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각시탈> 보조출연자 고 박희석씨가 버스 전복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지 벌써 49일(5일 기준)이 흘렀다. 숨진 박씨의 아내와 딸은 "사람이 죽었는데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며 지난달 22일부터 KBS 앞에서 침묵시위를 진행하고 있으나, <각시탈> 방영주체인 KBS를 비롯해 관련 업체들은 여전히 "우리랑은 상관없는 문제"라며 책임을 미루기 바쁘다.

▲ 6월 1일 정오,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앞에서 고 박희석씨의 딸이 침묵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 ⓒ곽상아

<각시탈> 보조출연자인 고 박희석씨는 4월 18일 경남 합천에서 <각시탈> 보조출연자들을 단체로 태운 버스를 타고가다가 전복 사고를 당해 사망했다. 사건이 일어난 직후 KBS와 외주사인 팬엔터테인먼트는 즉각 입장을 내어 "깊은 위로와 함께 사태 수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으나, 유족들은 KBS와 팬엔터테인먼트, 태양기획(보조출연업체), 동백관광(버스회사) 등 관련 회사 4곳이 제대로 된 사과도 하지 않았고 4월 19일 장례비용으로 2000만원을 지급한 이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유족들의 침묵시위와 관련해 KBS 측은 4일 "우리는 이 문제에 있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지 않은 제3자"라며 "왜 KBS 앞에 와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배재성 KBS 홍보실장은 "보조출연자가 KBS와 무슨 상관인가. 그런식의 논리라면 나라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고에 대해 대통령이 사과표명을 해야 하는 것인가?"라며 "만약 KBS가 이 사안에 대해 처음부터 관심도 갖지 않았다면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우리는 장례비를 지급할 의무도 없지만 초기부터 개입해서 장례비를 지급했다. 그런데 우리에게 추가적으로 도의적인 책임을 지라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라고 주장했다.

이어 "드라마국장이 책임질 수 있겠느냐, 사장이 책임질 수 있겠느냐. 피치못할 사고로 남편을 잃은 것은 정말 딱한 일이지만 다른 방식으로 풀어야 할 문제인데 자꾸 KBS에 와서 책임지라고 하면 방법이 없다"며 "KBS는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라 단돈 1원도 투명하게 집행안되면 물어내야 한다. (예를 들어) 1억원이 KBS 전체 예산에서 큰 돈이 아닐 수 있지만 규정상 (유족들에게 금전적 보상을)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고영탁 KBS 드라마국장 역시 "KBS는 박씨가 각시탈 보조출연자였는지, 촬영현장으로 가고 있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버스기사의 잘못으로 일어난 교통사고가 아닌가?"라며 "충분히 납득할 만큼 설명을 해드렸는데 뭘 더 책임지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미망인을) 다른 곳의 보조출연자로 취직을 시키든지, 아니면 일을 꾸준히 할 수 있게끔 하든지 하는 것은 충분히 노력해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뭘 요구하는지는 말 안하면서 자꾸 돈을 더 요구하는 분위기"라며 "우리가 볼 때는 미망인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주변에서 자꾸 선동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저희쪽 실무자 얘기로는 유족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꾼'인 것 같다더라"고 주장했다.

또, 고 국장은 "미망인이 딸아이를 학교에도 보내지 않고 자꾸 데리고 와서 시위를 하고 있는데,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다"며 "현실적으로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자꾸 애 데리고 나타나서 이상한 이야기만 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 국장은 "(보조출연자 뿐만 아니라) 방송국 직원들도 촬영하다가 사고를 당한다. 심지어 저희 직원 중 한 명이 섬에 들어가서 촬영할 때 아들이 승용차 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지만, 그 연출자는 '시청자와의 약속' 때문에 아들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며 "방송국은 크고 작은 사건이 무수히 일어나는 곳이다. KBS도 정해진 법과 규정 내에서 책임질 수 있을 뿐, 한 개인의 죽음에 대해 모두가 무한책임을 져야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KBS는 유족들이 침묵시위 도중 잠깐 KBS 건물 내의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조차 막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배재성 KBS 홍보실장은 "지나가는 사람이 KBS 화장실을 이용하겠다고 한다면 그걸 누가 막겠느냐. 그런데 KBS앞에서 시위하던 사람이 KBS 건물에 들어오려는 것을 허용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며 "만약 받아들이게 되면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는데 시위대가 나중에 KBS를 점거하면 누가 책임질 수 있겠느냐. 물론 연약한 아이와 엄마이지만 시위대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안 된다"고 말했다.

4일 태양기획 관계자 역시 "어떻게 하면 고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4개 회사가 몇 차례 만나 논의하고 있다"면서도 "안타깝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관계자는 "박씨는 이준기획 소속이라서 우리에게 책임이 없다. 우리가 고인의 출연료와 관련한 세금을 납부한 것은 맞지만 이준기획이 영세해서 우리가 대신해준 것일 뿐 직접적인 근로지시나 모집은 이준기획이 했다"며 "우리는 박씨에게 직접적으로 출연료를 지급한 사실이 없고, 박씨의 주소도 모른다"고 선을 그었다.

이와 관련해 4일 고 박희석씨의 아내인 윤아무개씨는 "돈은 부수적인 문제"라며 "사과도 제대로 하지 않아놓고, 장례비용 지급이 도의적인 책임의 전부라면 정말 황당하다. 당초 장례비용도 340만원 정도를 말했었다"고 반박했다.

4일 김동원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팀장은 "방송산업의 콘텐츠 제작 환경이 갈수록 제조업 노동시장과 유사해지고 있다. 공영방송인 KBS가 잘못된 제작구조를 당연히 여기면서 공영방송으로서의 책임을 외면해선 안되지 않느냐"며 "물론 KBS에게 법적 책임은 없지만, (공영방송이기 때문에) 일반 제조업 회사와 달리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하는 게 당연하다. 보조출연자 역시 KBS에 수신료를 내는 국민 중 한 명"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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