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엄마, 국민여동생, 국민엠씨 다 있는데 유독 없는 것이 있었다. 바로 국민 아빠. 그 국민아빠의 빈자리는 손현주에게 주는 것이 당연해졌다. 아버지와 아빠는 동일한 대상이면서도 뉘앙스가 다르다. 아버지는 어쩐지 과묵해서 자식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은 채 가슴으로 우는 존재라면 아빠는 딸과 함께 걸그룹 춤도 함께 추며, 적금 타면 그 딸을 위해 도배를 새로 하고, 침대로 새로 사주는 것이 꿈인 사람이다.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는 사건들 속에서 손현주는 자신의 모든 의지가 아빠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했다. 믿었던 친구의 두 번째 배신에 의해서 김상중에게 잡혀 곧 죽을 위기에 처해서도 손현주는 거창하게 정의를 말하지 않았다. 왜 포기를 하지 않았냐는 김상중의 절규에 손현주는 눈물 한 방울을 길게 떨어뜨리며 “나는 수정이 아버지니까”라고 했다.

수정이 아버지니까라는 말은 아주 짧은 대답이었지만 모든 상황을 담아낼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다. 아버지니까 포기할 수 없었고, 아버지이기에 딸의 죽음에 관련된 모든 음모와 야합을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결국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결과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아버지의 가슴은 용암처럼 뜨거워야 정상이다. 분노와 절망이 인간이 견뎌낼 한계 이상으로 치미는 상황이라야 맞다. 그런데 이 아버지에 대한 손현주의 해석은 의외로 차분하다. 심지어 김상중을 만난 자리에서조차 손현주는 눈을 부릅뜨고, 이를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탈한 사람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 손현주의 모습에 권위와 자신감으로 넘쳐나는 김상중이 거꾸로 소리를 높이게 했다.

다소 의외기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손현주의 해석이 보다 극적인 동시에 현실적이라는 수긍을 할 수 있다. 딸과 아내를 잃고 이제 자신의 인생마저 버릴 상황에 몰려 있다. 분노가 사무치지만 한편으로는 기가 막힐 상황이다. 사람이 어떤 감정의 극단에 치닫다보면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일종의 실신과도 비슷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분노를 흩뜨리지 않기 위해 일부로 침착한 태도를 취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울면 슬픔이 조금 가시고, 화를 내면 분노 역시 덜어지는 것이 인간의 감정이기에 손현주는 자신의 분노를 감정으로 연소하지 않고 오히려 차갑게 자신의 할 일에 다 쏟겠다는 의지로 볼 수도 있다. 손현주는 감정을 억제함으로써 오히려 그 감정의 크기를 증폭시키는 역설의 연기를 취하고 있다.

그런 손현주도 크게 흔들릴 상황이 있었다. 윤창민의 옛 병원에 은신 중에 전화를 걸러나왔다가 순찰 중인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낯선 집 초인종을 눌렀을 때 때마침 시각장애 소녀가 손현주를 아빠라고 자연스럽게 불러 위기를 모면한 장면이 있었다. 그때 손현주가 그 소녀를 향해 이런저런 설명 대신 나지막이 “고맙다”라고 한 부분이 있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가볍게 지나칠 수도 있는 장면이었지만 두고두고 생각나게 한다. 아니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좀 무리한 연출이고, 우연의 남용이라고 할 수도 있는 장면이지만 이 슬픈 아빠를 돕기 위해 딸 수정이가 그 소녀를 움직였다고 믿고 싶은 사람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에 자잘한 수식과 치장을 빼고 단지 “고맙다”는 말 한 마디로 상황을 정리한 것이 오히려 긴 여운을 남기게 했다.

탈옥, 김상중과의 대면, 배신한 친구 윤창민의 저격 그리고 김상중과 처가와의 힘겨루기 등 추적자 5,6회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빠른 걸음으로 진행됐지만 막상 가슴에 오래 남는 것은 “고맙다”와 “나는 수정이 아버지니까” 두 마디다. 그처럼 추적자는 손현주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벌인 외롭고 눈물겨운 싸움을 보는 일이다. 무엇을 얻거나 지키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아빠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처절함의 이유를 그 두 마디에 다 담아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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