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을언론윤리헌장실천협의회에서 발행하는 <언론윤리 TALK>은 취재보도 활동에서 발생하는 윤리 문제를 주제로 언론인에게 드리는 편지 형식의 글입니다. 학계와 시민사회, 언론계에서 언론윤리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온 필진이 돌아가며 격주로 집필,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에서 발행하는 [언론인권통신]에 게재합니다. 동의를 구해 미디어스에 싣습니다.    

[미디어스=송승환 칼럼] 요즘 취재 현장에서 기자를 향한 시민의 시선은 매우 따갑습니다. 2020년 방송뉴스 사회부 기자일 때 코로나19 유행으로 영업이 어려워진 식당 주인에게 인터뷰를 자주 요청했습니다. 대부분 협조해주셨지만 한 사장님은 식칼을 들고 달려 나와서 취재진을 쫓아냈습니다. 그분은 "언론 너희들 때문에 우리가 더 죽게 생겼어"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지난해와 올해엔 신문 정치부에서 대선 취재를 했습니다. 이 기간에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정치 뉴스는 싸움을 부추기기만 해서 보기 싫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기사에 담지 못한 이야기를 해주면 "유권자가 꼭 알아야 하는 이런 이야기는 왜 기사에서 빼고 매일 모든 언론이 같은 제목에 같은 말만 인용하냐"고 의아해 합니다. 선거 운동을 취재하는 현장에서는 정당 지지자들이 "유튜브는 진실이고 기사는 거짓"이라며 기자를 향해 조롱과 멸시를 쏟아내는 게 일상입니다.

동료 기자들 중에선 시민들의 이런 반응을 그저 비이성적인 태도로 치부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제목과 댓글만 보는 시민들의 비판은 무시하는 게 상책이란 식입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자극적인 뉴스 제목을 클릭해보고선 속았다는 생각에 화를 내는 경험을 기자들도 합니다. 이런 걸 떠올려보면 시민들의 이런 반응은 사실 정상적입니다. 시민이 이런 반응을 보일 정도라면 언론이 얼마나 잘못했는지 생각해보는 게 상식일 겁니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네가 그러고도 기자냐”고 지적하는 거친 댓글의 진짜 의미는 시민이 기대하는 기자로서의 직업윤리를 지켜달라는 요청입니다. 직업윤리와 관련해 현장 기자 입장에서 요즘 가장 화가 나는 지점은 커뮤니티 베껴 쓰기입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익명의 글쓴이가 작성한 이야기를 “한 커뮤니티에 따르면”이란 표현과 함께 기사 형식으로 다듬어서 내보내는 기사입니다.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는 혐오나 갈등을 조장하는 글을 기사 형식으로 옮겨놓으니 마치 실제로 있었던 일처럼 읽힙니다. 사실 확인이라는 언론의 직업윤리 중 가장 기초적인 절차를 포기한 뉴스입니다.

정치인의 SNS를 베껴 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을 향한 혐오와 경멸의 표현을 쌍따옴표를 통해 책임 없이 확대 재생산하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 보도와 이후 전개되고 있는 공방 중계는 공해 수준입니다. 최근 많은 정치인들이 충분히 설명하기보단 SNS에 짧고 자극적으로 메시지를 내는 것을 선호합니다. 심지어 ‘7자 공약’도 나왔습니다. 길게 시간을 들여 써봤자 항상 자극적인 부분만 따서 쓰는 언론을 학습한 결과입니다. 이런 무분별한 기사가 만들어낸 갈등, 혐오, 논란의 피해자가 됐다고 생각해보면 취재진을 보고 식칼을 들고 달려 나온 가게 사장님이 이해가 됩니다.

이 문제를 일부만 겪어본 게 아닙니다. 누구나 공감하는 이 문제를 왜 여태 해결하지 못하는 걸까요. 지난해 회사에서 공정보도위원회 소속 위원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커뮤니티 베껴 쓰기’만큼은 없애고 ‘따옴표 저널리즘'은 줄이자는 주장을 줄기차게 했고 대부분 동의했지만 달라진 건 사실상 없었습니다.

커뮤니티를 베껴 쓰는 온라인속보팀이나 이런 뉴스를 헤드라인으로 걸어주는 뉴스유통팀도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전통적인 뉴스만 저널리즘을 수행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커뮤니티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진짜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조회 수가 그걸 증명한다고 내세웁니다. 실제로 대다수 언론사에서 발생하는 조회 수의 상당 부분은 온라인속보팀이 만들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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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렇게 윤리적 책임 없이 조회 수를 늘리는 성과가 앞으로 언론이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빠르게 침식하고 있다는 건 분명합니다. 다만 그동안 이들의 성과는 이 조회 수로 평가 받아왔기 때문에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하는 걸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언론사가 기자와 기사를 평가할 때 사용하는 기준을 개선하는 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출발점일 겁니다.

중앙일보의 경우 2021년 하반기부터 기사의 조회 수를 더 이상 기사, 기자, 부서의 평가 지표에 넣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기사의 영향력과 독자가 얼마나 깊이 있게 읽었는지를 평가하기로 했습니다. 제목 낚시를 통해 조회 수를 늘려도 독자의 부정적인 평가가 쌓인다면 오히려 마이너스 성과가 되도록 평가 시스템을 바꾸는 겁니다. 반년 정도가 지났지만 온라인속보팀의 관행은 달라진 게 없어 보입니다. 목표는 세웠지만 새 평가 지표가 구체화되지 않았고 그에 따른 성적표를 아직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사의 영향력과 독자의 참여를 측정할 새 지표가 개발되고 이에 따른 평가가 누적되면서 차츰 달라지길 기대합니다.

중앙일보뿐만 아니라 다른 언론사도 자신들이 생각하는 좋은 기사가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는 지표를 만들기를 제안해봅니다. 각 언론사가 지향하는 저널리즘의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그 기준에 따라 각 기사의 품질을 평가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어떤 특종 기사는 파급력은 대단하지만 대부분의 취재원이 익명으로 등장해서 투명성은 최하 수준일 수 있습니다. 주관적인 칼럼의 영역도 제시한 근거의 객관성을 통해 평가가 가능할 겁니다. 모든 항목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기사는 드물겠지만 커뮤니티 베껴 쓰기를 한 기사는 모든 항목에서 나쁜 점수를 받을 게 분명합니다. 이런 평가가 기자의 업무 성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면 온라인속보팀 역시 신속성, 정확성, 파급력 등에서 고루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기사를 발굴하는 방향으로 스스로 역할을 바꿀 겁니다.

이는 시민에게 비판적으로 기사를 읽는 학습의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언론사가 공개한 좋은 기사를 판단하는 기준과 평가 결과를 보고서 시민은 기사의 행간과 장단점을 파악하게 되고, 더 나아가 평가 기준에 대해서 수정을 제안할 수 있을 겁니다. 이를 통해 기자와 시민의 신뢰 관계도 다시 회복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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