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지에 조선시대로 떨어진 송승헌에게 가장 큰 숙제가 등장했다. 서양인과 접촉한 기생이 걸린 매독을 치료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페니실린을 조달하는 것이 큰 문제이다. 콜레라는 그나마 조선시대에도 존재했던 소금과 조청이라는 재료를 통해서 치료할 수 있었지만 매독을 치료하기 위해서 페니실린이 필요한 것이 문제였다.

페니실린은 송승헌이 고군분투하는 때로부터 68년이 지나야 그것도 서양에서 발견되는 것이기에 조선에 있을 턱이 없다. 온몸에 썩어가는 고통에 안쓰러워도 송승헌은 기생의 매독을 치료할 수 없다고 했지만 활인서에 돌아와서도 마음이 영 무겁기만 하다. 그때 활인서 의원이 곰팡이 슨 귤을 들고 나온 것을 본 진혁은 현대에서 졸면서 들었던 세미나 내용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첨단 정제시절이 없더라도 페니실린을 구할 수 있다는 데 착안한 그는 밤새 기억을 더듬어 조선시대의 기재들로 정제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었다. 의사가 환자를 보고 치료약이 없어 포기할 때만큼 절망적인 순간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페니실린을 정제할 수 있다는 희망은 송승헌에게 대단한 기쁨이었다. 그 희망은 고스란히 기방의 이소연에게도 전해졌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환자를 구하기 위해 아주 먼 기억을 끌어와 페니실린 정제법을 정리할 수는 있었지만 그렇게 페니실린을 구하게 된다면 의학역사는 크게 달라진다는 사실에 송승헌은 아주 큰 부담을 느끼게 됐다. 역사를 바꾼다는 것은 야심을 가진 남자라면 마다할 일이 아니겠지만 지금 송승헌이 바꾸려는 역사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일종의 컨닝이나 다름없으니 양심에 거리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국 급하게 준비시켰던 정제를 없던 일로 할 수밖에 없었던 송승헌의 마음을 바꾸게 한 것은 이범수였다. 세상과 역사를 바꾸게 될 일에 두려워하는 송승헌에게 이범수는 역정을 내며 역사란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꾸고 뜯고 고치면 된다고 역설한다. 이 대사로 미루어볼 때 닥터진에서 흥선대원군은 적어도 근본은 개혁주의자로 그려질 것을 암시하고 있다.

안동김씨의 세도정치에 밀려 상갓집 개로 전전하는 종친이 누구보다 개혁의지가 강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범수가 이토록 페니실린 개발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개혁의지보다는 의외로 사랑 때문이다. 사대부와 기생의 연애는 조선시대의 꽃이나 다름없다. 그렇지만 비루한 생존만도 버거운 이범수에게 언강생심 기생과의 연애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매독에 걸린 기생은 바로 이범수의 현실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사랑이었다. 그래서 더욱 분노하고, 더 간절히 치료를 바라는 이범수는 자신이 못나서 사랑하는 여인에게 몹쓸 병을 얻게 했다는 자책이 크다. 치료는 송승헌에게 맡겨야 하겠지만, 분노는 스스로 해결하기로 한 이범수는 이원종 패거리들의 힘을 빌려 사건의 전말을 캘 수 있었다.

그러나 분노하고 치료할 겨를도 없이 이범수는 병에 걸린 기생을 몰래 빼돌려야 했다. 기생이 병에 걸리게 된 배후에 좌의정의 아들 김명수가 있었고, 서양인과의 밀거래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병에 걸려 죽어가는 기생을 해치려 한다는 것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이범수에게는 아주 위험한 일이다. 의도적으로 개차반을 자처하고 사는 종친이 분노한다는 것은 곧 목숨을 내어놓는 일인 탓이다.

결국 그 분노가 갈등하는 송승헌의 마음을 움직여 페니실린을 만들게 하고, 철벽같은 세도정치에 흠집을 내게 될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범수의 로맨스가 진짜 위험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이 드라마가 원작과 달리 지나치게 멜로에 치중하는데 거기에 이범수까지 가세하는 것이 과연 도움이 될 것인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드라마는 연애’라는 고집이라면 좀 곤란한 일이다. 닥터진의 모토는 역시나 의학의 숭고함과 헌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