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고 이예람 중사 성폭력 사건에 대한 특검법 처리가 무산됐다. 군 내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는데 여야가 이견을 보이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질타가 유족, 시민단체, 언론 등에서 이어졌다.

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는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이 중사 사망사건 조사를 위한 특별검사 법안을 논의했다. 하지만 특검 추천방식 관련, 여야가 이견을 나타내 법안 상정이 무산됐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이 중사 사망사건 특검법 처리를 합의한 지 하루 만이다. 여야는 원내대표 협의가 추가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공군 성폭력 피해자 고(故) 이예람 중사의 사망 사건 조사를 위한 특검법 합의처리가 예정된 4일 오후 이 중사의 부친이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이 중사 추모소 영정 앞에서 통화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여야는 특검 추천 방식을 놓고 의견을 달리했다. 지난해 국민의힘·정의당·국민의당·기본소득당 등 야4당 의원들이 공동발의한 특검법은 대한변호사협회가 4명의 후보를 추천하면 원내교섭단체가 합의해 2명으로 추리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안이다. 지난달 민주당이 발의한 특검법은 원내교섭단체가 1명씩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내용이다.

이 중사 유족과 시민단체들은 변협 등 외부 단체가 추천하는 특검이 진상규명에 소극적일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5일 이 중사 유족·군인권센터·천주교인권위원회는 성명을 내어 "이 사안은 여야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으로 진행되는 특검이 아닌 만큼 불필요하게 외부 법조인 단체 등으로부터 특검 후보자를 추천받아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다"고 비판했다.

유족들은 "국민의 대의기구인 국회에서 교섭단체가 직접, 신속하게 성역 없는 수사에 적합한 인사를 찾아 대통령에게 추천할 것을 요구한다"면서 "특검을 누가 추천할 것인가에 관한 지엽적 사안 하나에 합의를 이루지 못해 느닷없이 법안 논의가 기약없이 연기되었다는 소식에 당황스럽기 그지없다"고 밝혔다.

이어 유족들은 "가해자 장 중사 외 2차 가해 등에 가담한 이들 중 대부분이 무죄나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있다. 우리 군을 믿고 기다렸던 유가족은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다"며 "이제 특검 도입으로 진실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이 중사의 원통함을 풀 기회의 문이 열렸다 생각했는데 억장이 무너지는 실망감을 이루 다 표현할 길이 없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오른쪽)와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가 3일 오후 국회에서 회동해 공군 성추행 사망 사건 특검에 합의한 뒤 악수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5일 경향신문은 사설 <고 이예람 중사 특검법안 난항, 특검 추천이 장애물이라니>에서 "합의한 지 불과 하루 만에 여야가 이견을 보이다니 어이가 없다. 다른 사안도 아닌 군 내 성폭력 사건을 규명하는 데 합의하지 못한 것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1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건의 의혹을 풀 증거는 지속적으로 훼손되고 있다. 사건을 무마하는 데 급급하고 진상 규명에 미적대온 군과 군 수사기관이 애써 증거를 보존할 리가 만무하다"며 "이런 마당에 여야가 법안 통과에 합의해놓고도 특검 추천 방식을 둘러싸고 이견을 보이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썼다.

같은 날 한국일보는 사설 <故 이예람 중사 특검법 처리 합의하고도 늑장인가>에서 "이미 가해자에 대한 1심 판결까지 나와 지금 통과시켜도 늦은데 무슨 정치적 이권이 걸렸다고 특검 추천 방식을 두고 줄다리기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지난해 말 구형량에 턱없이 못 미치는 보통군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고 검찰 수사가 더 철저했더라면 결과가 달랐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며 "뒤늦었지만 특검을 통한 재조사로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자를 엄벌해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신문은 사설 <여야 합의 무산된 ‘이예람 특검법’ 조속 처리하라>에서 "피해자에 대한 회유와 협박이 이어지고, 피해자 신원 노출을 비롯한 2차 피해마저 발생했으니 후진성을 넘어선 야만성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며 "그런 만큼 ‘이예람 특검’은 공군에서 일어난 특정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것에만 목적을 두어서는 안 된다. 권력형 성범죄에 정상적인 수사가 이루어지면 어떻게 단죄되는지 분명하게 각인시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4월 5일 경향신문, 한국일보, 서울신문 사설 갈무리

공군 여성 부사관이었던 이 중사는 지난해 성추행과 2차 가해 등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12월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은 이 중사 사건 가해자인 장 중사에게 군검찰 구형량 15년보다 낮은 징역 9년을 선고했다.

군사법원은 가해자의 성추행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지만 2차 가해에 해당하는 보복·협박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가해자는 이 중사에게 '사과를 받아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지만 군사법원은 사과의 의미를 강조해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무마·회유를 한 사람 중 노 모 준위만 구속기소됐을 뿐 다른 관계자들은 불기소됐다. 이후 노 준위는 보석으로 석방됐다. 유족들은 이 중사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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