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귀국하여 항일공작원으로 일하였다.

      3 ·1운동 후 군사자금을 모금하여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내고, 동지를 규합하여 황해도 평산군 상월(上月)주재소의 일본경찰과 면장을 살해하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경무국(警務局) 경비원으로 일하였고, 허난성[河南省] 한단[邯鄲]군관학교를 졸업한 후 중국군 장교로 복무하다가 의열단(義烈團)에 입단하였다.

      1926년 한국을 착취할 목적으로 설립된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와 식산은행(殖産銀行)을 파괴하기 위하여 국내에 잠입하였다. 그해 12월 28일 식산은행에 폭탄을 던져 일본인들을 죽이고 이어서 동양척식주식회사 사원들을 사살한 후 폭탄을 던졌으나 불발하자, 다시 조선철도회사에 가서 일본인들을 저격하였다. 추격하는 경찰과 접전, 일본경감 다하타 유이지[田畑唯次] 등을 사살한 후 지녔던 총으로 자결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나석주 [羅錫疇 ] | 네이버 백과사전   삭제

      • ㅋㅋㅋ 2012-07-17 09:17:13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262&aid=0000001217
        http://blog. joinsmsn.com/media/folderlistslide.asp?uid=cjh59&folder=27&list_id=9463619

        나석주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 사건


        나석주 [羅錫疇, 1892~1926.12.28]
        [출처] 나석주 [羅錫疇 ] | 네이버 백과사전

        한말의 독립운동가. 의열단(義烈團)에 입단하여 식산은행에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인들을 죽였다. 동양척식주식회사에도 투척하였으나 불발하여 조선철도회사에 가서 일본인들을 저격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나석주 [羅錫疇 ] | 네이버 백과사전


        황해도 재령군(載寧郡) 북률면 진초리에서 출생하였다. 명신학교(明新學校)에서 2년간 수학하고, 23세 때 중국 지린성[吉林省] 북간도(北間島)로 망명, 4년간 신흥무관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귀국하여 항일공작원으로 일하였다.

        3 ·1운동 후 군사자금을 모금하여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내고, 동지를 규합하여 황해도 평산군 상월(上月)주재소의 일본경찰과 면장을 살해하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경무국(警務局) 경비원으로 일하였고, 허난성[河南省] 한단[邯鄲]군관학교를 졸업한 후 중국군 장교로 복무하다가 의열단(義烈團)에 입단하였다.

        1926년 한국을 착취할 목적으로 설립된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와 식산은행(殖産銀行)을 파괴하기 위하여 국내에 잠입하였다. 그해 12월 28일 식산은행에 폭탄을 던져 일본인들을 죽이고 이어서 동양척식주식회사 사원들을 사살한 후 폭탄을 던졌으나 불발하자, 다시 조선철도회사에 가서 일본인들을 저격하였다. 추격하는 경찰과 접전, 일본경감 다하타 유이지[田畑唯次] 등을 사살한 후 지녔던 총으로 자결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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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ㅋㅋㅋ 2012-07-17 09:14:34

          http://blog.  joinsmsn.com/media/folderlistslide.asp?uid=cjh59&folder=27&list_id=9463619

          나석주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 사건


          나석주 [羅錫疇, 1892~1926.12.28]
          [출처] 나석주 [羅錫疇 ] | 네이버 백과사전

          한말의 독립운동가. 의열단(義烈團)에 입단하여 식산은행에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인들을 죽였다. 동양척식주식회사에도 투척하였으나 불발하여 조선철도회사에 가서 일본인들을 저격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나석주 [羅錫疇 ] | 네이버 백과사전


          황해도 재령군(載寧郡) 북률면 진초리에서 출생하였다. 명신학교(明新學校)에서 2년간 수학하고, 23세 때 중국 지린성[吉林省] 북간도(北間島)로 망명, 4년간 신흥무관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귀국하여 항일공작원으로 일하였다.

          3 ·1운동 후 군사자금을 모금하여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내고, 동지를 규합하여 황해도 평산군 상월(上月)주재소의 일본경찰과 면장을 살해하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경무국(警務局) 경비원으로 일하였고, 허난성[河南省] 한단[邯鄲]군관학교를 졸업한 후 중국군 장교로 복무하다가 의열단(義烈團)에 입단하였다.

          1926년 한국을 착취할 목적으로 설립된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와 식산은행(殖産銀行)을 파괴하기 위하여 국내에 잠입하였다. 그해 12월 28일 식산은행에 폭탄을 던져 일본인들을 죽이고 이어서 동양척식주식회사 사원들을 사살한 후 폭탄을 던졌으나 불발하자, 다시 조선철도회사에 가서 일본인들을 저격하였다. 추격하는 경찰과 접전, 일본경감 다하타 유이지[田畑唯次] 등을 사살한 후 지녔던 총으로 자결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출처] 나석주 [羅錫疇 ] | 네이버 백과사전   삭제

          • ㅋㅋㅋ 2012-07-17 09:11:45

            이 2만평의 땅에서 김지태는 꽤 많은 종자돈을 마련했습니다. 분할 상환금을 내고도 100석의 이상의 쌀이 남아서 그것을 기반으로 다시 담보 대출업을 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부산에 직물공장을 하나 인수하지만 실패합니다. 하지만 직물 사업을 하면서 알게 된 일본의 직물도매상 하기노 상점의 소개로 이시이 철공소로 찾아가 지류 관련 기계들을 주문하고 3개월동안 실습했다고 합니다.

