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고용노동부가 KBS 6개 드라마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 고발장이 접수된 지 8개월이 지났지만 결과를 내놓지 않아 노동권 보장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드라마 방송제작 현장의 불법적 계약근절 및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공동행동’은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방송스태프 노동실태를 고발하는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공동행동은 지난해 9월 KBS가 드라마 <태종 이방원> <학교 2021> 등 6개 드라마 제작에 참여한 스태프와 근로계약서를 체결하지 않았다면서 고용노동부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현재 6개 드라마는 모두 종영했다.

지난해 7월 16일 서울 마포구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열린 'KBS드라마 근로기준법 위반 처벌촉구! 노동부 고발 기자회견' (사진=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지부 페이스북)

공동행동의 법률대리를 맡은 강은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드라마 제작현장의 근로계약서 체결 비율은 20% 남짓에 불과하다”며 “고용노동부는 현장조사를 통해 방송스태프의 노동자성을 인정했지만 계약서를 체결하지 않는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 변호사는 “KBS 6개 드라마를 고발한 사유는 ‘근로계약서 미작성’이라는 단순한 것”이라면서 “검찰 송치 단계도 못 가고 조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고발 당시에는 제작 중이었는데, 지금은 모든 드라마가 끝났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조사가 오래 걸리는 것은) 고용노동부의 경험 부족이 원인”이라며 “방송 촬영 현장에 대한 근로감독이 있는지 모르는 근로감독관도 있다. 제작 현장은 단기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수사가 빨리 진행돼야 한다”고 했다. 또한 강 변호사는 “고용노동부뿐 아니라 문체부·방통위 등 주무부처가 책임 있는 방송 제작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용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변호사는 “사실상 고용노동부가 수수방관해온 것”이라며 “여러 부분에서 문제가 드러나면 책임있는 개선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미온적으로 처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기영 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지부 지부장은 “공동행동이 고발한 건 지난해 9월이지만, 지난해 4월부터 문제를 제기해왔다”며 “고발 후 8개월이 지나도록 결과가 안 나오는데, 고용노동부가 업무를 해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KBS 드라마 고발 사건을 검찰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최충운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기획과 사무관은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깊은 이야기를 못 하지만, 200여 명이 넘는 스태프의 노동자성을 따져 물어야 한다”며 “검찰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신속하게 사건 결과를 내놓기 위해 내부적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사무관은 “고발 사건의 경우 일반적인 근로감독보다 더 오래 진행될 수 있다”며 “검찰과 협의가 필요하고 혐의 입증을 위한 수사기록을 갖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2018년 이후 방송스태프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2019년 근로감독을 통해 팀원급 스태프의 노동자성을,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20년 드라마 촬영감독의 노동자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드라마 스태프를 노동자로 대우하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는 촬영 현장은 드물다. 희망연대가 지난해 9월 발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근로계약서를 체결한 스태프는 21.3%에 그쳤다. 하루 평균 14시간 이상 일한 스태프는 62.1%에 달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날 정책 토론회에서 방송스태프 노동권 보장을 위한 실천방안으로 ▲사회적 협의체 구성 ▲정부 부처 내 컨트롤타워 구성 ▲방송사와 단체교섭 체결 등이 제시됐다.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은 ”드라마 제작현장 개선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 설치를 요구해야 한다”며 “드라마 제작현장을 관할하는 기관이 분산된 만큼, 정부를 대표할 수 있는 부처가 합의기구에 참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이사장은 “정부가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이용관 이사장은 사용자와 노동자 간 협의체로는 개선책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 전문가가 합의기구에 참여해 협의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 이사장은 “2019년 드라마 제작 현장을 개선하기 위해 출범된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 공동협의체’는 성과 없이 무산됐다”며 “노사 간 협의는 처음부터 한계를 갖고 있다. 협의할 수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지상파 3사·드라마제작사협회·전국언론노동조합·방송스태프지부 등은 2019년 방송계 불공정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4자협의체를 구성했다. 이들은 수년간 가이드라인 세부 사항을 조율했지만, 제작사협회는 지난해 5월 협의체를 파행시켰다. 제작사협회는 가이드라인 중 턴키 계약 범위, 스태프 처우개선, 적용 시점 등의 내용을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노동부 최충운 사무관은 “사회적 대화와 노사정 공감대를 이끌어내야 한다”며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이 필요하지만, (노사정) 협의가 병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최 사무관은 “여러 곳이 관련 정책을 담당하고 있어 주무부처가 애매하다”며 “(정부 차원에서) 전체적인 부분을 협의할 수 있어야 한다.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18일 열린 '드라마제작 방송스태프 고용실태와 문제점, 제도개선 방안 국회 정책토론회' (사진=미디어스)

홍태화 영화인신문고 사무국장은 방송스태프지부가 방송사·제작사와 단체교섭을 맺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방송·영화 제작 현장은 유사하다. 하지만 영화 제작사는 스태프와 적극적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영화스태프 근로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표준근로계약서를 체결한 영화 스태프는 76.0%에 달했다.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스태프는 0.9%에 불과했다. 4대 보험에 가입한 스태프는 69.2%다.

홍태화 국장은 “영화계는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전 단체교섭을 시작했다”며 “이게 방송계와 영화계의 차이점이다. 부당행위를 당했을 때 개인은 제작사에 문제를 제기하기 힘들지만, 영화인신문고는 나서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밝혔다. 영화인신문고는 단체교섭을 통해 이동시간을 노동시간에 포함시켰다. 영화·드라마 촬영지는 주로 지방에 있다. 방송사·제작사는 수 시간이 소요되는 이동시간을 노동시간에 포함하지 않는다. 반면 영화계는 이동시간이 30분 이상 소요될 경우 이를 노동시간으로 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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