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대몽항쟁은 아주 길고도 험난했다. 비록 그 끝이 패배로 장식되었지만 무신 20회에서 그린 철주성 전투는 의미하는 바가 대단히 크다. 을지문덕, 강감찬 그리고 이순신까지 무장이라면 승리한 기록이 후대에 감동을 준다. 그러나 비록 패했지만 성민 전원이 옥쇄를 각오하고 싸운 철주성 전투의 패배는 승리를 넘어선 감동과 교훈을 남긴 싸움이었다.

그리고 김준이 큰 뜻을 품은 무장으로 성장하는 밑바탕이 되는 전투기 드라마 무신에는 이보다 중요한 사건이 있을 수 없다. 김준이 진정한 무사의 정신을 배운 현장이 된 철주성 전투는 비단 김준뿐만 아니라 비교도 할 수 없는 막강한 대국 몽고에 맞서 싸운 고려인의 기상을 그대로 담은 역사라 할 수 있다.

패배가 분명한 전투. 거기서 김준이 본 것은 무력하고 가난한 고려가 아니라 이길 수는 없지만 지지 않는 무신의 고려였다. 철주성 앞에서 항복을 권유하는 몽고군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항전할 것을 외쳤던 하급무사인 낭장 문대(전노민)의 죽음은 그 정신의 시작이었다. 어마어마한 몽고군의 군세와 낭장 문대의 처참한 죽음에도 김준과 철주성민들은 공포가 아닌 분노를 느꼈다.

그 분노로 고려는 아주 기나긴 싸움을 버티게 되는 것이다. 노예출신 김준이 이 철주성에서 무인으로서의 각성을 얻게 된 것은 그 본인에게도, 고려에게도 다행한 일이었다. 고려의 무신정권을 좋게 평가하기는 어렵겠지만 거대한 몽고에 맞서 한 치의 물러섬이 없는 결사항쟁의 투지를 보인 것은 후대에 크나큰 교훈으로 전해져도 좋을 부분일 것이다.

김준은 철주성의 장군과 성민들을 보면서 아우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나도 저 두 장군이 무한히 부럽다. 누구에게도 불만이 없이 죽음을 준비하고 있지 않느냐” 무인은 이기기 위해서 존재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이길 수 없을 때라도 질 수 없는 것 또한 무인임을 김준은 뼛속 깊이 새기게 된 것이다. 이 각성은 김준이 노예에서 진정한 장수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그때 개경의 김약선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인정권이 지속되면서 정권유지에만 혈안이 됐다는 자기반성과 함께 먹을 것과 무기도 주지 않은 채 싸우라는 현실을 꼬집으며 이미 패배를 인정하고 있었다. 사실 당시 고려는 몇 년째 흉년이 거듭되어 불교의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탁발승에게 끼니조차 시주하지 못할 형편이었던 것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김약선은 틀렸다. 패배를 인정하는 방식이 틀렸다. 철주성의 장군들은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창고에 식솔들을 모아놓고 불태워 죽였다. 전투가 끝난 후 미련 없이 죽기 위함이다. 그리고 더 이상 성안에서 농성하는 것이 아니라 성문을 열고 몽고군과 정면대결을 벌였다. 사로잡힐 경우의 수를 없애기 위한 극단의 방법을 택한 것이다.

그 얼마 전 아름다운 광경이 연출되었다. 과연 이런 모습을 아름답다는 말을 해도 좋을지 망설여지지만 딱히 표현할 말이 없다. 창고 앞에서 철주성의 판관 이희적(최덕문)은 아내에게 속이지 않았다. 또한 그런 남편을 대하는 아내 역시도 무인정신으로 그 죽음을 당당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들은 잠시 후에 만나자면서 선 채로 맞절을 했다. 어둠 속에서 서로에게 허리를 숙여 절하는 부부의 마지막 이별장면은 눈물겹도록 아름다웠다. 이 세상 마지막 장소에서 서로에게 예의를 다한 부부의 마지막 인사는 그 어떤 러브신보다 아름답고도 처절했다. 부부의 사랑과 고려의 혼이 담긴 인사였다.

전투에 패하는 장군들마다 가족들을 다 죽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철주성 전투는 모두가 옥쇄를 다짐한 전투이기에 장군들이 먼저 솔선수범한 것이다. 그것은 똑같이 패배를 알면서도 그것을 인정하는 방식이 정치적 해결을 앞세우는 김약선의 방식과 다른 것이다. 두 방식에 대해서 누구도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후 7차까지 이어진 몽고와의 전쟁을 생각한다면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을 후대가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은 사실 여부를 떠나서 당연한 도리이다. 무인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다른 나라에 지배당하지 않겠다는 항거 그 자체는 한 마디의 이견도 없는 우리 민족의 고유 정신인 탓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