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유령의 최대 관심사는 팬텀에 대한 추격이 아니었다. 드라마 외적인 부분이지만 곽도원이 차 안에서 율동과 함께 열창했던 태티서의 트윙클은 시청자들의 배꼽을 잡게 했다. 잠시 쉬어가자는 뜻도 있겠지만 미친소로 일관해온 진짜 형사 곽도원에 대한 심층적 접근을 위한 창문열기의 의도가 있었다.

곽도원과 소지섭이 따로 쫓고 있는 신효정 사건의 진범에 대한 결정적 증거를 담은 노트북을 손에 넣은 권해효는 그로 인해 엄기준에게 살해를 당하고 말았다. 김우현에 이은 두 번째 경관 살해를 범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엄기준을 결정적 실수를 두 가지나 범하고 말았다. 첫 번째는 권해효에게 음주음전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씌운 것이다. 단순 교통사고로 위장했다면 몰라도 곽도원을 비롯한 사이버수사대원들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작의 심증을 갖게 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실수는 노트북에만 집착한 나머지 권해효가 노트북 하드 디스크를 로드마스터라는 기기를 통해 복사해놓은 것을 알지 못한 것이다. 결국 증거 인멸을 위해 형사를 죽이기까지 했지만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동료인 곽도원, 소지섭 등에게 엄기준을 쫓을 더 큰 동기만 제공하고 만 셈이다. 엄기준 입장에서 더 큰 재앙은 이로 인해 소지섭이 곽도원에게 정체를 밝히게 됐다는 점이다.

권해효는 곽도원의 지시에 따라 죽은 남상원의 행적을 쫓으면서 의외로 많은 증거들을 찾아냈다. 거기에는 아직 꺼내기에는 불충분하고 위험한 자료가 있었다. 소지섭이 엄기준과 함께 있는 사진들이 그것. 권해효는 미친소가 아니었기에 그 사진만으로 무작정 소지섭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더 확실해지기까지 권해효는 사진을 자동차 트렁크 스페어타이어 두는 곳에 숨겨두었고, 권해효를 잘 아는 곽도원은 그 사진을 폐차장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물론 사진을 본 곽도원은 다시 미친소가 되어 다짜고짜 소지섭에게 주먹을 날렸다. 그러고는 왜 권해효를 죽였냐고 따진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 말에는 딱히 진심이 담겨져 있지 않았다. 권해효가 바로 사진을 공개하지 않고 숨긴 이유에 대한 존중이었을지도 모른다. 권해효가 소지섭을 믿은 이유가 있을 거라는 희미한 기대도 가능하다.

그런 곽도원에게 시원하게 한 대를 맞은 소지섭은 미뤄왔던 결심을 하게 된다. 비로소 자신이 김우현이 아니라 박기영이라는 사실을 밝히게 된다. 힘든 고백이긴 하지만 진작 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권해효의 죽음을 막을 수도 있었을 수도 있다는 자책감이 소지섭에게는 있을 것이다. 이제는 자신의 정체를 밝혀서 그로 인해 불이익이 올지라도 더 이상 무고한 죽음이 없어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 같은 수사를 하면서도 동료를 도청까지 하게 되는 비효율을 없애야겠다는 생각도 그 결심의 배경에 존재할 것이다.

소지섭의 고백은 사실 곽도원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친구라도 해커가 경찰관으로 행세하는 것을 인정하고 함께 수사를 해나갈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사건에 대한 순수한 집념과 매뉴얼대로 수사하지 않는 통제불능의 미친소라야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동료의 죽음까지 더해진 마당이라면 미친소 곽도원은 김우현이 아닌 박기영과 손을 잡아줄 거라 믿었을 것이다. 결국 곽도원과 소지섭이 힘을 합칠 계기를 만들어준 것이 엄기준의 결정적 실수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순간 위험에 처한 인물이 있었다. 1999년 세강그룹 정치비자금 사건기록을 찾는 이연희의 뒤를 은밀히 쫓는 시선이 있었다. 그것이 죽은 김우현이 말한 경찰내 동조자가 분명하다. 그리고 그의 정체는 사이버수사대원 중 하나이다. 그 이유는 권해효가 노트북을 입수한 사실을 알 수 있는 사람들이 그들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권해효를 의심하게 만든 제작진의 트릭일지도 모른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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