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노조 파업에서 이탈해 곧바로 뉴스데스크 앵커자리로 복귀한 배현진 아나운서가 파업 중 폭력행위가 있었다는 폭로를 해 파장이 일고 있다. 사실이라면 아무리 노조가 공정방송이라는 숭고한 의지를 내세우고 있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런데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사실여부를 떠나 배현진 아나운서의 주장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앞서 권재홍 앵커는 시용기자 채용에 항의하는 노조원들에게 폭행을 당해 입원했다는 발언을 했다. 그것도 뉴스 시간에 한 말이었다. 그러나 노조에서 공개한 당시 상황을 보면 권재홍 앵커와 노조원들 사이는 경호원들로 몇 겹의 장벽이 세워져 도저히 신체접촉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결국 권 앵커는 “후배 기자들의 장풍에 맞은 것이냐?”는 비웃음만 사고 말았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허리우드 권. 신체접촉도 없이 부상당해 입원까지 한 것이라면 이만한 허리우드 액션은 없을 것이다. 미국의 오노도 한수 배워가야 할 수준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서 다시 권재홍 앵커의 짝 배현진 아나운서의 폭력주장이 나왔다. 톱기사로 보도한 노조원 폭행 사실이 거짓임이 밝혀졌음에도 아무런 해명이나 사과 없이 다시 뉴스데스크 앵커 자리로 돌아온 권재홍 앵커에 대해서 배현진 아나운서의 판단은 어떨지 궁금하다.

또한 그렇게 나란히 앉아 있는 두 앵커가 똑같이 노조에 대해서 폭력을 부각시키려 하는 것이 단순히 우연한 결과로 보이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또한 권재홍 앵커처럼 절대 폭행이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을 혼자서 폭력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닌지도 모를 일이다. 뉴스데스크 앵커들에게는 노조한테 폭행당했다는 착각하거나 주장하는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는 지도 의심스럽다.

배현진 아나운서는 다시 한 번 자신에게 가장 준엄한 대상은 시청자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과연 자신이 하는 말의 의미를 알고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뉴스데스크는 사내방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저조한 시청률로 이미 시청자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 굴욕의 아이콘 종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시청률의 의미는 대체 어떻게 해석하는지부터 밝혀야 할 일이다.

배현진 아나운서에게 시청자라는 대상이 진정 존재하기는 하는지 묻고 싶어진다. 그러나 가수나 배우가 시청자 혹은 팬을 높이는 것과 같은 방송에 노출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기자나 아나운서는 그들과 같을 수 없다.

아나운서 혹은 기자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는 시청자가 아니라 진실이며, 뉴스의 힘은 시청률이 아니라 보도하는 자의 신념과 용기에서 나온다. 그렇지 않다면 뉴스 앵커는 앵무새에 불과하다. 설혹 배현진 아나운서에게만 특별히 시청자의 권위가 최우선시 된다하더라도 이미 신뢰를 잃은 뉴스데스크에 앵커로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배현진 아나운서는 사내방송으로 전락한 뉴스데스크 앉아서 시청자를 운운하며 공정방송을 위해 싸우는 노조를 폄하할 것이 아니라 먼저 시청률 2%에 담긴 시청자의 분노와 질타부터 들을 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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