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광주구장에서 성대하게 치러진 KIA 이종범의 은퇴식을 지켜보며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프로야구 무대를 떠나는 그 순간만큼은 선수 시절 내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대스타이든, 아니면 2군을 전전하다 방출되어 조용히 사라지는 선수이든 간에 그 뒷모습이 서글프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거의 모든 선수들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은퇴식보다 현역 선수 생활을 조금이라도 더 길게 가져가기를 원할 것입니다. 이종범의 은퇴가 못내 아쉬운 이유 중 하나는 현역 선수 생활을 조금 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미련 때문일 것입니다.

이종범의 은퇴로 프로야구 최고령 선수의 배턴을 물려받은 것은 LG 최동수입니다. 1971년 9월생인 최동수는 팀 내 동기 류택현보다 한 달 먼저 태어났습니다. 최동수가 류택현과 다른 점을 또 하나 꼽는다면 류택현은 플레잉 코치이지만 최동수는 순수한 선수 신분이라는 점입니다.

프로 19년차 최동수에게는 우리 나이 42세의 최고령 선수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니지만 프로의 세계에서는 단지 실력만이 유일한 생존의 잣대입니다. 나이가 많다고 1군에 자리가 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 13일 프로야구 삼성-LG 경기. 2회말 LG 최동수가 서동욱의 안타로 선취점을 올리고 있다. ⓒ 연합뉴스
규정 타석을 채우지는 못 했지만 최동수는 현재 0.316의 높은 타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25개의 안타로 무려 19타점을 얻었다는 점입니다. 기회마다 강한 집중력을 보인 것입니다. 최동수의 득점권 타율은 시즌 타율보다 높은 0.375입니다.

최동수는 커리어 내내 볼넷보다 삼진이 많았지만 올 시즌에는 현재까지 볼넷 8개, 삼진 6개로 볼넷이 삼진보다 더 많습니다. 팀과 후배들을 위해 출루에 집중했다는 의미입니다. 가히 ‘무욕의 최고령 선수’라 할 만 합니다.

최동수가 감동적인 이유는 팀 전력에 누수가 발생할 때마다 묵묵히 빈자리를 메웠기 때문입니다. 시즌 초 작은 이병규가 1군에 올라오지 못했을 때는 1루수로, 상대 좌투수가 선발 등판하면 지명 타자로, 4번 타자감이 마땅치 않을 때는 4번 타자로 다양한 보직을 오가며 빈자리를 훌륭히 메웠습니다. 어떤 선수들은 4번 타자 보직을 맡은 지 한 달 만에 바닥을 드러냈지만 최동수는 ‘임시 4번 타자’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활약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주 LG의 성적은 좋지 않았습니다. 넥센과 KIA로 이어지는 6연전에서 1승 5패에 그친 것입니다. 하지만 최동수의 투혼만큼은 빛났습니다. 5월 23일 잠실 넥센전에서 LG는 경기 초반부터 실책을 연발하며 대량 실점해 패색이 짙었습니다. 최고참 최동수는 이날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지만 경기 중반 공수교대 시 후배들을 더그아웃 앞에 모아놓고 강하게 질책했습니다. 프로답지 않은 부진한 플레이를 반복한 후배들의 각성을 촉구한 것입니다. 최동수의 질책 때문인지 LG 타선은 8회말과 9회말 연속 득점하며 집중력을 되찾았고 다음 날 넥센을 상대로 1회말부터 집중타를 터뜨리며 승리해 연패를 끊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주말 KIA와의 3연전에서 LG는 모두 패했지만 최동수의 투혼은 여전했습니다. 장기간 침체에 빠진 정성훈을 대신해 5월 27일 경기에 4번 타자로 기용된 박용택마저 부진하자 5월 28일 경기에서 4번 타자의 빈자리를 메운 것은 최동수였습니다. 최동수는 1회초 2사 후 선취점을 얻는 적시타를 터뜨리는 등 4타수 2안타 1볼넷 2타점으로 분전했습니다. 6:2로 뒤진 8회초에는 선두 타자로 나와 안타로 출루한 뒤 이병규의 우전 안타에 3루까지 내달려 몸을 내던지는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투혼을 과시했습니다. 후배들에게 역전에 대한 강한 열망을 드러낸 것입니다.

최동수는 어제 사직 롯데전에서 다시 4번 타자로 출전해 3회초 역전 결승타를 터뜨리는 등 5타수 2안타 1타점으로 활약하며 LG의 3연패를 끊었습니다. 최근 최동수가 최고참으로서 강한 승부욕을 보인 다음 경기마다 LG는 연패에서 탈출해 5할 승률을 사수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LG 선수들의 마음자세가 모두 최동수만 같다면 올 시즌 LG는 시즌 종료까지 5할 승률을 유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최고령 선수 최동수의 투혼이 아름답습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