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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당권파, ‘조중동 프레임’에 매달리면 살 수 있나여러분을 적절하게 비판한 조선·중앙의 칼럼을 소개합니다
한윤형 기자 | 승인 2012.05.17 11:35

   
▲ 오늘자 조선일보 39면
 

“조중동이 만들어낸 거죠”, “이미 과거가 된 일을 현재형처럼 만들어내는 것이 조중동 프레임이다.”, “무서운 세상이다. 게시판에 누가 의혹을 던지고 조중동이 실으면 그게 현실이 된다.” 9일자 한겨레 2면 이석기 2번 당선자의 인터뷰에선 ‘조중동’이 세 번이나 언급된다. 각각 그가 당권파의 실세라는 주장, 종북주의라는 비판, 운영했던 CNP 그룹이 당권파의 자금줄이라는 주장에 대한 해명이다. 오늘 아침 YTN 김갑수의 출발 새아침에선 훨씬 더 심했다. 조중동이 만들어낸 걸 일부 진보언론이 받은 것이 문제고, 자신을 비판한 자당의 이청호 부산 금정구 의원도 조중동의 보도를 통해서만 봤다고 말할 정도였다. 마치 '조중동'이란 단어를 쓰지 않으면 말을 이어갈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이 해명들 중 일부는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부정경선 사태 전체가 '조중동의 소설' 안에만 존재한단 말을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이젠 참여정부 시절 전가의 보도처럼 '조중동 프레임'이란 말을 쓰던 노무현 지지자들조차도 통합진보당 구 당권파 지지자들이 이 단어를 쓰면 “대체 이 맥락에서 그게 왜 튀어나오냐”며 ‘멘붕’한다.

통진당 경선 부정 문제는 ‘조중동의 소설’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의 소리’를 제외한 남한의 모든 언론에서 철저하게 비판받은 문제다. 따라서 “너희들이 ‘조중동 프레임’에 놀아나고 있다”는 구 당권파 일각의 주장은 거론될 가치가 없다. 그러나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생각해보자. 과연 이 문제에 관한 조중동의 칼럼엔 받아들일만한 부분이 없을까?

물론 조중동의 보도기조는 진보언론들에 비해서 볼 때 구 당권파를 친북세력으로 몰고, 그들이 장악한 통진당과 연대를 하는 민주당의 정권교체에 친북의 굴레를 뒤집어 씌우려는 의도가 보였다. 그러나 그런 의도와는 또 별개로, 조중동의 통진당에 대한 비판에도 들을 구석은 있다. 조중동이 이석기 등의 과거가 어땠는지만 가지고 물고 늘어진다면 ‘색깔론’이란 비판도 가능하겠으나, 이석기 등 통진당 인사들의 현재 생각까지 묻는다면 얘기가 또 다르다.

‘북한 3대세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북한 핵무기 개발이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라는 질문에 그들이 보편적 정의와 대중적 상식에 현저히 벗어나는 대답을 하거나 침묵한다면, 그 사실 자체가 언론이 시민들에게 마땅히 전해야 하는 정보가 되기 때문이다. 이석기나 김재연이 끝내 사퇴하지 않는다면 조중동은 그야말로 통진당을 야당세력을 대선 기간 내내 ‘조질 수 있는’ 꽃놀이패로 받아들이고 환호할 것이다. 이 상황도 사실상 그들이 자초한 것이지 무슨 논리나 윤리로 조중동의 행동이 잘못 되었다고 성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런 일반론을 넘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칼럼에는 진보진영에 대한 훌륭한 고언이나 통진당 구 당권파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바람직한 태도에 관한 성찰이 보이는 것들이 있다(동아일보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이석기나 김재연이 후안무치한 모리배 혹은 종교적 광신자라도 한미 FTA를 합당한 논거로 비판할 수 있는 것처럼,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에게도 물론 그와 같은 일이 가능하다. 악마의 신문 조중동은 읽지 않을 통진당 구 당권파를 위해 기자가 손수 몇 개를 뽑아왔으니 밑줄 쳐가며 읽었으면 좋겠다.   

먼저 오늘자 조선일보에 실린 정우상 논설위원의 칼럼이 있다. <진보, '전태일 정신'으로 돌아가라>라는 칼럼이 있다. 제목부터 가슴을 후벼판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자. (링크

당시 민노당 정책실에는 폐쇄적이지 않고 '진보의 현대화'를 고민했던 독종(毒種)들이 많았다. 이들은 '닥치고 반미(反美)' '닥치고 후보 단일화' 같은 이야기를 하면 코웃음을 쳤다. 이들이 만든 정책이 대형마트 규제, 상가 및 주택 임대차 보호법, 복지확대를 위한 조세개혁,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 같은 것들이었다. 대형마트 규제는 8년 뒤에 빛을 봤고, 조세개혁과 복지는 지금 정치권의 가장 큰 쟁점이다. 이들은 '자본주의 극복'을 이상으로 삼았지만 아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내놨다. 법과 제도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상담하고 그 결과를 정책으로 만들었다.

