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이상규 당선인은 엊그제 백분토론에서 시민논객의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유보했다. 그리고 그는 시민논객의 질문과 진중권의 답변독려 등이 사상검증의 차원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미디어오늘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충분히 밝힐 수 있는 입장을 갖고 있었지만 이분법적으로 내 사상을 검증하려는 폭력에 답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해 그렇게 말했던 것”이라 말한 것이다.

그러면 그에 대한 질문이 사상검증이었는지는 일단 제쳐두고 ‘충분히 밝힐 수 있는 입장’에 대해 얘기해볼 필요가 있겠다. 유권자에게 필요한 것은 이상규 당선인의 견해인 것이지 꼭 백분토론이란 특정한 장소에서 무슨 말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그는 그저께 저녁 대답하지 않았던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링크).

▲ 미디어오늘 오늘자에 실린 이상규 인터뷰

(북핵 문제에 관해)
북핵의 경우 진보진영은 핵발전소 등 발전용 핵이든 군사용 핵이든 모든 핵을 반대하고, 탈핵 탈원전 생태에너지 추구한다. 원전은 시간이 지나면 더욱 많은 위험과 비용 들기 때문이고, 군사용 핵에 대해서도 당연히 찬성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북핵에 대해 내가 기본적으로는 찬성할 수 없다. 하지만 북한이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관계에서 압박을 받으며 고립·봉쇄된 채 늘 군사적 대결상태에 있는 조건을 고려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빨리 북미 간 조성된 대결관계가 해소되고 동북아의 평화질서가 구축돼 북핵 문제도 평화롭게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한이 핵을 가질 수밖에 없는 처지를 이해하면서도 기본적으로 핵없는 세상, 나아가 군사적 충돌이 아닌 평화로운 동북아 질서로 가는 것을 추구한다.

(3대세습과 인권문제에 관해)
남쪽의 시각에서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그 점을 인정하고 출발해야 한다. 반대로 남쪽 자본주의 체제를 북한이 인정하겠느냐. 이해조차도 안 될 것이다. 아마도 북한 사람들은 남한을 퇴폐적 사회 쯤으로 생각하지 않겠느냐. 남한도 인권탄압이나 후계세습 문제는 당연히 이해되지 않는다. 문제는 계속 이렇게 이상한 집단으로만 볼 것인가. 북한은 북한대로 전쟁 이후 여전히 미국과 대치상태인데다, 이라크·아프간·리비아 등이 서방, 특히 미국에 의해 침략당하는 모습을 보며 나름대로 생존방식 추구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한다. 이런 총체적인 시각도 필요하고 나아가 북한이 왜 저러는지 제대로 알려면 교류와 협력이 보다 강화되고 남북관계 개선돼 상호협력 높이는 게 더 필요한 것이다. 일방적으로 매도하거나 사악시하기만 한다면 남북관계 문제해결이 안되고, 대결국면으로 치닫는 것이다.

살펴보자면 그는 북핵문제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찬성할 수 없지만 가질 수밖에 없는 처지를 이해하고 평화로운 동북아 질서로 나아가기 위해서 대화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3대세습과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남한 입장에선 이해가 안 되지만 그들 입장에선 나름대로 생존방식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란 이해도 필요하며, 북한을 제대로 알려면 상호 교류와 협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런 답변이 찬성과 반대의 ‘이분법’을 벗어나는 것이라 여길 것이다. 북한의 행동들에 대해 찬성은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반대해서는 교류협력이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이분법 반대’ 안에 깔린 논리구조다. 그러나 기자는 같은 식으로 그의 ‘이분법 반대’가 ‘이분법’에 갇혀 있다고 돌려줄 수 있다. 이상규 당선인은 북한에 대한 태도로 ‘대결국면’과 ‘교류협력’의 이분법을 상정하고 부당하게도 ‘비판’을 왼쪽에 배치한다. 분명히 그도 백분토론에서 “비판할 건 비판해야 한다”고 말했으면서도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물으면 교류협력을 핑계로 비판을 회피하는 것이다.

물론 자세히 보면 찬성할 수 없다고 말한 것도 핵무기 정도일 뿐 나머지 사안들은 ‘남쪽 입장에서’ 비판할 수 있다고 했다. 이상규나 통합진보당이란 주어는 뒤로 숨었다. 공개된 장소에서 토론하면 이런 부분에 대해 계속 질문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를 사유화하는 행태와 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인지, 그 문제의식을 보편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인지 등에 대해 질문받을 수 있다. 당연히 이런 질문을 하는 것도 정치인의 정치관을 알고 싶어하는 유권자의 알 권리에 해당한다.

