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정치 뉴스를 보다 보면 서글퍼진다. 정치인들이 스스로 정치를 희화화 하고 스스로의 권위를 내다 버리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현상이 한국 정치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쨌든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광경을 앞으로도 계속 봐야한다는 것은 고통이다.

‘검수완박’의 결말은 코미디로 끝날 듯하다. 더불어민주당은 ‘검수완박’이란 말은 검찰과 검찰 출신의 정치인들이 언론과 합작해 만들어 낸 프레임의 반영이라는 취지로 주장했는데, 원래 이 단어의 정치적 저작권자는 일부 여당 강성지지층과 ‘처럼회’라 불리는 대검찰강경파 국회의원들이다. 애초 더불어민주당이 제출한 법안의 취지도 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폐지하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검수완박’이라는 말에 걸맞았다. ‘검수완박’으로 출발해 온갖 비판과 읍소 속에 중재안, 수정안을 거쳐 일부 검찰 수사권의 한시적 유지로 마무리 된 거다. 그걸 ‘검수완박’이라고 하지 뭐라고 하나. 여론이 안 좋으니 ‘검수완박’이라는 말을 쓰지 말아달라고 언론에 요청할 수는 있겠으나, 음모론을 동원해 피해자를 자처할 일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정권을 잃은 이유가 이 과정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된다. 부동산이니 내로남불이니 하지만 국정을 책임져야 할, 집권 여당의 것으로 보기 어려운 주장을 정파적 구도 안에서 반복하는 것에 더 이상 유권자들이 공감하지 않게 된 게 핵심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에 법안 처리를 마무리 해야 한다는 이유로 자당 의원들 탈당시켜 무소속으로 둔갑시키는 등의 온갖 꼼수를 동원하고는 국무회의를 여는 시간까지 바꿔달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이 아니면 이런 행태에 누가 공감을 하겠는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이재명 전 지사의 보궐선거 출마 시나리오도 비슷한 느낌이다. 패배한 대선 후보가 대선 직후 열리는 보궐선거에 왜 출마하는가? 답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말하는 답은 오로지 대권주자로서의 앞날에 대한 얘기뿐이다. 국회의원 배지라는 방패가 있어야 당권장악이든 뭐든 수월하게 할 수 있다는 거다. 이렇게 되니 이재명 전 지사에게 재보궐선거는 승부가 쉬운 지역을 골라잡는 얘기처럼 되고 있다. 오로지 자기 정치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심지어 연고가 없는 지역에 출마하는 선택이 정당화되겠는가?

내심으로야 온갖 계산을 할 수 있겠으나, 명분은 달라야 한다. 명분이 계산을 압도해야 한다. 망할 것을 각오하고 대선 패배에 대한 반성문을 충격적인 수준으로 쓴 다음 ’검수완박의 민주당을 부숴버리겠다’고 말할 수 있다면 도전해보라. ‘노무현 모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문재인 모델’은 문재인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지층 여론에 적당히 올라타 무책임을 용인하는 소심한 정치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게 지난 대선의 교훈이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1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관련 대통령 면담 및 거부권 행사요구 릴레이 피켓시위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국민적 대안이 못 되는 것은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당선인의 취임일이 다가오지만 어떤 기대감도 불러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국무위원 후보자 인선은 자기 편 잘못에 둔감하고 감싸기로만 일관하는 ‘형님 리더십’의 재현으로 비춰지고 있다. 인사청문회 이후 일부를 낙마시키고 “문재인 정권과는 달랐다”고 하겠지만 ‘형님 리더십’에 대한 비판은 계속 남을 거다. 이런 식이니 ‘비전’은 온데간데없고 불통과 파워게임만 부각된다. 오로지 ‘윤심’을 쫓는 발걸음만 바쁘다.

