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의 품격은 남자들에게는 꽤나 공감하게 되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여자인 작가가 남자들의 세계를 참 잘도 알고 있다고 감탄 내지는 의심을 하게 되는데, 때때로 남자에 대한 오해나 혹은 피해의식 같은 것도 간간이 드러나고 있다. 그래도 이 드라마를 남자가 꼭 봐야만 할 이유는 주인공 남녀인 장동건과 김하늘이 아니라 이종혁과 김정난 커플에 있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어차피 연애가 쉽다면 연애 드라마가 흥할 리는 없다. 또한 로맨틱 코미디를 아무리 깨알같이 복습한다고 하더라도 연애는 결코 쉬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주인공 남녀의 꽃다운 사랑에 한없이 몰입한다고 하더라도 현실에는 눈곱만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9회에 등장한 천방지축 남편 이정록과 연상의 갑부 아내 박민숙이 보여준 짧은 감동은 아주 충분한 교육적 의미와 함께 긴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방 안에는 촛불과 꽃잎으로 로맨틱하게 데코레이션 돼 있고, 박민숙은 얇은 슬림차림으로 들어선다. 지은 죄가 많은 남편 이정록은 온몸을 불살라 아내에게 점수를 따고자 각오(?)를 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정작 침대에 들어온 박민숙의 반응은 달랐다. 그녀의 예의 말투인 명령조를 흩뜨리진 않았지만 남편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그저 소박한 한 여자일 뿐이었다.

민숙 씨는 전의를 불사르고 있었던 정록 씨에게 팔베개와 토닥거림을 요구했다. 그리고 말했다. “내가 당신에게 바라는 거 바로 이런 거야. 뜨거운 게 아니라 따뜻한 거”라고. 남자들은 그러나 보고도 잘 모를 것이다. 뜨거움과 따뜻함의 차이를. 별 거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 씬을 보면서 꼭 아내나 애인이 아니더라도 여자를 대하는 기본자세에 대해서 큰 코치를 받은 느낌을 받았다. 수업료라도 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후에 정록이 민숙의 눈물을 쏙 뺀 이벤트는 로코 작가의 위대함을 증명한 달콤한 씬이었다.

그런데 여자에 대해서는 그렇게 섬세하게 설명해주던 작가가 돌변했다. 짝사랑 중이라서 온갖 고도의 태도와 말로써 이수를 공략하던 도진이 돌연 찌질하고 옹졸한 남자가 돼버렸다. 물론 장동건만큼 잘난 남자라면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무릇 짝사랑하는 자의 자세를 전혀 모르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물론 이렇게 대판 싸우고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이 전격 연애모드를 조장하기 위한 드라마의 정석임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서이수의 잘못을 대하는 김도진의 태도는 찌질하고 옹졸할 뿐이었다.

이수는 불편해진 세라와 태산과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서 다시 한 번 도진을 이용(?)하기로 한 것 같다. 그래서 도진이 사준 신발을 신고 모임장소에 나왔다. 그리고 태산에 대한 마음을 최대한 가벼이 언급하고 대신 도진과 진지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거짓말을 했다. 그러자 도진의 안색이 표가 나게 달라졌다. 비록 그 자리에서 판을 엎지는 않았지만 이수에게는 지나치게 잔인한 모습을 보였다.

분명 누구라도 그 상황이면 화가 나는 것이 당연하다. 나에게 올 때 신으라는 구두를 신은 것이 고작 연극을 위한 것이었다면 분노하게 될 법하다. 그렇지만 “난 아직도 댁이 좋지만 이렇게 이용당해줄 만큼은 아니야”라고 하는 것은 남자로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인내심 강한 것이 짝사랑하는 남자다. 그것도 짝사랑인 걸 이미 고백한 남자는 그들 중에서도 으뜸에 속한다.

게다가 거짓말이라도 짝사랑하는 남자라면 이수의 거짓 발언이 기분 나쁘게 들릴 겨를도 없다. 나중에 가서 그것 때문에 뒤끝을 보이는 남자는 있을 수 있어도 그 자리를 깰 정도로 자존감을 유지한다면 짝사랑의 상태는 여전히 아닌 걸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 남자는 사랑에 대해서 용감하다면 모든 걸 견딜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여자를 얻기 전까지의 모든 굴욕(?)을 인내할 수 있다.

짝사랑 여부를 떠나서 야구시합 후에 뒤풀이에서 마치 죄인처럼 앉아서 이것저것 수발을 드는데 남들 보기에 태나게 여자를 면박을 주는 도진의 태도는 신사는커녕 최악의 남자였다. 그리고 그 끝에 “나랑 잘 것 아니면” 운운하는 것은 고발해서 쇠고랑을 채워도 불만 없을 언어폭력이었다. 뭐 어쨌든 곧 훈훈해질 걸로 예상되지만 9회의 도진은 꽃보다는 각목에 더 가까웠다. 꽃과 각목의 대비는 굳이 설명하지 않는 걸로.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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