            일본 굴지의 제지 회사들로부터 원료 공급을 받은 그의 지류사업은 중일전쟁 특수로 대박이 났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부산과 동래, 경주의 땅을 사들여 농장을 만들기도 하고 부동산회사까지 만듭니다.(이 과정에서 식산은행에서 거금을 대출받기도 했다는군요.)
            그리고 1943년에는 일본인이 갖고 있던 조선주철공업합자회사를 인수합니다. 이곳에서 태평양전쟁을 위한 군수품을 생산하여 때돈을 벌었다

            김지태의 재산축척과정은 이렇게 알려져있는데 이것에 대한 해명과 친일인명부에는 빠진 이유부터 해명해야 할겁니다


            동양척식회사 , 조선식산은행 ㅋㅋㅋ   삭제

            • ㅋㅋㅋ 2012-07-17 09:09:31

              http://blog. joinsmsn.com/media/folderlistslide.asp?uid=cjh59&folder=27&list_id=9463619

              나석주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 사건   삭제

              • ㅋㅋㅋ 2012-07-17 09:08:11

                이 2만평의 땅에서 김지태는 꽤 많은 종자돈을 마련했습니다. 분할 상환금을 내고도 100석의 이상의 쌀이 남아서 그것을 기반으로 다시 담보 대출업을 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부산에 직물공장을 하나 인수하지만 실패합니다. 하지만 직물 사업을 하면서 알게 된 일본의 직물도매상 하기노 상점의 소개로 이시이 철공소로 찾아가 지류 관련 기계들을 주문하고 3개월동안 실습했다고 합니다.

                일본 굴지의 제지 회사들로부터 원료 공급을 받은 그의 지류사업은 중일전쟁 특수로 대박이 났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부산과 동래, 경주의 땅을 사들여 농장을 만들기도 하고 부동산회사까지 만듭니다.(이 과정에서 식산은행에서 거금을 대출받기도 했다는군요.)
                그리고 1943년에는 일본인이 갖고 있던 조선주철공업합자회사를 인수합니다. 이곳에서 태평양전쟁을 위한 군수품을 생산하여 때돈을 벌었는데....


                동양척식회사 , 조선식산은행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삭제

                • ㅋㅋㅋ 2012-07-17 09:00:55

                  제목봐라 ㅋㅋㅋ 애들이 읽으면 1년 연봉으로 20억 받은줄 알겠네 ㅋㅋ
                  강탈당해서 그렇게 슬펏나??? 그럼 동양척식회사에서 토지, 자원을 수탈해가는 대표적 회사인 동양척식회사에
                  일제당시 수탈당했던 수많은 백성들에게 사과는 했나???그 공로로 땅 2만평을 불하받아 그 기반으로 대한민국 최고갑부 수준의 부를 쌓았던 사람인데...

                  도대체 어느정도의 공로를 인정받아야 일제시대에 울산땅 2만평을 불하 받을수있었을까???

                  이것부터 소상히 밝혀주시지요???

                  그리고   삭제

                  • ㅋㅋㅋ 2012-07-17 08:23:35

                    제목봐라 ㅋㅋㅋ 애들이 읽으면 1년 연봉으로 20억 받은줄 알겠네 ㅋㅋ
                    강탈당해서 그렇게 슬펏나??? 그럼 동양척식회사에서 토지, 자원을 수탈해가는 대표적 회사인 동양척식회사에
                    일제당시 수탈당했던 수많은 백성들에게 사과는 했나???그 공로로 땅 2만평을 하사받아 그 기반으로 대한민국 최고갑부 수준의 부를 쌓았던 사람인데...

                    도대체 어느정도의 공로를 인정받아야 일제시대에 울산땅 2만평을 불하 받을수있었을까???

                    이것부터 소상히 밝혀주시지요???   삭제

                    • ㅋㅋㅋ 2012-07-17 08:19:28

                      제목봐라 ㅋㅋㅋ 애들이 읽으면 1년 연봉으로 20억 받은줄 알겠네 ㅋㅋ
                      강탈당해서 그렇게 슬펏나??? 그럼 동양척식회사에서 토지, 자원을 수탈해가는 대표적 회사인 동양척식회사에
                      일제당시 수탈당했던 수많은 백성들에게 사과는 했나???그 공로로 땅 2만평을 하사받아 그 기반으로 대한민국 최고갑부 수준의 부를 쌓았던 사람인데...

                      도대체 어느정도의 공로를 인정받아야 일제시대에 울산땅 2만평을 불하 받을수있었을까???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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