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어려운 말로 시작해야겠다. 논어 위정편에 보면 나이 칠십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쉽게 말하자면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도 어긋날 일이 없다는 뜻이다. 아마도 자유의 최고경지가 바로 종심이 아닐까 싶다. 칠십까지 사는 이가 드물었던 시대의 이야기지만 요즘이라고 그런 노인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고쇼에 최화정과 함께 나온 배우 윤여정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를 화려한 독거노인이라고 칭한 윤여정은 시종일관 기계적으로 사용되는 관용적 표현에 대해서 일일이 토를 달았다. 굳이 미사여구로 치장하거나 위장하려 들지 않는 모습이 배우라는 직업보다 인생을 깊이 말해줄 수 있는 현자를 대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고쇼에 출연한 윤여정은 우선 거침없었다. 예전에 무릎팍도사에서는 “돈이 필요할 때 가장 연기를 잘 한다”는 말로 화제가 됐는데, 이번에는 스스로를 ‘평창동 비구니’라고 말해 좌중을 뒤집어 놓았다. 언제부터 비구니가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고령의 노모와 함께 사는 윤여정은 스스로의 집도 귀곡산장이라며 웃음을 주었다.

윤여정은 깐깐하다. 남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먼저 그런 모습이었다. 대부분의 배우들이 자랑으로 삼는 칸 영화제에 다녀온 것에 대해서 엠씨들이 칭송을 하려고 하자 굳이 양손으로 손사래를 치면서 “칸 영화제는 배우의 영화제가 아니에요. 감독의 영화제에요”라며 언론의 알면서 모른 체 해온 칸에 대한 진실을 진지하게 밝혔다.

토크쇼에 출연했다면 당연히 몇 마디 할 수밖에 없는 영화 돈의 맛에 대해서도 다른 이들이 ‘베드신’이라고 하자, 그게 무슨 베드신이냐 성폭행이지 하며 예의를 갖추려는 후배들에게 스스로를 무장해제시켰다. 그러고는 식스팩으로 무장된 남자배우에 대해서는 오일을 발라서 미끄러웠다는 말로 은근한 비판도 잊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여자들로서는 도저히 버릴 수 없는 백마 탄 왕자에 대한 환상에 대해서도 윤여정은 “그런 남자는 일찍 죽어”라며 가차 없는 말로 대답했다. 어지간하면 맞장구를 쳐줄 수도 있겠지만 윤여정은 도통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그러면 무미건조할 거 같은데도 희한하게 윤여정의 일갈은 모두가 통쾌하고 또 즐거웠다.

이렇듯 윤여정의 솔선수범하는 솔직함 아래 진행된 고쇼는 마치 여배우2를 보는 기분이 들게 했다. 눈물 없이 웃음만으로 끌고 갔지만 굳이 눈물이 강제하는 감동 없이도 알 만한 사람은 알 수 있었다. 66세. 아직 노인이라고 말할 수 없는 명배우가 주는 웃음 속에 빼곡하게 삶의 교훈이 담겨 있었다. 마치 해탈한 듯 무심하게 내뱉는 말 한 마디에 아주 무거운 삶의 진실이 묻어났다.

평창동 비구니 윤여정의 해탈토크는 사람이 살다보면 만들어지는 어떤 가식과 타성의 가면을 깨버린 파란의 토크였다. 윤여정과의 결코 길지 않은 한 시간은 웃기도 많이 웃었지만 문득 세상이 몰랐던 현자를 발견한 듯한 기쁨이 더 컸다. 윤여정이 고쇼에서 보여준 모습은 종심의 자유 그 자체로 보였고, 나이 먹는 일에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도 가르쳐 주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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