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에게 ‘죄송하다’는 것을 전제로 가정 하나 해보자.

만약 천호선 전 대변인이 농지 취득 과정에서 허위로 위임장을 작성해서 ‘가짜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한 의혹이 제기됐다면? 단언하건데 ‘조중동’이 지금처럼 ‘조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나 더. 천호선 전 대변인이 이를 보도하려던 언론사에 기사를 빼도록 전화를 수차례 거는 등 ‘외압’을 가한 사실이 드러났다면? 100% 확신하지만 ‘조중동’이 나서서 사퇴를 요구했을 것이다.

이동관 대변인 파문, 침묵하는 조선과 중앙

▲ 경향신문 5월1일자 1면.
‘가정법’으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파문에 대해 오늘자(1일) 조선 중앙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변인의 해명이 설득력이 있어서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30일 MBC가 <뉴스데스크> ‘석연찮은 해명’에서 지적했듯이 해명 자체가 의혹을 더욱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MBC 보도 가운데 일부를 인용한다.

“춘천 땅 의혹이 터진 지난주 목요일 이동관 대변인은 직접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실정법을 몰랐다며 밝혔습니다. 이번 가짜 위임장 의혹에 대해서도 이 대변인은 땅을 대신 사준 지인 탓으로 돌리며 "자신은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본인도 아닌 부인 이름으로 땅을 샀고, 그나마도 위임해 절차대로라면 인감까지 내줘야 했는데, 몰랐다는 건 선뜻 납득하기 힘듭니다.”

기사를 빼달라는 의혹과 관련한 이 대변인의 해명은 더 가관이다.

“국민일보 편집국장은 친한 언론사 동기로, 두세 차례 전화를 해 사정을 설명하고 자초지종을 얘기하면서 친구끼리 하는 말로 ‘좀 봐줘’라고 말했을 뿐이다. 위협이나 협박을 가한 적은 없다.”

▲ 한겨레 5월1일자 6면.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이동관 대변인이 이런 수준의 해명을 한 것에 대해 솔직히 ‘실망’이다. 아마 본인도 자신의 해명이 ‘말이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 대변인이 위협이나 협박을 가한 적은 없을 지 몰라도 대통령 최측근 가운데 한 명이면서 기자들을 직접 상대하는 청와대 대변인이 ‘기사 빼달라’고 언론사 간부에게 전화를 거는 것 자체가 받는 쪽에서는 상당한 부담이자 압박이 된다.

대통령 핵심측근이 언론사 간부에게 ‘기사 빼달라’고 전화하는 게 어떤 의미일까

이건 이 대변인도 알고, 국민일보 간부도 알고,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문제다. 우리 ‘뻥치지’ 말자.

다른 건 다 논외로 하더라도 분명한 사실은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이 농지 취득 과정에서 허위로 위임장을 작성해 ‘가짜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한 의혹이 새롭게 제기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대변인이 이를 보도하려던 국민일보 측에 기사를 빼도록 전화를 걸어서 결국 기사가 누락됐다는 점이다.

사실 여기까지만 놓고 봐도 사안 자체가 심각하다. 청와대의 공식창구인 대변인이 재산형성 과정과 기사외압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된 사실만으로도 ‘사퇴감’이기 때문이다. 다른 건 제쳐두고라도 청와대 대변인이 자신의 재산형성 의혹과 관련해 언론사에 기사를 빼달라고 요청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실 ‘아웃감’이다.

그런데 이런 중대한 사안을 오늘자(1일) 조선과 중앙이 일제히 침묵이다. 동아일보의 경우 자사 출신 대변인의 ‘문제’임에도(!) 나름 3단 크기로 ‘논란 형식’으로나마 보도를 하고 있는데 조선 중앙은 조용하다.

▲ 동아일보 5월1일자 6면.
당사자가 이동관 대변인이 아니라 참여정부 시절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이었다면 이들 신문사들이 지금과 같은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을까. 장담하지만 1면과 관련기사, 사설과 칼럼 등을 통해 ‘난리부르스’를 떨었을 게다.

다른 신문이 대부분 보도하고 있는 사안을 굳이 두 신문이 침묵한다고 해서 파문이 차단되는 것도 아닐 텐데 양대 보수신문은 철저히 침묵이다. 이동관 대변인은 국민일보 간부에게 “이번 건을 넘어가주면 은혜는 반드시 갚겠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조선 중앙이 혹시 이 ‘은혜’를 주목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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