‘반대’도 아니고 ‘찬성할 수 없다’고만 적은 북핵문제도 마찬가지다. 찬성할 수 없지만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는 그 ‘이분법 반대’가 무슨 의미인지 알아보려면 추가질문이 필요하다. 가령 이런 것이 가능하다 “구 민주노동당 시절엔 북핵 개발에 대한 비판 논평이 제대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북핵 문제가 터져도 미국만을 비판하는 논평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북핵에 찬성은 못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북한이 핵개발을 한다고 했을 때 이상규 당선인님이나 통합진보당이 그 의사를 공식적으로 말씀하실 수 있으십니까? 아니면 이해를 하기 때문에 입장을 숨기고 비판을 삼가시겠습니까?” 과거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은 있을지라도, 여하간 이 문제에 대해선 아직 이상규 당선인의 입장을 알 수 없다. 그래서 토론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계속 입장을 유보하다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 논평만 내는 것도 그들의 ‘자유’지만, 유권자의 뒤통수를 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 지금은 통합진보당에 건너간 조승수 의원은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에 항의하는 국회의 대북결의안에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져 많은 사람들의 비판을 받았다. ⓒ연합뉴스
인터뷰에서는 이런 질문에 대해 답변해야 할 필요가 없다. 인터뷰의 목적은 얘기를 이어나가 인식의 전환이나 합의에 도달하는 것에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그 사람의 생각을 알아내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이상규 당선인이 TV토론에서 질문을 받는 것보다 인터뷰에 답변하는 것을 선호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선 언론에도 아쉬운 부분이 있다. 그의 답변을 들으면 누구나 자연히 떠오르게 되는 의문들에 대해 다시 질문하고 답을 얻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사실은 단순한 ‘이분법’에 포섭되지 않는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훨씬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가령 엊그제 토론에서 김종철 진보신당 부대표가 사례로 제시한 당시 진보신당 대표였던 조승수 의원의 경우를 보라. 그는 연평도 포격 이후 대북결의안에 대해 ‘반대’표를 던졌다. 이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은 '찬성 아니면 반대'처럼 양자택일인 경우도 많다. 이 양자택일의 선택이 상대방이 편견으로 만든 이분법과 다른 의미임을 강변하려면 상세한 맥락의 설명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스스로 이분법에 포섭되지 않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려면 누구보다도 더 많은 발언권을 요구해야 한다. 그럴 때에야 이분법을 벗어난다는 그들의 입장이 겨우 이해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규 당선인의 태도는 사상검증을 핑계로 되도록 그 주제에 대한 언급을 피해가고 싶다는 것에 가깝다. 이분법으로 포섭되지 않는 상세한 맥락을 설명하는 것과 문제의 핵심을 회피하기 위해 이런 저런 맥락을 두서없이 늘어놓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이상규 당선인과 통합진보당이 하는 일이 전자라고 인정받으려면 훨씬 성의있는 토론의 자세가 필요하다. 진보언론도 그들의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할 게 아니라 그 해명을 듣고 시민들이 떠올릴 의문을 대신 질문해 주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애매한 말의 성찬 속에 숨어 있는 한 가지 명백한 오류만은 지적하도록 하자. 리비아는 서방이나 미국에 의해 침략당한 것이 아니다. 리비아는 핵무기 개발 능력을 카다피 정권의 안정과 맞바꾼 후 서방 세계와 잘 지내왔다. 그러다 민중혁명이 일어났고, 그것에 학살로 대항하다 뒤늦은 UN 및 다국적군의 개입으로 카다피 정권이 전복된 것이다. 다목적군의 역할이 타당했는지에 대해선 토론이 가능하고, 북한정권 입장에서야 카다피 사례를 보고 핵과 체제안정을 맞바꿔도 실패할 수 있다는 경고를 받고 더욱 더 핵을 움켜지게 되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사건이 서방세계의 침략 사례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의 친서를 읽던 카다피의 모습. 그도 한때는 반제 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연합뉴스

모두 알다시피 카다피는 제3세계에서 반제국주의의 기치를 내건 독재자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NL 이념이 한때나마 국제주의적이었다면, 카다피야말로 그 이상에 부합한 사람 중 하나였다 볼 수 있다. 기자는 NL들이 카다피가 제 인민의 머리 위에 폭탄을 내려꽂는 이 세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지 종종 궁금했다. 그러나 이상규 당선인의 말을 들어보면, 그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도 별 고민없이 ‘서방세계(미국)의 침략’이라고 단정짓는 모양이다. 그런 시각이라면 그들이 북한(정권)에 대한 우리의 모든 비판 행위가 사악한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해도 ‘내재적 관점에서 이해’된다. 독재자의 인민에 대한 학살에도 무신경한데 3대세습이나 인권유린 정도가 대수겠는가.

이처럼 ‘이분법’을 벗어났단 그들의 발언은 꼬리에 꼬리를 묻는 질문을 낳는다. 그들이 이 모든 질문에 대해서도 ‘충분히 밝힐 수 있는 입장’이 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원내에 입성하는 상황에서 그런 게 없다면 벼락치기를 해서라도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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