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우리는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쳐 획득할 수 있었는지를 잊고 지낼 때가 있습니다. 많이 진부한 표현처럼 코를 틀어막고 20초만 숨을 참아도 늘상 마시는 공기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낄 수 있지만, 그런 절실함은 사태가 벌어지고 상황이 종료된 이후에나 깨닫게 되는 법이죠. 지금처럼 삐뚤어진 것으로 가득 찬 대한민국에선 이런 착각과 어리석음을 발견하기 위해 아주 먼, 굉장히 고상한 예를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우리는 또 한 번의 무한도전 없는 토요일을 맞이하기 때문이죠.
그 와중에 땜빵 제작진들과 함께 겨우겨우 연명하고 있는 놀러와의 위상은 점점 더 추락하고 있고, 외주로 돌려서 개편한 주병진쇼 역시 이젠 침체란 말이 무색할 정도의 초라한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언론의 관심에서도 벗어나 있습니다. 야심차게 시작했던 위대한 탄생 시즌2는 시즌3를 기약할 수 있을지조차 의심되는 허망한 마무리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나마 선전하며 버티고 있던 라디오스타마저 촬영 비축분의 소진으로 결방이 시작되구요. MBC 예능 프로그램의 전멸, 현 상황은 완성도에 있어서도 지속성에 있어서도 도저히 웃음을 만들지 못하는 수준의 프로그램을 양산하거나 개점휴업 상태로 빈자리만 늘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은 종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사장님의 퇴진을 요구하는 이들의 명분은 명백하지만 사측의 대응은 보다 많은 징계, 해고, 소송뿐입니다. 양측의 대립은 점점 더 격렬해지고 있지만 외부에서 해결과 중재 역할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작은 희망은 총선 결과로 인해 철저하게 꺾여 버렸습니다. 권력으로부터의 독립과 공정한 방송 환경 여권 확보라는 동일한 이유로 파업에 들어간 연합뉴스의 파업에 대해 왜 파업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총선 승자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발언과 인식 수준은 지금의 상황이 결코 해결되기 힘들다는 것을 확연하게 보여 줍니다. 그렇다고 총선 정국 내내 요긴하게 활용하였던 정권의 나팔수들을 지금에 와서 풀어주는 것 역시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저 이 상태로 무시와 억압만을 계속하며 파업 노조가 항복하기만을 바라겠죠.
우리는 무도를 바로 볼 수 있었던 아주 쉬운 방법을 놓쳐버렸습니다. 그 누구를 원망할 것이 아닌 좀 더 적극적이지 못했던, 무심하게 외면했었던,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던 우리 자신을 탓해야 할 일입니다. 마치 세상이 다 끝나 버린 것처럼 절망하고 우울해해서는 안 되지만, 이 아쉬움과 분노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글을 기구하게 늘어놓았지만 사실 다른 이유는 다 필요 없습니다. 전 단지 무한도전이 보고 싶을 뿐이에요. 무도도 편하게 보지 못하는 지금의 현실이 너무나 싫어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