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한 편이 이토록 가슴을 깊이 벨 줄을 몰랐다. 추적자는 현실에 숨겨진 지독한 진실을 드러내고 있다. 아마도 레임덕 기간이 아니라면 방송되기는 어려웠을 거라 짐작도 하게 된다. 그런데 SBS 드라마를 보면서 엉뚱하게 자꾸만 MBC가 떠올랐다. 만약에 손현주에게 PD수첩이 있었더라면 이토록 비극적인 전개는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 때문이다.

물론 SBS에도 그것이 알고 싶다가 있기는 하지만 권력이 결부된 사건에 100%의 진실을 추구하는 깡다구는 아무래도 PD수첩이 아니라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특히 변호사에 매수된 백수정의 친구로부터 중학교 시절부터 원조교제와 마약을 했다는 증언을 그대로 기정사실로 인정해버린 드라마 속 언론은 딱 PD수첩 없는 요즘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추적자가 언론에 대해서 특별히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교통사고로 죽은 여고생의 중학교 동창의 증언만으로 별도의 검증 단계 없이 탈선 여학생으로 만들어버린 현상은 사실 옥에 티라고 해야 될 부분이다. 그런데 묘하게 옥에 티가 아니라 현재 언론의 수준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도 싶다는 우울한 공감을 하게 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아무도 이 억울한 부모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누군가 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더라면 그 엄마마저 정신착란으로 실족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딸에 이어 아내마저 잃은 손현주는 아내가 죽기 직전 차려놓은 식탁에 놓여준 두 벌의 수저를 보며 오열을 토했다. 크게 분노할 여력도 남지 않은 기절할 정도의 기막힌 슬픔에 소리마저 제대로 나오지 않는 절절한 고통이 화면 건너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손현주는 차에서 낮잠에 빠진 후배 박효주의 권총을 몰래 빼돌려 법원으로 향했다. 법을 집행하던 형사가 이래도 될까 싶기도 하지만, 법을 누구보다 잘 아는 형사가 오죽하면 이럴까 싶다. 손현주도 그러고 싶어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그것이 오히려 해가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밖에는 길이 없다는 절망감이 딸과 아내를 잃은 가장의 손에 총을 쥐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법정에 총을 난사한 손현주는 판사와 검사를 향해 뭐라 한 것이 아니라 기자들에게 카메라와 녹음기를 켜라고 요구했던 것을 주목해야 된다. 권력과 법조계의 그릇된 관행을 이용해 법과 윤리를 난도질한 것은 김상중이지만 거기에 아무런 문제의식도 갖지 않고 뒷북이나 치고 있는 언론 역시 공범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래서 더 PD수첩이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언론이 제 본분을 다했다면 백홍석은 법정에 총을 쏘는 일까지는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 손현주 같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하소연하고 도움을 청할 언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절망스러운 일이다. 넓디넓은 사회에 믿을 사람이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고독과 절망에 누군들 극단의 방법을 택하지 않겠는가.

불행하게도 극중 손현주에게도, 지금 우리에게도 PD수첩은 없다. 파업 때문이 아니다. MBC는 파업 훨씬 전에 PD수첩 제작진을 비제작 부서로 강제로 흩어놓았다. 최근 파업 중인 MBC가 케이블에서 방송되던 무한걸스 등 예능 프로그램의 대대적인 보강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시사교양을 늘리겠다는 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것이 MBC 아니 현재 방송의 실태라고 할 수 있다.

추적자의 손현주와 그의 딸과 아내가 특별해서 억울한 사건에 휘말린 것은 아니다. 누구나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권력의 장난에 희생될 수 있다. 그럴 때 법은 그런 우리를 지켜주는 정의의 수호자가 아니라 권력의 도구로 전락할 뿐이다. 부러진 화살이 그랬고, 추적자가 그런 무서운 현실을 일깨우고 있다. PD수첩 같은 프로그램이 반드시 존재해야 하고, 또 지켜내야 하는 이보다 더 절실한 이유는 없을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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