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사> 저자로 유명한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아킬레스건'인 '정수장학회'의 '사회환수'를 요구하는 저격수로 나섰다. 한홍구 교수는 2005년 국정원 과거사위에서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부일장학회 헌납사건' 조사를 담당했기 때문에 이 문제를 가장 촘촘하게 들여다 본 대표 전문가로 꼽힌다.

▲ <미디어스>는 20일 한홍구 교수의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곽상아

부일장학회 헌납사건은 5.16 쿠데타 후 군부세력의 핵심인 중앙정보부가 당시 부산지역 기업인이던 고 김지태 삼화고무 사장의 부일장학회를 강제로 국가에 헌납하게 한 일을 말한다. 당시 부일장학회는 부산시내 땅 10만여평과 부산일보, 부산문화방송(현 부산MBC), 한국문화방송(현 MBC) 등 언론사 주식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정부에 강제로 헌납당했고, 이후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딴 정수장학회 설립으로 이어졌다.

"기자들, 박근혜에게 '핵심'을 겨냥한 질문을 하라"

한홍구 교수는 3월 19일 출범한 '정수장학회 사회환수 공동대책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3월 26일부터는 정수장학회 문제 등을 대중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자 트위터(@history_hongkoo) 활동도 시작했다.

한홍구 교수는 '정수장학회 저격수'로 나서게 된 이유에 대해 20일 <미디어스>와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위원장이 부동의 대선 후보로 등장하고, 부산일보 사태 등이 터지면서 '정수장학회'가 큰 화두로 떠올랐지만 언론노조 차원에서 나서는 것 말고는 체계적인 문제제기가 없는 것 같았다"며 "내가 아무래도 당시 사건을 조사해 역사학자 중에는 (정수장학회 문제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돼버렸기 때문에 '공익근무'에 나선다는 심정으로 올 1년간 죽도록 싸워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정수주장학회 문제의 '섬세한 디테일'들을 알리기 위해 트위터를 시작하게 됐어요. 다들 '정수장학회 사회환수'라는 결론만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맨날 똑같은 이야기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트위터를 시작한 지 1달 정도 됐는데, 사람들이 이 문제를 잘 모르고 있구나 하는 걸 많이 느꼈습니다."

한홍구 교수가 트위터를 시작하게 된 이유에는 '기자들의 무식'도 한몫 했다.

"기자들이 사건 자체를 잘 몰라요. 그래서 그런지, 박근혜 위원장한테도 맨날 똑같은 질문만 하죠. 박근혜 위원장이 '정수장학회는 이미 사회에 환원된 공익법인이기 때문에, 나와는 상관없다'라고 말하면 더 이상 질문을 안합니다. 그렇게 단순하게 질문해서 끝내버릴 문제가 아닌데…참 답답했어요.

'민주국가에서 언론사를 빼앗기 위해 사람을 가둬두는 것이 과연 옳은 행동인지'에 대해 박근혜 위원장이 어떤 원칙을 가지고 있는지 핵심을 겨냥하는 질문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에, 조선일보가 맘에 안든다고 방우영 명예회장과 일가 친척을 다 잡아놓은 뒤 조선일보를 헌납받은 일이 있었다면'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물어야 합니다. 아마 박근혜 위원장은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펄쩍 뛰겠죠.

그렇다면, 과거에 벌어진 똑같은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물어야 하겠죠? 지나간 일이니까 그냥 덮어두자는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이런 일이 재발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형성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부일장학회 헌납사건 조사 "대한민국의 못볼 것을 봤다"

▲ 한홍구 교수가 2005년 국정원 과거사위에서 담당했던 부일장학회 헌납사건 관련 자료를 훑어보고 있는 모습. ⓒ곽상아

2005년 부일장학회 헌납사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기 전까지, 한홍구 교수 역시 이 사건에 대해 "부일장학회의 원 소유자인 김지태씨와 박정희의 개인적인 원한에 의해 벌어진 일" 정도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조사를 하고 나니 부일장학회 헌납사건은 형식상 "국가권력이 동원된 납치 강도극"이요, 내용적으로는 "언론장악" 사건이었다.

"저도 처음에는 부일장학회 헌납의 진실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어요. 원 소유자인 김지태씨와 박정희의 개인적인 원한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는 소문이 있었고, 유족들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조사를 해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핵심은 '언론장악'입니다.

1960년 3.15 부정선거 당시 부산MBC가 데모를 생중계 했었거든요. '혁명'을 중계한 거니까 당시로서도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었겠죠? 경찰들은 (중계를 막으려) 부산MBC를 포위했었는데, (경찰이 막을 게 뻔하니까) 중계차를 갖다놓고 부산일보 김지태 사장실에서 데모를 중계했었거든요. 그 당시 박정희가 부산에 있었습니다. 군수기지사령관으로 부산에 있으면서 부산일보와 부산MBC의 엄청난 영향력을 보고 '정권 장악을 위해 언론이 필요하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 거죠.

그런데 자기들도 빼앗은 언론사를 국가소유로 해선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자진헌납처럼 꾸미기 위해 문서도 위조하고 '장학회'라는 형태로 언론사를 소유한 거죠. 국가가 무슨 장학회가 필요합니까? 육영사업에 뜻이 있었던 게 아니라 '장물을 담을 바구니'로서 장학회라는 형식을 취한 거예요. 지금 MB 정부의 언론장악이 문제되고 있는데 언론장악의 씨앗은 박정희 때에 잉태된 것입니다."

