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화제의 한미정상회담에서, 한국 기자는 한국 대통령에게, 미국 기자는 미국 대통령에게만 질문을 하라는 대통령실의 방침은 권력과 언론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윤석열 대통령 입장에서, 최소한 미국 언론보단 한국 언론이 상대하기 쉽다는 거 아닌가?

역대 미국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상대를 조롱하거나 깎아내리는 듯한 언동을 했다는 논란에 휩싸이곤 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this man’, 노무현 대통령 때의 ‘easy man’ 논란이 그랬다. 이명박 정권 때는 정상회담 마치고 기자회견에서 아프간 파병 논의 여부에 대해 한국 대통령이 “논의한 바 없다”고 답했는데 곧바로 미국 대통령이 “논의했다”고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이어진 질의에 기자의 질문을 잊어버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poor president란 말을 들었다.

대통령실의 방침은 이런 사례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역시나 외신 기자가 ‘룰’을 어기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편향적 장관 인선에 대한 질문을 하면서 이번에도 어김없이 논란 거리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이런 논란을 감수하고 대통령이 적극적인 태도로 소통에 나서는 것이다. 그간 약속해온 대로 국내외 언론을 불문하고 공격적인 질문에도 성실하게 답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환영 만찬에서 건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정상회담 결과는 지나친 대북 강경론과 미국의 지정학적 이해관계에 대한 종속이라는 비판을 낳고 있지만 선거에 있어서는 여당에 득이 될 전망이다. 자국에 명백하게 손해를 입히는 일을 한 게 아니라면 정상회담과 같은 이벤트는 대통령을 정파의 우두머리가 아닌 국가의 지도자로 각인되도록 해 ‘국정안정론’에 힘을 실어줄 여지가 커지기 때문이다. 만일 언론과의 질의응답에서 논란이 더 커질만한 새로운 악재가 나왔다면 역효과였겠지만, 어쨌든 앞서 문제가 된 발언은 이미 유권자들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문제이기에 큰 파장을 낳지는 않을 걸로 보인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백약이 무효'인 상황에 직면해있다. 애초 새 대통령 취임 직후 치러지는 선거라는 불리한 조건임에도 안일하게 대응한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두 가지 시점의 대응이 문제다. 첫째는 이른바 ‘검수완박’이라 불린 검찰 수사권 축소 입법 국면이다. 윤석열 정권의 초기 악재였던 집무실 이전과 인사 문제가 ‘검수완박’으로 유권자들의 시야에서 멀어져 버린 거다. 중도층은 이때 이미 등을 돌렸다.

둘째는 인사 문제를 다시 부각시킬 절호의 기회였던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다. 더불어민주당의 대응은 한동훈 후보자의 부적격 문제를 진정성 있게 논하기보다는 조국 전 장관 문제에 대한 한풀이를 하겠다는 듯한 모습으로 비춰졌다. 특히 한동훈 장관에 대해선 지지층의 비판 여론이 컸기 때문에 청문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인상은 지지층의 유실을 불러오고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지지율 하락은 이렇게 양측에서의 위축이 다시 확대된 탓이다. 이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은 그간 부적격자로 지목해 온 한덕수 국무총리 임명에 찬성하고 지지자들에게 부적격자 임명을 막지 못했다며 사과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가장 위험한 대응은 빠져나가는 지지층을 잡겠다고 지지자만 이해하고 공감하는 이슈파이팅을 고집하는 것이다. ‘억울하다’고 말하는 게 대표적이다. 최강욱 의원을 둘러싼 부적절 발언 논란과 판결에 대한 일부 지지층의 태도는 위험 요인이다. 이재명 후보가 ‘방탄출마’ 논란에 반박한다며 ‘대장동 몸통’ 얘기를 다시 꺼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총괄상임선거대책위원장과 송영길 서울시장 후보가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 앞에서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연합뉴스)

최근에는 ‘개딸’을 자처하는 일군의 지지자들이 박지현 비대위원장을 공격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는데, 박지현 비대위원장이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이런 모습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 식구’ 아니면 포용하지 못하고 반대로 ‘우리 식구’는 무슨 잘못을 해도 감싸는 집단이라는 오명을 다시 뒤집어쓸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방선거를 치르고 나면 더불어민주당은 전당대회 국면을 맞는다. 이대로 가면 선거 패배의 책임론을 둘러싸고 심각한 갈등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기왕 갈등할 거면 앞으로 어디로 가야할지를 놓고 큰 정치의 차원에서 논쟁해고 생산적인 결론을 도출해내야 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재임 중에 정권교체의 대상으로 지목돼 정치적으로 곤란한 상황을 겪었지만, 적어도 대통령이 되기 전의 행보에 대해선 다시 참고해 볼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선 이전 중도확장의 승부수를 던질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 중 하나는,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듯 하지만 ‘경제안보대통령’을 자처한 것이었다.

이 장면은 경제나 안보라는 키워드의 중요성보다는 주요 정치세력이 주류화되는 것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유권자들이 양당 특히 더불어민주당에 바라는 것은 마치 독재에 항거하듯 손에 잡히는 대로 모든 소재를 갖고 저항 서사를 반복하는 게 아니라, 국정에 대한 책임의식과 그걸 뒷받침하는 유능함을 증명하는 것이란 얘기다.

당권을 잡을 준비를 하는 정치인이라면 선거 중에라도 이런 노선의 단서를 내놔야 한다. 그렇게 해야 지방선거에도 도움이 된다. 이런 것이 가능해야 한국 기자에게만 질문을 받겠다는 윤석열 정권보다 더 나을 수 있다는 기대감을 다시 불러 일으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이미 지나간 정권의 회고적 평가에 기대거나 지지층의 요구에 편승하며 ‘조직표 전략’만 말하는 것은 장기간 이어질 비생산적 혼란의 시작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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