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는 명백한 데 그 과정과 이유에 대한 대답은 엇갈립니다. 연관성을 의심할만한 시기적인 문제도 지적하지만 한 쪽에서는 극구 아니라고 부인합니다. 꺼림직하지만 굳이 잡아 때며 아니라고 하면 무어라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 진실의 일부분만 밝혀지고 나머지는 베일에 가려져 있는 상황에서 두 가지 입장이 갈등과 충돌을 일으킬 때 쉽게 발견되는 풍경입니다. 결국은 시간이, 조금 더 거창하게는 역사가 모든 것을 판정해 줄 것이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대부분 이런 장황한 결론은 현실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가해자들이 마땅히 감당해야 하는 책임 회피를 위해 하는 미사여구이죠.

한 사람의 내부 고발자로부터 재점화된 현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태의 불똥이 연예계로까지 확장되고 있습니다. 각종 국가 기관이 동원되었으리라는 의심과 정황을 밝히는 와중에 그런 감시와 위협의 명단 안에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연예인들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고, 그들 스스로도 점잖은 충고성 위협을 담은 방문을 했다는 증언을 털어내고 있죠. 김제동과 김미화를 필두로 한 사람씩 자신들의 경험을 털어놓으며 나 역시도 사찰 대상자였다는 것을 밝히고 그 피해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국민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권력의 위험성을 절감하게 되는 보도들이 매일 쏟아지고 있는 요즘이에요.

▲ 김제동(왼), 윤도현ⓒ연합뉴스

그런데 그 와중에 엉뚱한 곳에서 자신의 입장을 해명하는 보도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당사자는 새노조의 파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KBS. 사찰 대상자로 지목받으며 힘들었던 상황을 이야기했던 김제동, 혹은 비슷한 시기에 하차했던 윤도현 등이 그 당시 프로그램, 스타골든벨이나 러브레터에서 하차하게 된 경위를 말하며 그 모든 하차의 과정은 제작진 자체의 판단에 의한 것이었던 것이고, 이른바 외부의 압력이나 다른 잣대에 의한 결정이 아니었음을 알아달라고 말하고 있는거죠. 사찰받았다는 시기와 하차의 시점이 맞물리면서 논리적으로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는 의혹을 미리 차단하려는 언론 플레이입니다.

당시 제작에 참여했던 새노조의 일원이나 두 사람의 소속사에서 이런 KBS의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분명히 비정상적이고 급작스러운 하차 통보였으며, 이에 대한 설명 역시도 외부의 압력을 암시하거나 실토하는 내용이었다는 문제제기이죠. 잘해보자고 해놓고 급작스럽게 하차를 결정한다던지, 촬영 일정을 며칠 앞둔 상태에서 예고도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식의 이해하기 힘든 예외적인 하차였다는 것이죠. 결정의 주체도 직접 일선에서 제작을 지휘하는 이들이 아닌 그보다 윗선이 움직이며 결정에 관여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습니다. KBS의 주장과는 정반대의 시각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죠.

물론 각기 다른 진영, 이해관계, 입장과 기억에 의해 말하는 것이니 쉽게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서로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누가 정확하게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를 따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아요. 이럴 때에는 그 후속 조치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과연 이들의 하차가 당시 KBS 사측이 내세웠던 명분에 부합하는 결과와 처리 과정을 보여주었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는 법이죠. 그것만 따져 보아도 KBS의 주장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들을 경질하면서 말했던 원칙과 목표와는 동떨어진 방식으로 일을 마무리했으니까요.

스타골든벨에서 김제동을 쫒아내면서 내세웠던 논리는 식상함, 너무 오랜 진행으로 인한 새로운 피의 유입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의 퇴출 이후 MC 자리를 차지했던 사람은 김제동과 함께 이미 진행을 했었던 익숙한 얼굴 지석진이었습니다. 윤도현의 러브레터 역시 그의 새로운 앨범 작업을 위해 배려했다는 해명과 함께 새로이 오래 갈 수 있는 새로운 MC를 찾겠다고 했지만, 그의 뒤를 이었던 이는 진행 경험이 전무 했던 연기자, 이하나였죠. 두 가지 결정 모두 오랜 검토나 긴 흐름에 대한 계획과는 전혀 상관없는 우발적인 선택이자 어쩔 수 없는 타협이었어요.

그 결과는 어땠냐구요? KBS의 대표적인 장수 프로그램이었던 스타골든벨과 러브레터는 후속 MC들의 부진, 시청자들의 외면과 함께 속절없이 몰락했고 그 결과로 KBS는 스타골든벨이 오랜 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방어해왔던 토요일 오후 예능 프로그램의 주도권을 아직까지도 찾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러브레터의 공중분해는 이하나의 페퍼민트가 표류하고 유희열이 고심 끝에 스케치북을 시작하기 전까지 심야 음악방송의 위기를 불러왔었죠. 애초에 유능한 MC, 오랜 전통의 프로그램을 무시했던 결과를 뼈저리게 치룰 수밖에 없었단 거에요.

이런 명백한 결과, 엉망진창 모습을 보여주었던 KBS가 이제 와서 이 모든 하차 결정이 제작진의 자체 판단이었다고 우기는 것은 지금의 정부가 내세우는 적반하장의 변명만큼이나 납득하기 힘든 변명입니다. 비정상이었던 그간의 방송국 운영. 그로인해 보고 싶은 프로그램도 편하게 보지 못하고 수신료 인상만을 주장하는 KBS에 의해 고스란히 피해를 입은 시청자들의 권리에 대한 사과나 반성의 기미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어요. 이 모든 것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투표 한 번 잘못해서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든 시청자, 국민인 우리에게 있습니다. KBS의 비겁한 변명은 따지고 보면 결국 우리가 그들을 그렇게 행동할 수 있도록 허락한 것 때문이라는거죠. 세상이 정상이 아닙니다. 지금의 비정상을 다시 정상으로 바꾸어 놓는 것도 결국은 우리의 몫이구요. 투표근이 근질거리는 요즘입니다.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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