(...) 지금은 통합진보당이 진보의 대표 행세를 하고 있지만, 진보정당이 현재의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기반을 닦았던 많은 사람들은 진보당과 손을 잡지 않았다. 진보신당에 남은 김종철 부대표에게 주사파들과의 재결합을 거부했던 이유를 물었더니 대답은 "진보정당 오래하고 싶다"는 거였다. 정권교체라는 이유만으로 북한 추종 노선을 묻어두고, 복지문제에는 관심도 없는 세력과 연합하면 진보정당은 곧 사라질 것이란 설명이었다. 그는 이번 총선에서 5% 득표율로 낙선했다. 뭐 하러 그 고생을 하며 진보정당을 하는지 물었더니 김종철은 "아직 불쌍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답했다.

한국에서 진보의 시작은 주체사상이 아니다. 숨 막히는 골방에서 여공들과 함께 눈물 흘리며 "불쌍한 평화시장 어린 동심 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쳤던 전태일이다. 진보는 다시 '전태일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당권이니, 야권연대니, '닥치고 뭐니' 하는 권력다툼은 그다음 일이다. 비정규직, 독거 노인, 다문화 가정, 그리고 폭압체제에서 헐벗고 있는 2400만 북한 주민들의 삶에서 다시 진보의 길을 찾아야 한다. 진보가 건강해야 이에 자극받은 보수도 혁신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구구절절하게 옳은 조언이다. 물론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만시지탄이다.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이 당시 민주노동당에 대해 이 정도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면, 민주노동당의 역사는 달라졌을 수 있다. 그들은 “진보가 건강해야 이에 자극받은 보수도 혁신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란 정론을 알았으나, 보수가 혁신하는 것보단 보수가 집권하는 것을 더 중시했기에, ‘건강한 진보’를 키워내는 것을 거부했다. 그 결과 그들은 정말로 자신들이 원하는, 친북이 진보를 참칭하는 세상에 살게 되었다고 비아냥대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얘기는 보수언론이 그렇게 했더라도 진보진영에서 자정능력이 있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기에 ‘제 얼굴에 침뱉기’기도 하다.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진보의 처지를 동정하는 세상이 서글프기만 하다.

다음으로 소개할 글은 16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권석천 논설위원의 <그때 기자들은 어디 있었나>라는 칼럼이다. 정파지들의 현실에 대한 비판과 자기반성이 눈에 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자. (링크)

팩트는 가차 없다.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환부는 곪을 대로 곪게 된다. 파이시티 사건과 통합진보당 사태엔 워치독(watch dog·감시견)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한 언론의 책임도 있다. 이런 상황은 지난 4년간 언론이 진영 논리의 포로가 됐다는 비판을 받아온 것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 (...) 정치세력들은 “좌파에 도움을 주려는 거냐” “보수의 프레임에 넘어가면 안 된다”며 그런 상황을 즐겼다. 시간이 흐르자 다른 매체에 뭐가 나와도 “그건 우리가 쓸 게 아닌데…” 하고 넘겨버렸다. 대신 스마트폰 세상에서 유명 인사들의 트윗을 실어 나르는 데 바빴다. (...) 제도권 언론이 보고 싶은 사실에 안주하는 동안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것이 ‘나는 꼼수다(나꼼수)’ 같은 유사 언론이었다. 

   
▲ 16일자 중앙일보 34면

이것이 과연 우리가 중앙일보에서만 보아야 할 글일까? 가령 한겨레 논설위원 중 하나라도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한겨레는 떳떳한가? 이제야 통진당이 진보세력과 나라를 망칠 것처럼 이런 저런 진보언론 지면에 글을 쓰는 진보지식인들은 정말로 떳떳한가? 기자의 생각으론 그런 것 같지 않다.

하나 더 살펴보자. 이번에 소개할 글은 15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이철호 논설위원의 <경기동부에 채찍보다 햇볕을 …>이란 칼럼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칼럼 만큼은 구 당권파들이 반드시 읽었으면 좋겠다. 그들은 그들 사상에 대한 관용과 햇볕정책을 참 좋아하지 않던가? (링크)

진보진영 인사에 따르면 경기동부가 공식회의를 짓밟은 비밀은 따로 있다. 가장 예민한 뇌관이 ‘당원 명부’와 총무실이라고 한다. 그들은 당원 명부가 공안 당국에 넘어가면 끔찍한 탄압이 기다린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회계·재정을 주무르는 총무실을 넘기는 것도 악몽이다. 지난 8년간 유령당원, 당비 대납, 광고 몰아주기 등의 온갖 불법이 드러날 수 있다. 자칫 양심범이 아니라 횡령·배임의 파렴치범으로 몰리는 게 두려운 것이다.

