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골적이다. ‘옳다, 그르다’의 판단 여부 이전에 이 광고를 접한 뒤의 첫 번째 감상은 그저 솔직하다 못해 과하게 노골적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남녀의 만남에 있어서 여자보다는 남자가 경제적인 부담을 더 많이 진다는 것은 이젠 씁쓸한 상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발렌타인 데이보다 화이트 데이 때 백화점의 관련 상품 매출이 훨씬 더 높다는 통계자료 같은 구체적인 분석 결과도 있고, 그런 숫자 투성이 수치들을 굳이 참고하지 않아도 주위의, 아니 내 자신의 경험만을 비추어 보아도 이런 식의 남녀 관계 설정이 보편화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수정되어야 하고 조금씩 고쳐 나가야 하는 삐뚤어진 금전 관념이지만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 태도에요.

하지만 그런 불편한 진실을 인지하는 것과 그것을 노골적으로 조장하고 지지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명품백을 가지는 쉬운 방법이 힘들게 일하는 것이 아닌 능력 있는 남자친구를 가지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소재 설정은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왜 자신의 경제 상황에도 맞지 않는 비싼 백을 사기 위해 그런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인지 같은 가난한 된장녀를 상정하는 것부터가 이상한 시각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문제는 고생하느니 차라리 남자에게 기대는 것이 낫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예뻐져야 한다고 부추기는 외모 지상주의의 인정. 그리고 자사의 제품이 그 길을 도와줄 수 있다는 뻔뻔한 상술입니다. 각종 부정적인 전제를 깔아놓고 이익을 취하려는 잘못된 광고 전략인 것이죠.

이렇게 광고의 방향과 설정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면 과연 출연자에게는 얼마만큼의 책임을 물어야 할까요. 연예인들은 자신이 출연한 작품이나 이미지 소비에 대한 어떠한 영향을 받아야 할까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소녀시대의 유리를 전면에 내세운 이 광고에서 과연 그는 광고의 내용 때문에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할까요? 여러 반론과 각자의 판단 근거가 있겠지만 저는 당연히 그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연예인이 자신의 이미지를 소비시키는 방식 전체에 있어서 이익과 책임은 동시에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유리가 억울한 입장에 있다는 주장처럼 광고의 기획 과정에서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광고주와 광고사의 콘셉트에 맞추어 이미 계획되어 있고 모든 준비가 마무리되어 있는 촬영장에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며 내용의 수정을 요구하는 것은 아무리 소녀시대의 유리라고 해도 가능한 일이 아니죠. 그와 소속사는 계약 사항을 철저한 을의 자리에서 그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고, 여타의 반론이나 수정 요구의 여지는 무척 제한되어 있었을 겁니다. 그가 이 모든 논란과 문제를 주도하고 적극적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에요.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이 논란에서 유리를 감싸는 이들의 논지는 대게 이러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가 면죄부를 받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유리는 기부행사 같이 공짜로 이 광고에 출연 계약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아무리 고된 반복 촬영 과정이라고 해도 고작 하루 이틀 일정의 짧은 광고 촬영에 그렇게도 많은 출연료를 지급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이런 지적은 당연합니다. 연예인의 광고 출연은 자신의 이미지와 해당 제품, 광고의 연결을 용인하는 대가이며 이에 대한 어떠한 책임과 여파도 승인하는 고도의 거래입니다. 몇 천 만원, 몇 억 원을 호가하는 비싼 출연료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반복하여 대중에게 노출되는 이런 홍보의 영향을 모두 승인한다는 댓가이죠.

그런데 이런 경제적인 이익, 혹은 광고를 통해 얻게 될 수도 있는 이미지의 상승이나 대중 노출의 장점은 모두 가져가면서 설사 이 광고 때문에 발생하게 되는 부정적인 부분은 회피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비겁한 변명일 뿐입니다. 득이 있으면 실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런 생각 없는 된장녀의 이미지 역시도 자신과 소속사의 계약을 통해 이미 약속한 범주 내에 있는 것이죠. 얻을 것은 다 얻어 놓고서 자신은 피해자라고 발뺌을 하는 것은 결코 책임 있는 행위가 아니에요.

뭐 비단 이번 광고와 유리의 문제뿐이겠습니까. 표절 음악으로 실컷 대중적인 인기와 경제적인 부를 얻어 놓고도 이건 작곡자의 문제이지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발뺌하는 일부 몰지각한 가수들이나,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속의 이미지는 실생활과는 전혀 다르다며 고충을 호소하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이죠. 자신의 선택에 의해, 혹은 그 행위로 인해 일정한 이익을 취했다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책임 역시도 스스로가 감당해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는 것이고 문제가 생긴다면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죠. 그러니 이번 사태에서 유리는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광고 속의 그가 실제 그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별로 없겠지만 그로 인한 이미지의 실추는 감당해야 하는 책임이에요. 해결 방법은 다음에는 이런 실수를 거듭하지 않는 것. 그것뿐입니다. 화장품 광고라고 덥석 물어든 탓이에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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