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한상희 칼럼] 범죄관련 프로그램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로 대표되는 탐사프로그램과는 달리 예능 혹은 교양 그 어디쯤에 자리한 프로그램들이 스토리텔링이나 토크의 형태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는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강력사건부터 최근 기승을 부리는 보이스피싱까지 범죄에 대한 경각심과 예방법을 제공하기도 하고 긴장감을 유발하는 구성으로 어느새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들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몇몇 사건들을 보면서 불편하고 힘들다고 느끼는 건 왜일까? 물론 천인공노, 극악무도, 인면수심 등등 극한의 분노를 표현할 수 있는 사자성어들을 모두 끌어다 모은 범죄 사건들을 보고 있는 것이 편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그것과는 다른 종류의 불편함을 느낀다면?

tvN '알쓸범잡' (2021. 4. 18), 채널A '블랙 악마를 보았다'(2022. 3. 16), SBS '집사부일체, 그것이 알고싶다 30주년 기념특집 2탄'(2022. 3. 13.), KBS2 '표리부동'(2021. 9. 15.), MBC '심야괴담회'(2021. 8. 12)

SBS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 <레인코트 킬러:유영철을 추격하다> 포스터

지난해부터 방송되었던 범죄관련 프로그램 중 앞에 열거한 내용들의 공통점은 모두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다루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SBS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12부작 드라마, 2022.1.14.~3.12)과 넷플릭스 '레인코트 킬러 유영철을 추격하다'(2021. 10. 22 공개) 등 드라마와 OTT 오리지널 다큐멘터리까지 더해지면 지난 1년에 걸쳐 시청자들은 지속적으로 유영철의 범죄와 마주하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 칼럼에서는 지면관계 상 유영철 사건만을 예로 들었지만 다른 강력범죄에 대해서도 반복되고 있는 것이 적지 않다.

위에 열거한 프로그램들은 스토리텔링의 방식이나 드라마타이즈를 통해 유영철이 저지른 범죄의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고 재연을 통해 잔혹한 장면들을 보여주기도 하고, 그가 감옥에서 보낸 편지를 직접 읽어보며 그의 심리상태를 추측해 보기도 한다. 12부작으로 제작된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19세 등급을 부여했을 정도였으니 그 표현 수위는 짐작할 만하다.(물론 이 드라마는 국내 프로파일러 1호의 탄생 과정에 대해 원작(실화)을 바탕으로 제작, 드라마로서의 작품성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오늘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런 잔혹한 내용들을 콘텐츠로 소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지가 아니다. 유영철의 연쇄살인은 실재했고 잔혹하게 희생된 피해자들이 다수 존재했다. 만약 피해자들의 유족들이 사건의 스토리를 지속적으로 되풀이해서 듣고 재연장면들을 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제작진에게 묻고 싶다. 재방송까지 포함해 TV 채널을 돌리면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고 있는 내 가족, 내 친구의 비극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그들의 마음을 생각한다면 이렇게 앞을 다투어 스토리텔링의 소재로 쓸 수는 없었으리라. 그렇게 반복되는 콘텐츠들 속에서 피해당사자나 유족들의 마음이 괴롭고 힘들어질수록 일반시청자들에게 사건의 본질에 대한 문제의식은 희석되고 그저 흥미로운 이야기로만 남게 되는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의 범죄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빌미로 악마와 같은 그들의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재생산해내는 미디어와 그것을 단지 공포의 콘텐츠로 소비하고 있는 우리, 그 사이에 피해자들과 그들의 참혹함을 지켜보았던 남은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악의 마음을 소비하고 있을 뿐이다.

* 한상희 언론인권센터 사무차장 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언론인권통신' 제 951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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