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윤리헌장실천협의회에서 발행하는 <언론윤리 TALK>은 취재보도 활동에서 발생하는 윤리 문제를 주제로 언론인에게 드리는 편지 형식의 글입니다. 학계와 시민사회, 언론계에서 언론윤리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온 필진이 돌아가며 격주로 집필,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에서 발행하는 [언론인권통신]에 게재합니다. 동의를 구해 미디어스에 싣습니다.  

 

[미디어스=심석태 칼럼] 제가 기자로 입문했던 1991년에는 전화를 녹음하는 게 참 힘들었습니다. 사회부 책상에 있던 제보 전화에도 녹음 기능이 없었습니다. 전화 인터뷰를 할 때도 전화기의 수화기 부분에 핀마이크를 테이프로 붙이고 ENG 카메라를 돌렸습니다. 모든 통화를 녹음하도록 스마트폰 설정을 할 수도 있고, 녹음된 파일을 손쉽게 주고받을 수도 있는 지금 생각해보면 잘 상상이 되질 않는 모습이죠.

적지 않은 기자들이 전화 통화를 기본적으로 녹음합니다. 주된 목적은 기록입니다. 통화 내용을 그때그때 메모하기 어려우니 녹음을 하는 거죠. 녹음이 쉽게 이뤄지다 보니 몰래 녹음한 대화록이나 음성을 공개하는 일이 빈발합니다. 뭔가 문제는 있는 것 같은데, 기준이 뭔지 의견이 엇갈립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녹취를 둘러싼 윤리적 기준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언론윤리헌장에서 비밀 녹음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은 먼저 제3조로 "윤리적 언론은 취재 대상을 존중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보도할 가치가 있는 정보를 취재하고 전달할 경우에도 개인의 인권과 존엄성을 침해하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입니다. 또 제8조에서는 윤리적 언론은 취재보도 과정에서 정당한 방법을 사용하고, 취재원에게 예의를 갖춘다"고 규정합니다.

취재 대상을 존중할 것, 비록 공익적 가치가 있는 보도를 할 때도 인권과 존엄성을 침해하지 말 것, 특히 취재는 정당한 방법으로 할 것.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 법적인 기준도 생각해야겠죠. 형사적으로는 자기가 참여한 대화를 녹음할 때는 상대방 동의를 얻지 않아도 죄가 되지 않습니다. 통신비밀보호법은 다른 사람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것만 처벌하니까요.

하지만 민사적으로는 대화 참여자라도 발언자 동의 없이 녹음하거나 녹음한 음성을 공개하면 음성권 침해라는 불법행위가 됩니다. 위에서 본 메모나 기록을 위한 녹음도 동의를 받지 않았다면 음성권 침해가 될 수 있습니다. 취재에 불법행위를 동원하면 '정당한 취재 방법을 사용하라는 윤리헌장 위반이 될 수 있겠죠?

그럼 허락을 받지 않고 통화 녹음을 하면 아예 안 되느냐고 물을 수 있겠습니다. 원칙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예의를 갖추라는 것은 물론, 취재원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단순히 메모 용도로 통화를 녹음할 때도 상대에게 알려 주고 허락을 얻는 게 맞습니다. 기업체 콜센터에 전화해도 통화를 녹음한다고 알려주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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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도 누군가 유명인을 만나서 인터뷰할 때 녹음을 하려면 상대에게 잘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몰래 녹음하다 들통나면 인터뷰를 못하게 될 수도 있죠. 전화도 마찬가지여서 그런 취재원이 전화 녹음을 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면 최대한 그 뜻을 존중할 겁니다. 그런데 취재는 위에서 언급한 콜센터 업무와는 다르다는 게 문제입니다. 누군가의 거짓말도 파헤치고, 숨겨진 사실도 찾아내야 합니다. 어려운 작업이죠. 취재원들은 자신에게 불리해지면 말을 바꾸기도 하고, 무엇보다 메모나 기억에 의존하면 정확성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녹음은 공익적 필요성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저는 그런 측면에서 순전히 사실관계의 정확한 기록을 위한 녹음, 취재원이 말을 바꾸는 것에 대한 방어 차원에서의 녹음을 아예 불법으로 보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법원도 공익 목적을 가진 취재 과정에서 녹음을 한 것에 음성권 침해의 책임을 면제해 주는 판결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몰래 녹음을 하는 것이 항상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기자는 정확한 취재를 위해서라도 상대방에게 녹음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몰래 녹음하지 않고는 아예 말을 안 하거나, 나중에 말을 바꾸는 등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될 때에는 제한적으로 동의 없이 녹음하는 것이 정당화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몰래 녹음하는 것을 넘어서서 아예 그렇게 녹음한 음성을 공개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숨겨진 비리를 고발하기 위해서라면 몰래 녹음한 음성을 증거로 제시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정식 인터뷰에서라도 지나치게 사적인 내용이나 주변적인 발언을 공개하는 것은 공적 논의를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언론윤리의 핵심에는 언론이 사회적으로 공적 논의를 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정신이 깔려 있기 때문이죠.

몰래 한 녹음은 더 그렇습니다. 녹음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비공식적인 대화에서 편하게 나온 사적인 언급을 공개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렵습니다. 비밀 녹음 자체가 오로지 공익적 필요에 따라 제한적으로만 정당화되는 것인데, 공익성이 없는 사생활 영역의 대화를 공개하는 것은 호기심 충족 이상의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몰래 한 녹음에는 영상의 '짤'에 해당하는 재미있는 부분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대체로 공적 논의 대상은 아니죠. 오로지 조회수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누군가의 인격권을 침해할 정당한 사유는 못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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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보겠습니다.
① 기본적으로 녹음은 상대방의 동의를 받는 것이 원칙입니다.
② 특별히 숨겨진 사실을 밝혀내거나 거짓말이 우려될 경우 등에는 공적 사안임을 전제로 동의 없는 녹음이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③ 예외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몰래 한 녹음 내용 중에서 공적 논의 대상이 되기 어려운 사적인 내용을 사람들의 관심을 이유로 공개하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습니다.

기본적으로 취재는 정당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외는 최소한에 그쳐야 합니다. 운전에 비유해볼까요? 우리는 차선을 지켜야 하지만 중앙선을 넘는 것이 허용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중앙선을 넘을 이유가 있었다고 계속 그 차로에서 달리면 안 되겠죠. 특히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 언론보도의 이유가 되기도 하는데, 누군가의 인격권 침해를 정당화하는 근거는 ‘정당한 공적 관심’이라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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