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브릭의 실눈뜨기] 장국영, 양조위, 임청하, 장만옥, 장학우, 양가휘, 유가령, 왕조현, 양채니. 8, 90년대에 쏟아져 나온 홍콩의 무협영화 중에서도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만큼 화려한 출연진을 자랑하는 작품은 단연코 없다. 게다가 신필(神筆)로 추앙받는 무협 소설의 끝판왕 김용의 대표작 『사조영웅전』을 원작 삼아 고비사막 로케이션으로 현장감까지 살렸다면 그 기대치가 하늘을 찌르고 지축을 흔들 수밖에.

하지만 <동사서독>은 개봉 후 관객들의 냉정한 평가와 함께 그저 그런 흥행성적표를 받아들여야 했다. 오히려 <동사서독> 촬영 중간중간 배우와 제작진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려고 한 달 동안 가볍게 촬영한 코미디 영화 <동성서취>가 흥행에 성공하고, 오히려 쉬는 중 잠깐 홍콩에 들러 만든 <중경삼림>을 통해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된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촬영상을 받긴 하지만 3년간 들인 공에 비하면 아쉬운 부분이다.

김용의 원작을 바탕으로 화려하고 액션과 장대한 대하드라마를 기대했던 관객들의 바람과 달르지 않았냐는 왕가위 감독은 이런 대답을 한다. ‘마음의 기나긴 방랑보다 더한 대하드라마는 없다’고. 그의 말처럼 <동사서독>은 일관되게 연출된 왕가위식 멜로영화에 가깝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근현대 홍콩을 벗어나 유일하게 상상의 세계에서 그려낸 멜로이기도 하다. 현실성의 제약이 없기 때문에 <동사서독>을 왕가위의 정수만 뽑아낸 최고작으로 꼽는 팬들도 많다.

영화 <동사서독> 스틸 이미지

왕가위식 사랑의 MBTI와 그 해석

느슨한 옴니버스 구조인 <동사서독>은 슈퍼스타가 총출동해 자신의 캐릭터를 각인시키려는 노력만큼 스토리를 쉽게 파악하기 어렵지만, 단순히 정리하면 사랑에 얽힌 네 커플에 관한 이야기다. 지금도 종종 쓰이는 <동사서독> 대표곡의 제목은 天地孤影任我行(천지고영임아행)이다. ‘하늘과 땅의 외로운 그림자에 나를 맡기네’라는 뜻처럼 구양봉(장국영)과 황약사(양가휘)가 일식으로 가려진 태양 아래에서 일합을 주고받으며 영화가 시작된다.

두 사람은 친구 사이지만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감정적으로 얽혀있다. 구양봉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 자애인(장만옥)으로부터 거절당했다고 오해하고, 황약사도 같은 여자에게 거절당했다. 이후로 두 커플이 더 등장하며 갈등관계가 심화된다. 여자로부터 거절당한 황약사는 바람둥이가 되어 맹무살수(양조위)의 아내와 바람이 난다. 맹무살수는 자신을 배신했기 때문에 고향을 떠나 머나먼 구양봉의 오두막을 찾는다. 모용연(임청하)은 귀한 집안의 딸이지만 황약사에게 사랑을 거절당한 이후로 미쳐버린다.

어떻게 보면 구양봉의 오해에서 시작된 연쇄적인 비극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자업자득에 가깝다. 황약사는 가질 수 없는 사랑임을 알았지만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대신 다른 사람을 해친다. 몸과 마음 전부. 맹무살수는 아내에게 돌아가 화해할 기회와 황약사에게 복수할 기회 모두를 포기하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모용연은 일방적 사랑에 혼자 기대하다 혼자 슬퍼하다 결국 자아가 분열된다. 몸과 마음이 나뉜 그녀는 물속의 자신과 평생을 싸우다가 무림의 전설적 고수가 된다. 처음부터 각자의 고집과 실수로 제각각 불행해지는 캐릭터들은 왕가위식 사랑의 MBTI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물론 어떤 선택지를 고르더라도 회한과 미련으로 수렴하겠지만.

