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국회의장의 중재로 여야 원내대표가 서명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합의안에 국민의힘이 '말 바꾸기'에 나서면서 '정치도의'에 어긋난다는 언론 비판이 제기된다. 동아일보는 "신(新)여권의 진의가 뭐냐"고 따져 물었다.

25일 국민의힘은 최고위원회를 열고 '검수완박' 합의안을 재논의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야 원내대표 간의 전격 합의를 사흘만에 번복한 것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공직 선거 범죄, 공직자 범죄와 관련해 미흡한 부분이 있다는 국민들의 많은 우려를 확인했다"며 최고위 회의 결과를 발표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당장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인이 수사받기 싫어 짬짜미를 한 것 아니냐는 여론이 많다"며 더불어민주당에 재논의를 요청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오른쪽)와 권성동 원내대표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자리에 앉아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에 민주당은 예정대로 '검수완박' 합의안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여야가 합의한 대로 금주에는 법사위에서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조문 작업을 조속히 끝내고 28일 또는 29일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며 "윤석열 인수위와 국민의힘의 '오락가락 말 바꾸기'는 국회 합의를 모독하고 여야 협치를 부정하는 도발"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 같은 정국 경색은 지난 22일 여야 원내대표의 전격 합의 이후 이준석 대표 등이 합의안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시사하면서 예견됐다.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를 현행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에서 경제·부패 범죄 분야를 남기기로 여야 합의가 이뤄지자 정치권 안팎과 검찰, 법조계 등에서 반발이 이어졌다. 특히 권성동 원내대표에게 비판이 모아졌다.

24일 이준석 대표는 "더이상의 입법 추진은 무리"라며 최고위원회를 통해 여야 합의안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SBS 보도에 따르면 이준석 대표는 의견수렴 과정에서 한동훈 법무부장관 후보자와 통화를 나눴다. 같은 날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정치인들이 스스로 정치인에 대한 검찰수사를 받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해상충"이라며 합의안을 비판했다. 인수위는 여야 합의 직후 "여야의 중재안 수용을 존중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일선 검사들이 만족하는 합의안"이라고 자평했던 권성동 원내대표는 SNS에 연일 사과문을 게재했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여야 합의안에 사실상 반대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25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윤 당선자는 여야가 전격 합의한 검찰 수사권 조정 중재안에 대해 "이대로는 안되고 조정이 필요하다. 법안 심사 때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당선자 핵심관계자는 동아일보에 "윤 당선인은 국민 여론과 형사사법체계를 감안하면 이대로는 안 된다고 보고 있다"며 "당선인은 특히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 범죄와 공직자 범죄 등을 검찰의 직접수사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한 데 대한 깊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동아일보는 지난 23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여야 합의에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출한 것도 윤 당선자의 뜻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덧붙였다.

4워 25일 SBS '8뉴스' <[단독] 이준석 "최고위서 검수완박 재검토"…한동훈과 통화> 보도화면 갈무리

다수 언론은 민주당의 검수완박 추진이나 여야 합의안 내용과는 별개로 국민의힘의 급작스러운 태도 변화를 비판했다. 명분없는 합의 파기 움직임은 정치도의를 저버리는 무책임한 행태라는 지적이다.

25일 동아일보는 사설 <검수완박 “합의” “존중” 이틀 만에 말 바꾼 新與… 진의가 뭘까>에서 "여야 합의를 존중한다고 밝혔던 신(新)여권이 이틀 만에 말을 바꾸고 나선 것"이라고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민주당은 ‘검수완박’을 3월 말부터 공식적으로 추진했고 이달 12일에는 당론으로 채택했다"며 "이미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도 신여권 내에서 의견 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검찰과 지지층의 반발이 커지자 신여권에서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이라고 해도 비판을 피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라며 "당장 민주당은 '윤 당선인은 예정된 검찰 정상화 국회 입법을 존중하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래서는 여야 관계가 악화되는 것은 물론이고 국민의 신뢰도 잃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썼다.

같은 날 경향신문은 사설 <‘검수완박’ 합의 지키고, 문제점은 입법 과정에서 보완해야>에서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하고 의원총회에서 추인한 사안을, 일부 반발을 이유로 뒤집는다는 건 정치도의에 어긋난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국민의힘이 재협상을 공식 요구한다면 새 정부 출범을 앞둔 정국은 급랭할 것이 분명하다. 민주당은 단독 강행 처리를 밀어붙일 수도 있다"면서 "문제점은 입법 과정에서 보완하면 된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검찰의 '별건 수사'를 막기위해 보완수사권에 '단일성' '동일성' 등 까다로운 제약을 둔 것이 자칫 '여죄 수사'를 막을 우려가 있다고 했다.

동아일보 4월 25일 사설 <검수완박 “합의” “존중” 이틀 만에 말 바꾼 新與… 진의가 뭘까>

한국일보는 사설 <이준석 "검수완박 재논의", 합의 파기는 안 된다>에서 "민주당이 이준석 대표 요구를 수용할지 여부를 떠나 양당이 의원총회까지 열어 추인한 합의안을 재논의하자는 것은 명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정치 도의에도 어긋난다"며 "의장 중재로 여야 원내대표가 서명한 합의안에 잉크가 채 마르지도 않은 상황이다. 합의 내용에 대한 세부 조정이라면 몰라도 합의를 번복한다면 국민의힘은 모든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썼다.

서울신문은 사설 <검수완박 졸속 추진과 합의 번복, 이게 정치인가>에서 민주당의 검수완박 추진을 '거듭거듭' 지적해왔다면서도 "국민의힘이 국회의장이 주도한 절충안에 덜컥 합의하고는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돌연 합의 백지화 카드를 꺼내드는 등 갈팡질팡하는 것 역시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질타했다.

서울신문은 "문제는 권 대표의 합의가 당내 의견을 온전히 수렴하지 못한 데 있다고 하겠다. 민주당의 입법 강행만큼이나 권 대표의 합의 또한 졸속이었던 셈"이라며 "힘으로 밀어붙이겠다는 민주당의 오만과 마땅한 대안도 없이 오락가락하는 차기 정권의 정치력 부재가 국민들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고 했다.

반면 여야 합의를 '담합' '정치적 거래' 등으로 비판했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국민의힘 입장이 돌변하자 '합의 파기'를 주문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사설 <정치권 범죄만 뺀 신·구 권력의 야합>에서 "여야가 정치적으로 야합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이렇게까지 뻔뻔할 수 있나"라며 "졸속 합의를 깨고 다시 협상하는 게 도리일 것"이라고 썼다. 중앙일보는 사설 <“정치적 야합” 검수완박…여야, 원점 재검토해야>에 '분노한 민심 새겨듣고, 여야 합의 무효로 하길'이라는 소제목을 달았다.

한편,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는 "이준석 대표에게 묻는다. 집권 여당 대표 초유의 성상납의혹으로 인한 윤리위에 회부되어 있는 상황"이라며 "기존 이준석 대표가 취해왔던 태도로 미루어보아 여야 합의 파기로 인한 정쟁 격화를 통해 본인에게 몰린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하는 의도는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배 원내대표는 "국회 논의에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는 인수위원장과 법무부장관 후보자 신분에 불과한 인사들의 한마디에 여야 합의의 책임을 져버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며 "합의를 파기한다면 인수위와 한동훈 후보자들 통한 당선인의 오더 정치로 인해 일어나는 극한 대결의 책임은 온전히 당선인과 국민의힘의 몫"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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