한홍구 교수가 당시 부일장학회 헌납사건을 조사하면서 느낀 심정은 "대한민국의 못볼 것을 봤다"는 것.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조사하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을 최대한 만났습니다. 부일장학회 헌납사건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아주 세심한 것 하나까지 복원해 나가는 과정이었지요. 조사를 진행하면서 '정말 이런 짓을 한 자들이 국가권력을 가지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잘못된 게 아직까지도 바로잡히지 않고 있구나, 본질적 구조를 바꾸지 않고 표면적인 것만 몇 개 고쳐서는 한국사회에서 민주화가 이뤄질 수 없겠다고 느꼈지요."

"전두환, 박근혜 돌봐주기 위해 '정수장학회' 탄생시켜"

▲ 박정희의 '양아들' 격이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뒷줄 왼쪽)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포즈를 취한 MBC보도 캡처. 전두환 전 대통령 옆은 차지철 전 경호실장이며, 박정희 왼쪽에 있는 이는 차녀 박근영씨.

박정희 정권이 62년 부일장학회를 뺏어 탄생시킨 '5.16 장학회'는 82년 전두환 정권에 의해 '정수장학회'로 재탄생된다. 한홍구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5.16 장학회'와 '정수장학회'의 성격은 굉장히 다르다. 준국가기구였던 '5.16 장학회'가 '정수장학회'로 탄생하면서 사실상 박근혜 위원장의 사조직이 되었다는 것. 박정희의 '양아들'이자, 박근혜 위원장이 사석에서 '오빠'라고 불렀던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부모를 잃은 박근혜 위원장의 '생계'를 챙겨주기 위한 차원에서 '정수장학회'가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형식적으로는 재단법인이었으나 사실상 준국가기구였던 '5.16 장학회'는 박정희가 죽고난 이후 공중에 붕 뜨게 됩니다. 박정희의 호위병 출신인 전두환 입장에서는 '준국가기구인 5.16장학회를 어떻게 할 것인가' 보다 '박정희의 남은 가족들을 어떻게 돌봐주느냐'가 더 큰 문제였지요. 박정희는 전두환을 양아들처럼 생각했고, 박근혜 역시 사석에서 전두환을 '오빠'라고 불렀으니까요. 부모를 잃은 박근혜 형제들을 어떻게 먹고살게 해줄까 고민하다가, 5.16 장학회를 정수장학회로 바꿔 사실상 박정희 일가의 사유재산으로 만들어주게 된 겁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어마어마하게 커진 MBC를 박근혜에게 다 줄수는 없어, 70%는 KBS에 주고 30% 지분을 떼어 정수장학회에 준 거죠. 87년 민주항쟁을 거치면서 KBS가 가지고 있던 70%의 지분을 담당할 방송문화진흥회가 만들어졌어요. 원래는 100% 김지태씨 소유였는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방송 MBC의 지분도 여러 번 손을 탄 '장물'인 거죠. 이 잘못된 구조를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박근혜, 언제까지 '상관없다' 할 건가?"

때문에, 정수장학회라는 '장물'이 아직까지도 반환되지 않고 있는 것은 '민주국가의 비극'이다. 그러나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나와는 상관없는 문제"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는 상황이다.

"딸로서 아버지의 강도짓을 인정하기 힘들긴 하겠지요. 인간적으로. 그러나 그것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일국의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이 이렇게 침묵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일반 개인이 아니잖아요? 국가를 책임지겠다고 나선 사람으로서, 과거의 악행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국민에게 줘야합니다. 국민들은 정치지도자에게서 이 문제에 대한 해명과 재발방지 약속을 들을 권리가 있는 거구요. 박근혜 위원장의 인정 여부와 상관없이 정수장학회가 '국가최고의 정보기관을 동원한 최악의 인질강도극'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니까요.

만약 박근혜 위원장이 '정수장학회의 원상회복'을 원칙적으로 말한다면, 정치지도자로서의 위상이 지금보다 굉장히 높아질 것입니다. 지금처럼 '나몰라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비겁하죠.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데는 한 명의 평범한 사람도 책임이 있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위원장은 한 나라의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이지 않습니까? 열두살 때부터 청와대 생활을 했고, 유신 체제의 중요한 부분이었잖아요.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을 맡으면서 10년동안 20억 가까이 연봉으로 가져갔구요.

박정희는 다른 권력자들과 달리 청렴했다고 하는데 '허구'에 불과합니다. 물론, 화장실 변기에 벽돌을 넣었다든지 구멍뚫린 런닝을 입었다든지 이런 것은 모두 사실일 겁니다. 당시 사람들이 모두 그랬던 것처럼, 검약을 생활화하고 소박한 생활을 했을 거예요. 저도 그 점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습니다.

문제는 부정축재죠. 박정희 이후 박정희의 양아들이었던 전두환이 정권을 잡으면서 (박정희의 개인비리를) 다 덮어버렸기 때문에 저희가 모르고 있는 부분이 많아요. 그런데 5.16 군사반란을 일으킬 당시만 해도 신당동에 낡은 기와집 한 채만 가지고 있었던 사람의 자녀들이 지금은 10조원 훌쩍 넘는 자산을 놓고 다투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한국경제의 기적보다 더 놀라운 재테크 신공 아닙니까?(웃음) 과연 정상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증식한 걸까요?"

한홍구 교수는 정수장학회 사건의 전모를 알리는 책도 8월경 낼 예정이다.

"장물이 아직도 반환되지 않고 있는 이 나라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백만부 이상 팔려봤자 다 무슨 소용입니까? 이건 민주주의를 할 거냐, 말거냐 하는 근본적인 문제예요.

만약 최근에 일어난 일이었다면, 가둬놓은 사람을 감옥에 보내야 마땅한 일입니다. 그런데 법정 시효가 만료됐다고 하더라도, '나는 물러나서 상관없는 일'이라고만 하는 게 과연 유력 대선주자에 걸맞는 행동인가요?"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