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은 공소시효가 없다. 김용민에 이어 김구라 역시 10년 전 인터넷 방송에서 한 말로 인해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는 일을 선택해야만 했다. 이 일에 대해서 음모론도 있고, 잘 됐다는 반응도 있지만 일단은 일이 불거진 이상 시간을 끌지 않고 신속하게 사과하고, 신변을 정리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김구라가 한 말은 아무리 오래 전 일이라 할지라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뭘 몰라서 한 말이다. 특히 10년 전이라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지금보다 더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악의를 가지고 한 말이 아니라고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무지와 경박함을 용서해주긴 어렵다.

김구라는 기자회견이라는 형식이 아닌 가까운 사이인 김성주 아나운서와 인터뷰 형식으로 입장을 밝혔다. tvN e-news에 방송된 인터뷰는 김구라가 이번 일을 얼마나 진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기자회견을 열어야 하겠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는 말에서 평소답지 않은 여린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갑작스런 활동중단선언은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 동현에 대한 걱정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입장을 빨리 정하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는 기사와 악플들이 아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을 염려한 아빠의 마음도 읽을 수 있다. 어려운 결정이었을 김구라의 사과와 자숙결정에 박수는 치지 못해도 위로의 말은 건네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김구라의 사과는 대상이 잘못됐다. 이번 일이 이토록 커지고 급박하게 번진 것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폄하한 발언 때문이다. 그렇다면 방송사와의 인터뷰가 아니라 나눔의 집을 찾아가 용서를 빌었어야 옳다. 이번 일에 대해서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김구라를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들고 있어선 누리꾼이 아니라 잠잠한 그분들이기 때문이다.

김구라가 막연하게 대중을 향해 용서를 구한 것은 남의 제사에 절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번 일을 그저 수습하려는 것이 아니라 진정 자기 잘못을 뉘우친다면 반드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직접 찾아가 엎드려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혹시 사회봉사라도 할 생각이 있다면 그곳은 다른 곳이 아니라 나눔의 집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예능의 중심축이 또 하나 뽑혀졌다. 그런데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김구라는 물론 김용민의 막말은 총선을 전후로 해서 뜨거운 이슈로 떠올라 지대한 파급력을 발휘했다. 필요에 의해서건, 진심이건 어쨌든 이들은 모두 사과했고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제수를 성희롱하거나 논문을 표절한 새누리당 국회의원 당선자들 역시 그 잘못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연예인만 잘못에 대해 책임지는 나라는 아니지 않는가. 요즘은 연예인도 공인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딱히 공인도 아닌 연예인도 10년 전 발언에 의해서 자신의 밥줄을 내놓고 물러나는데, 범죄가 분명한 일들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공직을 부여한다는 것은 상식을 우롱하는 일이다.

그들이 새누리당의 과반수 의석확보에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정치 문외한이라 깊이 알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이들을 그대로 둔다면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비상대책이라고 세운 모든 것들에 대해 의심할 수밖에는 없는 일이다. 또한 새누리당이 자발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김구라에게 그랬듯이 대중이 요구해야 한다. 정의가 연예인에게만 적용되는 이상한 나라를 만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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