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20회를 만든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것도 한 주에 두 편의 방영분을 만든다는 것은 사전제작이 아니라면 반드시 무리와 사고가 따르는 법이다. 한국의 드라마는 종영에 가까워지면 당연한 것처럼 생방송 체제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자연 용두사미는 한국 드라마의 전형처럼 굳어져 버렸다. 그나마 특별한 방송사고만 없다면 시청자 역시도 불가피한 일로 여겨버릴 정도로 이골이 나 있다.

적도의 남자 역시 이 생방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종영을 하루 앞둔 23일 적도의 남자 19회는 방송 분량을 거의 10분이나 잘라먹는 대형 방송사고가 벌어졌다. 아마도 방송사상 전무후무한 사고가 아닐까 싶다. 최근 드라마 방송사고의 대명사가 된 싸인의 화면조정 삽입은 적도의 남자에 비하면 차라리 애교에 가까울 정도다. 몇 초와 몇 분의 시간 차이가 아니다. 그래도 싸인은 방송사고만 뺀다면 드라마 내용에는 큰 지장은 없었다.

그러나 적도의 남자는 드러난 방송사고보다 더 큰 사고를 저질렀다. 19회를 통해서 적도의 남자 주요인물들이 모두 정체성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그 중심에는 진회장의 난데없는 납치극이 있다.

진노식(김영철)이 태국 리조트를 김선우(엄태웅)에게 빼앗긴 후 곧바로 한지원(이보영)을 납치했다. 진 회장은 김선우에게 회사를 돌려주면 한지원을 풀어주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김선우는 진회장의 오른팔 박 실장을 납치해 옥상에서 폭행과 협박을 통해 한지원의 소재지를 알아내 구출하게 된다.

분명 진노식은 후배를 죽일 정도로 악한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진회장의 진승그룹은 조폭이나 범죄집단은 아니다. 당연히 회사를 빼앗겼다고 해서 그 보복도 아니고 되찾기 위해서 상대의 여자를 납치한다는 발상은 가능한 범주에 있을 수도 없다. 거기까지가 끝이 아니다. 한지원을 구출하기 위한 김선우의 대응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다.

김선우는 진노식의 수하 박 실장을 옥상을 끌고 와 폭행한 뒤에 옥상에서 떨어뜨리려는 협박을 통해서 한지원의 행방을 알게 된다. 너무 쉬운 것도 허무한 일이지만 그보다는 김선우를 갑자기 폭력배로 만들어버린 것이 더 문제다. 게다가 금줄은 또 무슨 죄로 그 폭행에 가담시켰는지 안쓰러울 뿐이다.

또한 줄곧 김선우에게 용서를 권하던 한지원이 납치를 당하고서는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을 하게 한 것은 가장 최악의 대사였다. 평범하게 살던 여자가 납치당한 경험이 결코 작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도 죽게 하고, 사랑하는 남자를 평생 원한에 사무치게 한 진노식에 대해서 용서를 말하던 한지원이다. 그 깊은 마음이 단순히 납치를 당했다는 사실 하나로 용서 못하겠다는 독한 마음으로 돌아서게 한 것은 시쳇말로 시청자를 맨붕하게 한 막장 전개였다.

그런가 하면 수미에 대한 선우의 손찌검은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숨겨놓은 그림들을 전시할 때는 우발적인 일이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이번에는 수미의 화실을 찾아가 그림들을 칼로 찢고는 달려드는 수미의 얼굴을 굴욕적으로 뭉개 패대기를 친 것은 전혀 선우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수미는 더 엉망으로 벌을 받아야 마땅한 여자다. 그렇지만 선우의 행동은 복수도 뭐도 아닌 그냥 깽판에 불과하다.

수미에게는 그림밖에 없으니 그것들을 훼손함으로써 복수를 하고자 했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화실을 몽땅 불태워 버렸다면 몰라도 그림 몇 점을 칼로 찢은 것은 선우를 조잡하게 만든 것에 불과했다. 복수도 아니고, 심판도 아닌 사소한 손찌검은 볼썽사나운 짓이었다.

또한 해븐 리조트 인수합병에 김선우 편을 든 아내에게 화가 났다고 해서 의붓딸에게 폭언을 하는 것까지는 그럴 수 있겠지만 딸의 턱을 에로틱(?)하게 쥐는 장면은 당황스러운 연출이었다. 이 엉뚱한 장면은 방송사고부터 엉망인 대본까지 19회 전체를 상징하는 듯했다.

워낙 대형 방송사고가 터져서 그렇지 19회는 지금까지의 적도의 남자를 몽땅 뒤엎는 전개가 더 심각한 문제였다. 본래 집필하던 작가가 아닌 다른 사람이 썼나 싶을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물론 결말은 시작보다 어렵다. 어렵다고 집필을 쉴 수도 없는 드라마 작가의 고충을 이해한다손치더라도 19회의 납치극을 벌인 것은 좀처럼 용서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적도의 남자를 명작 드라마로 굳게 믿었던 시청자에 대한 충격적인 배신이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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