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경기(17일)에서 LG는 살 떨리는 투수전 끝에 SK에 1:0으로 짜릿하게 승리했습니다. 선발 정재복의 6.2이닝 무피안타 무실점 호투가 놀라웠지만 2이닝 동안 2피안타 무실점으로 승리를 지키며 마무리 봉중근에게 마운드를 넘긴 유원상의 호투도 훌륭했습니다.

유원상은 LG의 모든 선수들 중에 겨우내 가장 극적으로 탈바꿈한 선수입니다. 지난 시즌 유원상은 34경기에 등판해 1승 5패 3홀드 평균자책점 6.29에 그쳤습니다. 2006년 데뷔 이래 항상 가능성 이외에는 보여준 것이 없는 모습이 한화에서 LG로 트레이드된 지난해에도 반복되었습니다.

하지만 유원상은 차명석 투수 코치와 호흡을 맞추며 환골탈태했습니다. 투구 동작 시 스윙을 짧게 하는 것으로 바꾸면서 소위 ‘패대기’라 불리는 바운드 볼이 크게 줄고 제구가 눈에 띄게 향상되었습니다. 빠른 구속에 비해 제구가 불안했던 투수의 대명사 중 한 명이었던 유원상이 올 시즌 내준 볼넷은 고작 4개인 반면, 삼진은 무려 16개를 뽑았습니다. 삼진과 볼넷의 비율이 4:1이나 됩니다. 9이닝 당 볼넷수로 환산하면 1.38개에 불과합니다. 산술적으로 한 경기에서 완투해도 2개의 볼넷도 주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패대기’의 상징인 폭투는 단 한 개도 없습니다.

▲ 유원상 선수ⓒ연합뉴스

유원상의 제구가 향상되어 기다려봤자 볼넷으로 걸어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상대 타자들은 빠른 카운트에서 승부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유원상의 이닝 당 투구수는 13.9개입니다. 투수가 한 이닝을 15개의 투구수로 막아내면 이상적이라 판단하는데 그보다 적은 것입니다. 이닝 당 출루허용률(WHIP)도 1.08에 그치고 있습니다. 유원상은 현 시점에서 리그 최고의 우완 셋업맨이라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올 시즌 유원상은 승패 없이 1세이브 7홀드 평균자책점 1.04를 기록 중입니다. 시즌 초반 마무리로 낙점된 리즈가 불안한 투구를 반복한 끝에 선발로 돌아갔으며 새로운 마무리 봉중근이 연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유원상은 홀로 불펜을 이끌어왔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올 시즌 LG의 불펜에서 개막 이후 현재까지 단 한 번도 엔트리에서 제외된 적이 없는 투수는 단 2명으로 이상열과 유원상 뿐입니다. 이상열은 좌완 스페셜리스트로 1이닝 이상을 소화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유원상은 1이닝 이상을 소화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많습니다.

따라서 유원상에게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 도래했습니다. 유원상은 현재 19경기에 등판했는데 LG가 치른 31경기 중 61%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일주일에 6경기가 열리면 그 중 4경기에 등판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유원상의 등판 경기 수는 롯데 이명우에 비해 두 번째로 많은데 이명우는 좌완 스페셜리스트로 소화 이닝이 10.2이닝에 불과합니다. 반면 유원상은 26이닝을 소화해 구원으로만 출전한 투수 중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유원상이 많은 경기에 등판할 수밖에 없는 LG의 어려운 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우규민, 한희 등 기대했던 우완 투수들이 부진으로 2군으로 내려갔으며 마무리 봉중근의 연투가 불가능해 현재 유원상은 중간과 마무리를 사실상 겸하고 있습니다. 봉중근이 등판 가능한 날은 셋업맨으로 등판하지만 봉중근의 등판이 불가능할 경우 유원상은 마무리로 등판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중간과 마무리를 겸한다는 의미에서 혹사의 상징이었던 ‘중무리’라고는 할 수 없어도 유원상의 현재 보직은 그에 가깝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혹사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특히 불펜 투수의 경우 구위가 좋아 중용되어 연투하게 되면 금세 구위 저하로 통타 당하거나 제구 난조에 빠지곤 합니다. SK 박희수와 롯데 최대성이 최근 주춤한 이유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제 경기에서 유원상이 1:0 박빙의 리드를 지키기 위해 2이닝을 던진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5월 15일 SK전에서 2:2이 동점이 된 6회말에 등판시킨 것처럼 빠른 이닝이나 동점 혹은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활용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과거 LG의 감독들은 좋은 구위를 자랑하는 젊은 투수가 등장하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관리를 통해 아껴 쓴 것이 아니라 혹사시키곤 했고 그 투수는 단기간에 구위를 잃으며 팀 또한 함께 추락했던 뼈아픈 기억을 지니고 있습니다.

LG는 아직 올 시즌의 1/4도 소화하지 않았습니다. 100경기도 넘게 남아 있습니다. 10년 만의 포스트 시즌 진출을 바라보기 위해 김기태 감독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은 마라톤과도 같은 페넌트레이스를 긴 호흡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야수들 또한 유원상이 등판한 경기 종반 실책을 범해서는 안 됩니다. 리그 최강 셋업맨으로 떠오른 유원상이 벤치의 관리와 동료들의 도움에 힘입어 강력한 구위를 시즌 내내 유지할 수 있다면 LG의 가을 야구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집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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