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중문화 트렌드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1990'년대입니다. 영화 <건축학개론>이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90년대 인기를 끌었던 가수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으며, 1990년대 황금기를 보낸 40대들이 트렌디 드라마 전면에 등장하면서(‘신사의 품격’) 2012년 한국 대중문화에서 1990년대는 피할 수 없는 대세입니다.

7월 24일 tvN에서 방영 예정인 <응답하라 1997>도 1990년대를 추억하는 흐름에 발맞춘 감성복고 드라마입니다. 제목에 명시되어 있다시피 <응답하라 1997>은 2012년을 살고 있는 30대들이 학창시절이었던 1997년을 회상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응답하라 1997>은 단순히 주요 배역의 학창 시절에만 중점을 두는 게 아니라, 그들이 향유했던 문화, 그러니까 일명 당시의 팬덤(빠순이)를 집중적으로 조명합니다.

▲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제작보고회 개최 ⓒ연합뉴스
<응답하라 1997>의 여주인공 성지원(에이핑크 은지)은 그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던 HOT 토니의 열혈한 팬입니다. 학교 공부는 뒷전에 두고 토니 오빠에게만 충성을 바쳤던 지원은 HOT 팬으로 활동하던 당시 인기 팬픽작가로 이름을 날린 경력을 살려 예능 구성작가가 됩니다. 그런데 15년이 지나도 지원의 감성은 여전히 '1997년'입니다. 지금도 자기가 참여하는 방송에 토니 오빠가 꼭 들어가야 시청률 20%를 찍는다고 사심 방송을 펼치고 있으니까요.

사실 당시 10대 청소년기를 보낸 여성들 중에 HOT 혹은 젝스키스, 그리고 후에 나온 신화, GOD를 안 좋아했던 이들은 거의 없을 정도로 '1세대 아이돌'의 인기는 상당했습니다. 그런데 팬덤층을 삼촌 그리고 누나들로(?) 영역을 확장하여 대중문화 중심에 서는 데 성공한 '2세대 아이돌'들과 달리, '1세대 아이돌' 향유층은 10대들이었습니다. 때문에 HOT와 젝스키스는 현재 '88만원 세대'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20~30대의 잠시나마 찬란했던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아련한 상징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과거 HOT와 젝스키스 오빠들을 잊지 못하는 옛 소녀팬들을 위해서 <응답하라 1997>는 아예 1세대 아이돌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젝스키스 리더 은지원을 전면으로 내세우고, 여주인공 지원이 죽자사자 쫓아다니는 HOT 토니안을 카메오로 출연시키는 등 과거 잘나가던 오빠들을 대거 등용합니다. <응답하라 1997> 제작 발표회에서는 주요 배역도 아닌 HOT 문희준과 토니가 잠시 참석하여 당시 아이돌 양대 산맥을 함께 이끈 젝스키스 은지원과 어깨동무를 하는 등 라이벌을 넘은 진정한 우정을 보여줍니다.

▲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제작보고회에서 젝스키스 출신 은지원(가운데)과 H.O.T 출신 토니안(왼쪽), 문희준(오른쪽)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놓고 복고 드라마이기 때문에 <응답하라 1997>에는 HOT, 젝스키스 외 당시 시대를 열광시켰던 DDR이나 힙합바지, 김희선 머리띠 등이 대거 등장할 예정입니다. 지금은 이름도 가물가물한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그 당시에는 지금 우리들이 스마트폰, 혹은 태플릿PC에 열광하는 것처럼 너나 할 것 없이 가장 먼저 쓰고 싶어 안달 날 정도의 욕구를 불러일으키던 매력적인 신문물이었죠.

케이블 채널의 한계를 가진 <응답하라 1997>이 동시대를 살았던 30대들 시청자에게 얼마나 공감대를 형성하고 인기를 끌지는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MP3를 넘어 아이폰으로 음악을 듣는 시대에 CD 플레이어가 집중 조명되고 <마지막 승부>, <모래시계>에 열광하던 40대들이 주연으로 나오는 로코물이 인기를 끌고 있는 지금, <응답하라 1997>같은 복고 드라마는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주역들 ⓒ연합뉴스
1990년대를 추억하는 감성팔이 드라마, 영화가 나오는 것은 현재 대중문화 주요 소비층으로 자리잡은 30~40대 위력덕분입니다. 과거 대중문화의 흐름을 이끌어가고 소비의 중심이 되는 세대는 10대~20대의 젊은 세대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하고 취업난에 스펙 쌓는다고 다른 데 눈을 돌리지 못하는 사이, 적어도 20대들보다는 수입이 안정적인 30대, 40대로 그 흐름이 이동된 것이지요. 또한 현재 10~20대의 인구수와 비교할 수 없는 마지막 베이비붐 세대 30~40대들의 인구수도 오늘날 대중문화의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데 한 몫 합니다.

20대를 제치고 대중문화 전반에 서게 된 3040을 위해 그들이 황금기를 보냈던 시절을 그려내는 복고물이 봇물을 이루는 현상은 당시 아련했던 학창시절을 떠올리는 계기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한편으로는 현재와 미래가 아닌 지금보다는 살만했고 꿈이 있었던 1990년대를 회상하는 움직임들이 심상치 않게 다가옵니다.

인터넷을 통해 간단한 클릭 하나로 세상 대부분의 정보를 꿰찰 수 있는 지금과 달리, 어디에서나 전화를 할 수 없는 다소 불편한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이 더 행복하고 좋았다고 그리워하는 이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대사를 빌리면 오늘날 시간이 갈수록 희망은 꺾어지고 팍팍해지는 삶에 대한 불만과 회피하고자하는 마음이, 오히려 꿈과 희망이 있었던 찬란했던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픈 '추억'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움직임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싶네요. 20대도 30~40대들도 불안감에 떨어야하는 2012년. 과연 15년, 20년 뒤 우리들은 오늘날 2012년을 어떻게 회상할지 사뭇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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