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지난 총선 때 문재인 대통령께서 어떤 일정을 보내셨는지 한번 보시기 바란다. 그걸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윤석열 당선인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겁나는 것이다"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지방 순회를 선거개입이라고 비판하자 장제원 당선자 비서실장이 내놓은 발언이다.

지난 21대 총선을 앞두고 문 대통령이 지방 방문 등 외부 일정을 소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정 대부분이 대통령이 챙겨야 할 행사나 간담회 등으로, 지방선거 후보자를 직·간접적으로 홍보하는 윤 당선자의 행보와 동일 선상에 놓기는 어려워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2일 오후 경기 용인시 처인구 중앙시장을 찾아 시민들을 향해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윤 당선자 경기지역 순회에 김은혜 국민의힘 경기지사 후보(오른쪽)가 동행했다. (사진=연합뉴스)

문 대통령이 2020년 4월 15일 총선을 앞두고 한 달가량 소화한 외부 일정은 ▲3·1절 기념식(배화여고, 3월 1일) ▲국군 대전병원·간호사관학교 방문(3월 2일) ▲공군사관학교 임관식(3월 4일) ▲마스크 생산업체 현장방문(경기도 평택, 3월 6일) ▲신임경찰 임용식(충남 아산, 3월 12일) ▲코로나19 극복 구미산업단지 방문(4월 1일)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4월 3일) 등이다.

또 문 대통령은 ▲강원도 재조림지 식목(강릉시, 4월 5일) ▲코로나19 대응 기업·소상공인 긴급금융지원 간담회(서울 중구, 4월 6일) ▲인천국제공항 검역현장 방문(4월 7일) ▲코로나19 치료제·백신 개발 합동 회의(경기 성남 한국파스퇴르연구소, 4월 9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식(서대문독립공원, 4월 11일) 등의 일정을 소화했다.

반면 윤 당선자는 지난달부터 '당선 사례'를 이유로 대구·경북(4월 11~12일), 전북(4월 20일), 전남(4월 21일), 부산·울산·경남(4월 21~22일), 경기(4월 25일), 인천(4월 26일), 대전·충북(4월 28~29일), 경기 일산·안양·수원·용인(5월 2일) 등을 돌았다. 이에 정치권과 주요 언론에서 대선이 종료된 지 두 달이 되어가는 현재까지 당선 사례를 한다는 윤 당선자의 주장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노골적인 6·1 지방선거 지원유세라는 지적이다.

윤 당선자가 지방 순회 현장에서 보인 언행은 '선거용 행보'라는 의심을 굳히고 있다. 윤 당선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을 방문해 "면목 없다"고 고개를 숙였으며 박근혜 정부를 계승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이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한 유영하 변호사의 후원회장을 맡아 정치 관여 논란이 불거졌으며 한편에서 이른바 '윤심'이 유 변호사를 향했다는 해석이 분분했다.

윤 당선자는 '윤심'에 의해 지방선거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 국민의힘 김태흠 충남지사 후보를 곁에 두고 "충청의 아들"이라며 추켜세웠다. "저희 집안이 400년 이상 충청에서 뿌리내린 집안"이라고 지원사격했다. 윤 당선자는 청주를 방문해 "선거 과정에서 청주 시민과 충북도민 여러분께 드린 약속을 하나하나 반드시 잘 지키겠다"고 말했다. 윤 당선자는 인천을 방문한 자리에서 국민의힘 유정복 인천시장 후보와 동행, 공약추진현황 등을 점검했다. 부산에서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참석한 가운데 2030 부산엑스포 유치를 위한 정부차원의 총력 지원을 약속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다라 29일 충북 청주시 육거리 시장을 방문, 시민들에게 어퍼컷 세리머니로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또 윤 당선자는 2일 경기지역 순회에서 국민의힘 김은혜 경기지사 후보와 동행하며 시민들에게 대선공약 실현을 약속했다. 윤 당선자는 1기 신도시 지역인 일산의 개발을 인수위가 중장기 계획으로 설정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언론보도를 거론하며 "잘못된 보도에 대해 오해하실 일 없다. 제가 선거 때 약속드린 것은 반드시 지킨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김동연 경기지사 후보는 "국민의힘 세력은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 질문에 대해 한 짧은 답변을 문제삼아 대통령 탄핵을 시도했다. 지금 윤 당선인의 행보는 그때에 비할 바 없이 노골적"이라며 "대통령이었으면 탄핵감"이라고 지적했다.

선거중립 의무에 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대통령은 정당에 소속된 정치인이자 행정부 수반이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다. 공직선거법 제9조 1항은 "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기관·단체를 포함한다)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기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 제7조 제1항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고, 같은 조 제2항은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돼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2004년 2월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중략)대통령이 뭘 잘해서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발언해 탄핵 위기에 처했다. 국회는 노 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가결시켰으나 헌법재판소는 탄핵할 만큼 중대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노 전 대통령이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한 건 사실이지만, 공직선거법 개념상 '후보자 특정'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특정정당 지지발언을 한 것이기 때문에 선거운동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윤 당선자의 경우 '당선자' 신분이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가 선거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헌재 판단에 따라면 현재 윤 당선자의 행보는 '특정 후보 지지', 즉 선거운동에 해당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월 24일 전북 군산시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에서 열린 군산조선소 재가동 협약식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은 문 대통령이 선거를 앞두고 지방 방문에 나서자 선거 개입이라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20대 대선 13일을 앞두고 전북 군산 현대중공업 조선소 재가동을 위한 협약식에 참석했다. 민주당에 대한 호남 민심이 예전같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에서 이뤄진 문 대통령의 호남 방문에 대해 국민의힘은 "선거 개입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국면에서 가덕도를 찾아 이병진 부산시장 권한대행으로부터 신공항 추진 상황을 보고 받았다. 문 대통령의 부산방문 행사에는 기재부, 국토부, 행안부, 해수부 등 4개 부처 장관, 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 김경수 경남도지사, 송철호 울산시장 등이 함께 자리했다. 가덕도 신공항은 부산·울산·경남지역 숙원사업으로 당시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정권차원의 불법 선거개입"이라고 질타했다.

국민의힘은 문 대통령이 투표 독려 글에서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쓴 것도 "노골적인 선거 개입"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3월 4일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는 "문 대통령이 사전투표 독려 메시지에서 민주당을 떠올릴 수 있는 '민주'라는 단어를 세 차례나 반복하며 노골적인 대선 개입의 선봉장에 섰다"고 논평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대통령선거 사전투표가 시작된다. 민주공화국의 주권자로서 국민 모두 신성한 투표권 행사에 참여해 주길 비란다"며 "정치의 주인은 국민이다. 투표가 더 좋은 정치, 더 나은 삶, 더 많은 민주주의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한편, 동아일보는 3일 사설 <尹 단체장후보 동행 지방 순회, 명백한 선거지원 아닌가>에서 "일주일만 지나면 대통령 신분이 되는 윤 당선인도 선거중립을 해치는 행보를 자제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며 "문 대통령의 대선 전 지방 방문에 대해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고 비판한 국민의힘이 윤 당선인의 지방 방문에 침묵하는 것은 이중 잣대가 아닐 수 없다. 윤 당선인은 지금이라도 선거개입 논란을 초래하는 지방 순회 일정을 중단해야 한다"고 썼다. 윤 당선자는 오늘(4일) 강원도 춘천·원주·강릉을 방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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