영화 <동사서독> 스틸 이미지

시간의 재로 키우는 불행의 씨

<동사서독>의 영어제목은 ‘시간의 재(Ashes of time)’다. 불행의 씨앗을 잉태한 캐릭터들이 싹을 내리는 곳은 시간의 재가 차곡차곡 축적된 사막이다. 사막이라는 장소는 과거의 한때는 풍요로웠지만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척박한 폐허의 공간이다. 구양봉의 오두막에도 풍요의 시간에 메여 현재가 황폐해져버린 사람들만 찾아온다. 사랑하는 이를 백타산에 두고 온 황량한 사막에 터를 잡은 구양봉부터가 그렇다. 맹무살수는 자신의 고향이 복숭아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곳이라고 구양봉에게 설명한다. 훗날 찾아간 그의 고향에 사실 복숭아꽃은 없었고 맹무살수 아내의 이름이 도화라는 것이 밝혀진다.

싹 내린 불행을 키우는 건 계절의 반복이다. 경칩, 입추 등의 절기로 구분되는 옴니버스의 챕터에서 계절은 성장을 위한 긍정적인 시간의 흐름으로 보기 어렵다. 오히려 과거로부터 끝없이 반복되는 시간의 감옥과도 같다. 아집과 오해로 지지부진한 사랑의 감정도 24절기를 따라 그대로 되풀이된다. 과거만 무수히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미래를 알기란 어렵지 않다. 그래서 전지전능한 내레이션으로 모든 캐릭터의 생각과 행동이 설명되는 것이 <동사서독>으로는 당연한 연출이다.

지독한 과거의 굴레를 벗겨내는 건 누구나 시간의 끝에 맞닥뜨려야 하는 죽음이다. 백타산에서 들려온 부고가 지긋지긋한 번뇌를 끊어낸다. 부고의 주인공은 구양봉과 황약사가 사랑했던 자애인. 그녀는 함께 도망치자는 구양봉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듣지 못해 생긴 오기 때문이다.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은 이렇다.

"전에는 사랑이란 말을 중시해서 말로 해야만 영원한 줄 알았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하든 안 하든 차이가 없어요. 사랑 역시 변하니까요. 난 이겼다고 생각해 왔어요. 그러던 어느 날 거울을 보고 졌다는 걸 깨달았어요. 내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었죠.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애인의 부고가 전해진 후 황약사는 도화도로 들어가고, 구양봉은 오두막을 불태운 뒤 백타산으로 돌아간다.

영화 <동사서독> 스틸 이미지

괴로워 몸부림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동사서독>의 연출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분절되고 피아를 구분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격투 장면이다. 무림고수지만 제멋대로 칼을 휘두르는 것처럼 보이는 액션은 삶의 목적을 잃고 사막으로 흘러들어온 사람들의 자해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죽어도 상관없다는 자포자기의 몸부림. 이기고 지고를 떠나 살아갈 이유를 상실한 맹무살수는 시력을 잃고도 수백 명의 마적단에 단기로 맞선다.

카메라는 삶의 의미를 상실한 맹무살수 검사위를 슬로우모션으로 잡는다. 마치 손과 발이 움직여야 할 이유를 상실한 것처럼 느리게 보이도록.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삶의 의미를 되찾는 홍칠(장학우)는 슬로우모션까지는 아니지만, 감정에 얽매인 사람이다. 대의를 위해 목숨을 버려도 상관없다는 초심이 흔들린 채 보수를 바라고 치른 전투에서 그는 몸이 평소보다 느리게 움직인 것 같다고 말한다. 굼뜬 동작의 대가로 그는 손가락 한 개를 잃는다. 목숨이나 연인을 잃는 것보단 낫다고 할까.

매년 경칩 무렵 구양봉을 찾아오는 황약사는 자애인이 준 술이라며 구양봉에게 취생몽사를 권한다. 취생몽사는 마시면 모든 걸 잊게 된다는 술. 그러나 효과는 없다. 애초에 구양봉과 자애인의 농담에서 시작된 술이다. 황약사는 만취하도록 취생몽사를 마시지만 잊는 걸 잊어버리고, 구양봉은 오히려 자애인과의 기억만 또렷해진다. 과거를 지우려 떠올릴수록 과거는 더욱 선명해진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면 코끼리만 생각이 난다. 슬프게도 우리의 뇌에는 부정의 개념이 없는 탓이다.

왕가위는 <동사서독>을 ‘이루지 못한 사랑, 배신, 싸움 등 자신이 집착하는 대상에 갇혀 있다. 마음의 문제, 집착에 관한 영화’라고 말했다. 오프닝을 유심히 봤다면 쉽게 알아챌 수 있는 주제다. 불교의 육조법보단경에 나오는 말로 영화가 시작된다.

“깃발은 아무 움직임이 없다. 바람은 조용하다. 괴로워 몸부림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은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복숭아꽃의 개화 시기는 4월 중순. 혹시 내 눈앞의 깃발도 흔들리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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