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드라마는 여자들이 좋아한다. 여자들이 좋아하고 많이 보다보니 점점 더 여자들을 위한 드라마들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더 여자들이 많이 본다. 그러다보니 드라마들이 더욱 더 여성용이 되어가는 악순환(?) 구조다.

이런 경향은 과거부터 있었다. 그래서 엄마는 드라마, 아빠는 스포츠와 시사라는 등식이 생겨났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남자들이 유일하게 보는 드라마가 바로 사극이었다. <용의 눈물>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하겠다. 사극 속엔 정치와 투쟁이 있기 때문에, 남녀가 울고 짜는 드라마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난다.

그런데 요즘엔 사극이 퓨전화하면서 사극도 울고 짜는 분위기로 바뀌어갔다. 대표적인 사례로 <해를 품은 달>이 그랬다. 이 작품은 남자 주인공이 툭하면 여자 생각하면서 울었는데, 그래서 여성 시청자들에겐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남성들에겐 아쉬운 일이었다.

작년에 상당히 성공을 거둔 <공주의 남자>도 그렇다. 옛날 사극에서 계유정난은 한명회와 수양대군 일당의 쿠데타 과정을 치밀하게 보여주는 정치드라마 소재로 쓰였지만, <공주의 남자>에선 로맨스의 배경 정도로나 그려졌다. 그래서 여성 시청자들 사이에선 ‘공남 신드롬’이 나타났지만 남자인 내 입장에선 강 건너 불구경인 심정이었다.

사극과 현대극이 모두 꽃미남 로맨스 드라마로 획일화되어가는 분위기에서 그나마 정통사극에 대한 갈증을 채워준 것이 <광개토 태왕>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박진감이 조금 부족했다.

그러던 차에 그 부족함을 완전히 채워준 작품이 바로 <무신>이다. <무신>은 오랜만에 등장한 아주 잘 만든 남성용 드라마다. 개인적으로 요즘 방영되는 모든 드라마 중에서 이 작품이 가장 기다려진다.

이 작품에선 얼마 전에 최우가 아우인 최향을 물리치고, 최충헌의 후계자가 되는 과정이 그려졌다. 그 과정이 마치 516이나 1212 사태를 그린 것처럼 긴박감이 넘쳤다. 요즘 드라마들이 주로 로맨스와 관련된 혹은 가정사에 관련된 정서를 그리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다만 최근 들어 남자 주인공과 얽힌 여자들의 이야기가 부각되면서 극이 조금 늘어졌지만, 남자 주인공이 국경 지대로 진출하면서 다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재밌는 건 남자인 내 입장에서 극이 늘어진다고 느꼈던 그 순간에, 이 드라마가 가장 화제가 됐다는 점이다. 남녀의 애절한 로맨스와 비극적인 여자의 죽음은 크게 보도가 됐고, 호평이 잇따랐다. 확실히 드라마 쪽에선 로맨스가 먹히는 시대다.

하지만 우리 드라마들이 모두 비슷비슷한 정서와 구도를 보여준다는 건 문제다. 중장년층을 위한 신데렐라 복수극, 젊은 층을 위한 신데렐라 로맨스극으로 드라마들이 도배가 되는 건 대중음악계가 아이돌로 획일화되는 것만큼이나 문제가 있다.

<무신>처럼 박진감이 넘치는 작품들도 살아남아서 우리 드라마들이 다양화돼야 한다. <무신>에는 요즘 인기 드라마들과는 달리 부드러운 꽃미남이 나오지 않는다. 주로 목소리가 우렁찬 아저씨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런 작품도 있어야 숨통이 트이지 않겠는가? 모든 드라마들이 로맨스 일변도로만 가면 장차 로맨스에 숨이 막힐 것이다. 인간사회엔 사랑타령 말고도 중요한 일들이 많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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