이제 경기동부는 주홍글씨가 됐다. 그렇다고 공안 당국의 수사가 능사(能事)는 아니다. 한 번쯤 주사파의 과거를 되짚어 보았으면 한다. 1986년 옛 안전기획부는 구국학생연맹(구학련)의 서울대 법대생 김영환·하영옥·박○○군 등을 체포했다. 김영환은 “내가 강철서신을 썼다”고 자백했지만, 안기부는 “믿을 수 없다”며 끔찍한 고문을 가했다고 한다. 김씨는 “그때의 기억이 골수 주사파가 된 원형질”이라 고백했다. 이후 대학가의 지하서클 수준이던 구학련은 반제청년동맹→민족민주혁명당의 지하당까지 치달았다. (...)

경기동부도 햇살에 노출되자 단박에 거덜이 났다. 민주노총마저 등을 돌릴 분위기다. 하지만 더 이상 순교자를 만들 게 아니다. 당국의 칼날이 어른거리는 순간 ‘공안탄압’의 물타기와 단합의 빌미가 될지 모른다. 오히려 출당(黜黨)이든 봉합이든 진보진영에 온전히 맡겼으면 한다. 이미 국민들은 어느 쪽이 옳은지 충분히 판단하고 있다. 박 변호사의 변신이 증거하듯 나는 우리 사회의 상식과 건강함을 믿는 쪽이다. 

   
▲ 15일자 중앙일보 34면

체제와 국가보안법의 탄압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그들의 정당성의 근거를 제공해 주지 않는다. 그들 인생의 험난한 경로와는 별도로, 그들은 탄압을 받음으로서 이렇게 남한 사회의 모든 언론에 등장하는 정치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진보진영 일각에서나 했던 얘기들을 이제는 보수언론 칼럼니스트가 하고 있다. 공안당국의 탄압이 사라진 세상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 구 당권파가 한 번 더 고민해 봤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칼럼은 16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오병상 수석논설위원의 <진보당 이해의 정석>이라는 칼럼이다. 당권파들의 행동의 근거가 되는 저 유명한 ‘군자산의 약속’이란 문건을 살피면서 그들의 정치적 행동의 원인을 추론해 보는 글이다. (링크) 이 역시 진보진영에서도 나오던 분석이다. 칼럼은 이렇게 끝난다.

10년의 노력 끝에 목표달성을 눈앞에 두고 부정·폭력사태가 터졌다. 무엇보다 정당정치를 수단으로 간주하는 태도가 화근이었다. 통일이라는 지고지순의 목표 앞에서 정당정치의 민주적 절차 따위는 무시됐다. 민주적 정당정치를 부정하면서 제도권 정치참여에 뛰어든다는 생각부터 모순이었다. NL끼리 덮고 감추어 온 모순이 PD와 국민참여당 세력들에 의해 온 세상에 공개됐다. 그간의 성공은 스스로를 감춘 덕분이었다. 언젠가 드러날 모순이었다. 그나마 대통령 선거 이전에 드러나 다행이다.

   
▲ 16일자 중앙일보 35면

구 당권파여, 당신들은 이 사람의 분석과 결론에 무슨 반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여전히 할 수 있는 말은 ‘조중동 프레임’이란 말 뿐인가? 진보진영에서 먼저 나오던 말을 중앙일보가 가져다 써도 ‘조중동 프레임’이라면, 대체 그것의 실체는 뭔가?

기자는 제목에서 이 글의 수신자를 구 당권파로 잡았고 다른 독자들에겐 여흥거리를 주는 척 했다. 하지만 사실은 기자가 상정했던 수신자는 그들을 넘어 본인이 진보개혁 세력에 속한다고 믿는 시민들 전체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상대방의 주장을 ‘조중동 프레임’이란 논거(?)로 무시하는 건 한국의 진보개혁 세력이 스스로의 부족한 정당성을 채우는 주요한 핑계 논리 중의 하나였다. 조중동에 의해 비판받으면  무슨 일을 했던 진보개혁 진영을 사수하는 투사가 되었던 것이 아닌가?

통진당 일부 구 당권파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조중동 프레임’이란 핑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때에, 정도의 차이는 있다지만 그간 우리 진보진영이  ‘조중동 프레임’을 우리의 허물을 감추기 위한 핑계로 남용한 경우는 없었는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윤형 기자  a_hrima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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