‘검수완박’에 대한 국민의힘의 대응은 ‘윤석열 시대’ 여당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죽마고우니 윤핵관이니 하는 권성동 원내대표가 박병석 국회의장 중재안에 합의를 해왔을 때만 해도 다들 그게 ‘윤심’인 줄 알았다. 검사 출신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안 된다고 하고, 기류를 감지한 이준석 대표가 재빨리 여기에 동조하면서 상황은 ‘이 산이 아닌가벼’가 되었다. 기존의 ‘윤핵관 대 이준석’ 구도는 ‘이준석-한동훈 대 자칭 윤핵관’으로 다시 정리됐다. ‘검수완박’은 상관없고 ‘윤심’에 대한 충성심을 과시하며 당내 경쟁에 몰두하는 게 더 중요한 일이라는 게 여기서 드러난다.

윤석열 당선인 측의 가능하지도 않은 국민투표 주장은 이들 역시 정파적 효과만 가늠하는 무책임한 정치로 일관하리라는 예고편을 보여준다. ‘사회주의 개헌’을 막자는 괴이한 이유로 국민투표법 개정을 하지 않은 과거에 대해선 한 마디도 없다. 헌법 전문가들도 정파적 기준에 따라 제멋대로 주장하는 국면이지만, 어떤 기준으로 봐도 ‘검수완박’에 대한 실효적인 국민투표 실시는 무리다. 그렇다면 정치적 조건이나 시한과 관계없이 실효적인 국민적 의사결정 또는 의견수렴은 어떻게 하면 가능한 것인지, 그걸 위해 필요한 법적 제도적 보완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그것은 반드시 헌법상의 국민투표로만 가능한지를 논의하는 게 우선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소수 의석을 가진 상황에서 당장 뜨거운 감자인 국민투표법 조항을 개정하자고 주장하는 것 외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국민의 의사를 실제로 묻는 게 아니라 ‘검수완박’ 이슈를 지방선거까지 끌고 가는 것만이 목적이라는 게 여기서 드러난다. 이건 ‘개혁’은 레토릭이고 실제로는 자기들에 정파적으로 유리한 선까지만 행동한다는 더불어민주당의 정치와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이런 암울한 양당정치의 현실에 화룡점정을 찍는 것은 정의당의 태도이다. 논란 초기 ‘검수완박’과 한동훈 후보자 지명 모두에 반대 입장을 내건 것은 정치적으로 실효적이지는 않을지라도 맞는 길을 찾아 가기 시작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정의당의 이런 입장은 대안을 마련한다는 둥 하면서 박병석 의장안을 기점으로 사실상 더불어민주당에 정치적으로 포섭되는 결말로 끝났다.

물론 이렇게 된 이유는 여러모로 설명 가능할 것이다. 어찌됐건 ‘검수덜박’ 수준에서 합의하고 절충하는 것도 필요한 일일 수 있고, 더불어민주당과 지지층이 겹친다는 냉정한 현실을 무시할 수 없으며, 생존에 필요한 실리를 기대하는 행보 역시 현실정치에선 필요한 일이라는 등의 논리가 그것이다.

그러나 정의당을 결정적 위기에 빠뜨린 2020년 총선을 전후한 선거법 개정 국면은 바로 이러한 논리에 근거한 선택과 행보의 결론이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최근 정의당의 태도는 보수정권 시기 ‘반-이명박근혜’ 정서에 쉽게 편승한 후 ‘개혁 정권’에서 파트너를 자처하다 고립되는 일을 되풀이하기 시작한 걸로 느껴진다.

정의당은 문재인 정권의 한계를 ‘미진한 개혁’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구도를 벗어나야 한다. ‘검수완박’은 ‘개혁 정권’의 문제가 개혁을 더 하거나 덜하는 데에서 오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개혁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가 진짜 던져야 질문이다. ‘검수완박’ 같은 일에 찬성을 하든 반대를 하든 진보정당은 그게 힘없는 서민들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정의당은 그런 방식을 포기한 지 오래되었다. 그러니 결국 지금까지 본 장면을 5년 동안 다시 보는 운명인가 할 수밖에 없다. 정치 일반, 특히 진보의 위기가 이런 감각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꺠닫??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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