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성평등 국회 실현을 위한 실천' 결의안이 여성가족위원회에 상정됐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은 결의안의 '성평등'(Gender equality)이라는 용어를 '양성평등'으로 수정하기 전까지 의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의 반대 이유는 성평등 용어가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보수·기독교계의 주장과 다르지 않다.

16일 송옥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이하 여가위) 위원장은 전체회의에 직권으로 지난해 10월 김상희 국회 부의장이 대표발의한 '성평등 국회 실현을 위한 실천 결의안'을 상정했다. 송옥주 여가위원장은 "이 결의안을 위원회에서 논의하기 위해 간사 간 의사일정 협의가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간까지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다"며 "대한민국 국회가 성평등 사회 실현이라는 국제적 흐름과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더이상 결의안 심사를 미룰 수 없어 본위원장이 국회법에 따라 의사일정을 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 김정재 간사(오른쪽)가 발언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에 대해 김정재 국민의힘 여가위 간사는 "국민의힘은 분명히 상정을 반대했다. 결의안 제명의 '성평등'이라는 단어 때문"이라며 "'성평등' 단어를 '양성평등'으로 바꾼다면 찬성하겠다 말씀드렸음에도 이렇게 여야 합의없이 전체회의를 기습개회하고 의사일정을 직권 상정한 여가위원장 행태에 참담함을 금치 못한다"고 말했다.

김 간사는 "'성평등'이라는 표현은 여전히 사회 일각에서 우려를 표하고 있는, 찬반논란이 팽팽히 대립하고 있는 표현이다.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은 표현을 국회가 나서 사용한다는 것은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며 법안심사소위원회에 회부해 재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간사는 "어떤 상임위든, 어떤 안건이든 민주당이 원하는 대로 강행처리하겠다는 대국민 선전포고이자 입법독재 선언"이라며 "더더욱 임기를 보름 남짓 남겨둔 김상희 부의장에게 마지막 선물이라도 주려는 듯, 임기 내 치적을 쌓게 하기 위해 이렇게 야당을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은 "'성평등'이라는 용어는 우리 국민 일각에서는 오해의 소지가 많다고 해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며 "그런 의견을 교환해서 우리 당은 '양성평등'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헌법정신을 부정하겠다는 것인가"라고 주장했다. 1987년 9차 개헌 이후 개정된 적 없는 헌법 36조는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미애 의원의 주장은 결의안을 의결하려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은 박완주 민주당 의원의 성비위 사건을 거론하며 "'성평등'은 결의를 한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실천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 의원은 "지자체장 성범죄 사건으로 서울·부산에서 800억 가까운 국고가 지출된 보궐선거가 치러진 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 유감스럽게도 며칠 전 박완주 의원 성비위 사건이 있었다"며 "실천을 결의하기 전에 실효적인 법률부터 검토하는 것이 진정한 '양성평등'의 첫걸음"이라고 했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 권인숙 민주당 여가위 간사는 "2022년에 국회가 아직도 '성평등' '양성평등' 얘기하고 있는 것이 부끄럽다"고 말문을 열었다. 권 간사는 "결의안을 만들 때 11명의 전문가회의가 구성되었는데, '성평등 국회자문위원회'로 이름을 지었다"며 "'양성평등'이 아니라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쓰는 시대적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 간사는 "왜 지금이어야 하는가, 인사청문회가 모든 걸 보여줬다. '구조적 성차별'을 언급하지 않으려는 여가부 장관 후보자, 여가부 폐지를 주장하면서 장관을 임명하려는 이 상황을 보라"며 "민주당이나 국힘의힘에서 끊임없이 번지는 성비위 의혹과 잘못된 해석들은 어떤가. 성평등 결의안이 지금 통과되어야 할 명분은 너무나 또렷하다"고 강조했다.

이수진 민주당 의원(비례)은 "'성평등' '양성평등'은 김현숙 여가부 장관 후보자도 혼용해서 사용한다고 답변한 바 있다"면서 "성비위는 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성상납 의혹에 대해 권성동 원내대표는 '사생활'이라고 답했는데 국회 수준에 맞는 답이었나"라며 "윤석열 대통령은 성비위 전력이 있는 비서관(윤재순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을 인사 결정했다. 인사참사 아닌가"라고 따져 물었다.

양이원영 민주당 의원은 "국민의힘이 굳이 '양성'을 얘기하는 것은 모든 성차별 이슈를 동성애 이슈로 형해화시키는 것이고, 몰아내는 것"이라며 "국민의힘은 제발 '동성애의 바다'를 건너라"라고 지적했다. 다음 전체회의에서 결의안에 대한 논의가 계속될 예정이다.

송옥주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성평등 국회 실현을 위한 실천 결의안 관련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결의안의 주요 내용은 ▲지역구 여성 공천 30% 의무화 ▲국회 상임위원회 위원장 및 간사 여성비율 30% 권고 ▲국회의원 성평등 윤리강령 제정 ▲초당적 활동기구 '여성의원 전원회의' 구성 ▲국회 성평등 종합계획 수립·이행 ▲국회 보좌진·직원의 성평등 노동환경 마련 ▲국회 인권센터 위상 강화 등이다.

'성평등' 표현을 둘러싼 논란은 지난 2017년 여가부의 '제2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 의견수렴 과정에서 불거진 바 있다. 계획안에 '성평등' 용어가 사용되자 보수·기독교계는 "동성애 조장" "여가부 폐지" 등을 주장하며 반대에 나섰다. 당시 한국기독교총연합 등은 집회와 시위를 통해 여가부를 비난했다. 그러자 여가부가 '성평등'과 '양성평등'을 같이 쓰기로 해 일단락됐다.

하지만 한국여성단체연합과 성소수자 차별반대 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와 정부가 일부 혐오세력의 목소리를 수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여가부가 '양성평등'과 '성평등'을 혼용하는 것은 차별 시정을 요구하는 촛불정신에 위배된다"며 "현재 혐오세력에 의해 사용되고 있는 '양성평등'은 성소수자를 배제하고 차별을 용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여가부가 확정 발표한 '제2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에서 '성평등'이라는 용어는 당초 계획안과 다르게 상당부분 삭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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