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회에는 멜로에 약한 시청자의 눈을 확실하게 현혹시켰다. 취향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사실 키스보다는 그저 깊은 포옹이 더 문학커플다운 재회의 감정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 살짝 아쉽기도 했다. 그래서 차라리 폭풍키스 장면보다는 높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13년만의 입맞춤이니 사람의 자세와는 달리 온몸의 세포들이 두 사람을 격정으로 몰아갔을 것이기에 오히려 상황의 리얼리티를 긍정하는 수밖에는 없다.

선우의 말처럼 가슴 속에 증오를 담아둔 채 사랑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렇지만 수미의 장난으로 선우는 겨우 참아왔던 지원에 대한 마음을 해제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랑과 복수를 동시에 해나가야만 한다. 도통 진척이 없는 ‘선우의 할 일’ 중에 사랑이라도 해결이 됐으니 한편으로는 다행한 일이다.

이제 애초의 목적이었던 선우의 복수 혹은 범죄에 대한 심판의 주제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이것도 결코 녹록치 않다. 사실 15년 전의 두 사건 모두 법적으로 입증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문제다. 택시 기사의 증언이 중요하게 받아들여진다 하더라도 다만 정황증거일 뿐 살인을 입증할 단서는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선우 본인의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선우가 알고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의 기억뿐이다. 그것을 수미가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아직은 알지 못한다. 이 역시 법정에서 입증할 길은 없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선우가 법적인 해결에만 매달리는 것이 사실 부자연스러운 대목이다. 그렇다고 사적해결로 가자니 주제를 벗어나기 십상이라 권할 만한 것은 아니다.

냉철하게 보자면 선우의 복수는 사실상 불가능에서 시작한 것이다. 결국 두 사건 모두 수미 부녀의 태도에 따라 좌우될 뿐이다. 그런데 이 부녀는 진실을 밝힐 의지가 없다. 특히 수미는 장일에게 온갖 수모를 다 당하고도 끝끝내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 그저 장일을 작게 괴롭히는 정도의 도발용으로 쓸 뿐이다. 그것이 패를 조금씩 까는 조율의 문제인지 아니면 끝까지 갈 작정인지는 아직도 명확치는 않다.

그렇게 벽에 부딪힌 사건 해결에 의외의 열쇠를 가져다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수미의 장난의 결과였다. 지원에 대한 장일의 마음을 단념시키려는 욕심에 선우의 정체를 해제시켰고, 그 결과 지원이 선우의 정체를 알게 됨으로 해서 13년 전 수미 아버지 최광춘이 보낸 편지를 비로소 꺼내볼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편지에는 이장일 아버지가 선우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이제는 수미 부녀가 진실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됐다. 이야말로 나비효과라고 할 정도의 엄청난 급진전이다.

분명 수미가 장난치는 과정은 무리가 있는 설정이었지만 그러지 않고는 선우와 지원의 관계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 어려웠던 점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렇게 15년 전의 진실에 실마리를 찾은 선우를 보고 기뻐할 수도 없다. 거기에는 또 다시 인간에 대해서 절망할 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은 왜 미리 얘기해주지 않았을까 궁금해 하지만 수미 아버지를 추궁해가다 보면 자연 알게 될 진실은 선우를 크게 낙담케 할 내용이다. 사실 그뿐만이 아니다. 선우의 최종 목표인 진노식 회장에 대해서도 다 알게 된다면 복수의 동기마저 뿌리째 흔들게 될 일이다. 친아버지가 진회장일 거라는 심증이 틀리지 않다면 이것은 선우에게는 너무도 잔인한 진실이다.

게다가 장일은 마치 스포일러같은 대사를 더했다. “이건 진 회장과 선우의 싸움으로 보이시겠지만 저와 선우, 저랑 진회장의 싸움이기도 해요”라고 말이다. 장일의 이 말은 대단히 중요하다. 장일은 이 사건을 다시 한 번 자살로 왜곡함으로 해서 진 회장과의 인연 또한 끊으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또한 프롤로그에서 장일이 진 회장에게 총을 겨눈 이유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너무 다 드러냈나 싶었는지 작가는 선우에게 용기를 허락했다. 선우는 광춘 아저씨를 추궁하기 전에 장일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편지 내용대로 장일에게 말은 했다. “너희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를 죽였지?” 사실 편지내용은 선우를 크게 뒤흔들 내용이었다. 진 회장이 아니라 장일 아버지가 범인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도발은 상상일 가능이 아주 높다.

선우와 헤밍씨의 보류된 사랑이 시작됨으로 해서 사건 해결의 중요한 실마리를 찾았다. 13년 전 편지를 보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는 광춘 아저씨의 필적을 망고 한 상자로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편지의 주인공을 밝힌다 하더라도 수미의 집착이 사라지지 않는 한 진실에 접근하기는 어렵다. 장일의 편을 포기하지 않는 수미에게 모든 것이 달려 있다는 것이 잔인할 뿐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