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해 못할 일이 많다지만 그 중에서도 정말 이해 못할 것이 사랑하면서도 상처를 주는 일일 것이다. 그런 상처가 나쁜남자의 치명적 매력으로 미화되기도 하지만 정작 당하는 입장에서는 등을 돌릴 수 없어 더 아프다. 사랑하기에 상처도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항아는 여러모로 속상하고 서운했다. 혈혈단신 혼자 남쪽으로 건너와 사랑 하나 바라보고 있는데, 그 남자는 자신에 대해서 전혀 배려치 않았다. 여자가 아니라 보살이라도 서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나쁜남자는 철까지 없어 항아를 소박을 주고 말았다. 재하도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소박까지는 너무 심했다. 그것도 신던 구두까지 벗고 북으로 돌아가는 항아의 모습은 짠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극단과 최악은 그저 극단과 최악의 결과로 귀결되지만 드라마의 공식으로 봐서는 반전을 위한 웅크림이다. 항아가 북으로 돌아가는 일은 대단히 충격적이긴 하지만 그 다음에 올 극적인 반전과 화해 그리고 더 깊은 사랑은 시청자 애를 끓인 만큼 클 것도 알 수 있다. 그래도 좀 심했다. 그 벌인지 몰라도 북으로 돌아간 항아에게 큰일이 벌어졌다. 유산을 하게 된 것이다. 심각하다. 이 유산이 불러올 후폭풍이 드라마 안팎으로 예상된다.

먼저 더킹 속에 벌어질 후폭풍은 이재하의 위기이다. 아직 결혼은커녕 정식 약혼도 하지 않은 두 사람인 데다가 항아의 유산은 곧 국상 중 잠자리를 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는 예를 중시하는 왕실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실에서는 이승기와 하지원이라는 배우의 배드신이기에 법도를 따질 일이 아니었을지 몰라도 드라마 속 대중은 다를 것이다.

상중에 약혼예정자와 정을 나눈 왕에 대한 국민의 비난은 클럽엠 김봉구와 맞서 싸워야 하는 재하에게 가장 큰 시련이 될 것이다. 그래서 재하에게 쓰레기라고, 쓰레기만도 못하다고 혼을 낸 대비의 말이 더 쓰라리게 다가온다.

그런데 유산이라는 사건과 이후에 벌어진 전개는 항아의 위기도 가져올 것이 두렵다. 항아는 이름은 비록 전설의 미녀지만 실제로는 남자 주인공 의존적인 기존의 여자 주인공 캐릭터와 달리 강인하고 주체적인 존재로 성장했던 지금까지의 노력과 성취가 모두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긴다.

유산이라는 아픔을 겪고도 결국 재하를 용서하고 또 사랑하게 된다는 순애보로 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밖의 가능성은 없다. 특히 북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보인 항아의 지극히 여성적이고, 신파적인 동선은 더욱 그런 우려를 품게 한다. 이제 WOC 여성조장 김항아는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유산으로 예상되는 가장 큰 위기감이다.

게다가 대체로 중반을 넘기면 주제가 분산되고, 캐릭터가 흐려지는 한국 드라마의 저주가 있기 때문에라도 10회 찾아온 더킹의 위기는 좀 더 심각할 수도 있다. 해품달과의 자랑스러운 바톤터치를 할 것이라 예상됐던 첫 회의 영광은 더 멀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작가가 아닌 시청자로서 예상할 수 있는 위기감이다. 재하와 항아 둘 모두에게 다가올 이 위기는 해결만 잘된다면 비록 도토리 키재기라 할지라도 수목극 꼴찌로 떨어진 더킹의 인기를 반전시킬 역전 홈런이 될 수도 있다. 그 희망은 은씨 부자에게 있다. 그리고 어느덧 항아의 진정한 아군이 된 대비와 공주가 또 있다.

은규태 실장은 양심선언을 준비하고 있고, 항아가 북으로 돌아가기 전 나눈 대화는 그런 희망의 여지를 두었다. 그 대화 뒷부분은 나중에 드러나겠지만 거기엔 김봉구의 목적을 다 아는 은실장과 항아의 모종의 작전도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재하에 대한 은시경의 충성서약도 다가올 위기를 돌파할 듬직한 희망으로 볼 수 있다.

드라마를 생각하면 멜로를 잘 살려야 하지만 설혹 여기서 멜로를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더킹이라는 드라마의 가치는 박수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더킹은 시청하는 것만으로도 왠지 애국한다는 느낌을 준다. 아니 세상과 정치를 똑바로 보고 제대로 애국해야겠다는 다짐도 준다. 드라마 한 편이 줄 수 있는 최대한 그 이상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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