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장영] OTT 시대 후발주자인 애플 TV+(이하 애플)의 존재감이 빛을 발하고 있다. 넷플릭스와 디즈니+, HBO 등 앞서 시장을 지배한 업체들에 비해 애플은 많은 부분 불리한 위치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거대 공룡인 디즈니가 OTT를 어떻게 공략해야 하는지 몰라 좌충우돌하는 것과 달리, 후발주자인 애플은 그들의 정신을 앞세운 전략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최고를 만들겠다는 그 자존심이 콘텐츠 제작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은 국내에 '닥터 브레인'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서비스를 시작했다. 물론, 2020년 한글 자막 서비스를 시작하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이선균 주연의 이 작품을 기점으로 국내에 입성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뒤늦게 경쟁에 뛰어든 애플이 과연 OTT 격전장이 돼가는 한국에서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기도 했다.

Apple TV+ 오리지널 시리즈 'Dr.브레인' (사진제공=Apple TV+)

아마존이 운영하는 프라임 비디오는 거대 시장인 인도와 일본을 위한 작품을 제작하고 서비스한다. 프라임 비디오에서 인도의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한국 콘텐츠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작품에 대한 한글 서비스는 존재하지만 자체 제작을 하지 않는 중요한 이유는 아마존이 한국 시장에서 경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토종 온라인 쇼핑몰에 밀린 아마존으로서는 국내 작품을 제작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다. 거대한 시장에서 돈벌이를 해주는 이들을 위한 서비스 개념으로 작품을 만드는 곳이 아마존이다. 아마존의 주된 사업이 쇼핑몰이라는 점에서 이는 자연스럽다. 애플 역시 크게 다르지 않지만 사업의 차이가 현재의 가치 추구로 이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애플이 내놓은 두 번째 한국 작품인 '파친코'는 2년 정도의 기간이 걸린 대작이다. 8부작으로 만들어졌지만, 시리즈가 추가 제작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원작을 바탕으로 각색된 이야기는 첫 서비스와 함께 평단의 호평이 쏟아졌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평가가 더 후하다. 국내 시청자들의 경우 호불호가 나뉘고 있지만, 해외의 경우 올해 최고의 작품이라는 평가를 내놓을 정도다.

'파친코'는 우리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우리 이야기만은 아니다. 4대에 걸친 한국 이민자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 세계 이민자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이민자들의 삶을 돌아볼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하다.

애플은 넷플릭스의 성공 방식을 따라가는 영민함도 보였다. 이민진 작가 원작이 주는 힘과 자본이 만나면 거대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다양한 형태의 작품으로 승부하는 넷플릭스의 현지화 전략을 일정 부분 따르면서도 선택된 최소한의 작품에 집중하며, 작품의 질을 극대화하는 전략은 통했다.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 영화 <코다> 포스터

애플은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로 OTT 업체가 제작한 작품이 작품상을 받는 파란을 불러왔다. 넷플릭스가 봉준호 감독의 '옥자'로 칸 영화제에 OTT 논쟁을 불러온 후 이렇게 빨리, 기득권 시스템의 주류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파격이라 볼 수밖에 없다.

'파친코'의 완성도는 이미 해외 평론가와 전문가들 사이에 호평으로 검증되었다. 철저한 한국적 소재가 세계인들의 시선을 끌어모을 수 있는 작품이 된다는 것은 향후 한국 작품들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넷플릭스만이 아니라 애플에서도 향후 보다 많은 한국 작품이 제작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언어나 문화의 장벽을 넘어 서구인들이 아시아, 특히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 역시 고무적일 수밖에 없다.

외국에서 태어나 자란 세대들에 의해 만들어진 콘텐츠가 세계화되는 과정은 새로운 가치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는 낯선 스타일이지만, 해외에서는 익숙한 제작 방식에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새로움을 발견하게 한다는 것은 엄청난 성과일 수밖에 없다.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

넷플릭스의 꾸준한 현지화 전략과 함께 다른 거대 OTT에서도 자막의 부담을 덜게 해줬다는 것은 중요하다. '파친코'는 무려 세 개의 언어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한국어와 일본어, 그리고 영어가 기본으로 사용되며 자막에 색깔을 입혀 구분할 정도다.

자막이 보기 싫어 영어권 이외의 작품을 보지 않던 이들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은 이후 수많은 자막 작품이 소비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졌다는 의미다. 봉준호 감독의 '1인치의 장벽' 언급은 그렇게 '오징어 게임'을 통해 실현되었고, '파친코'에 대한 찬사로 이어지며 자막은 더 이상 장벽이 아니게 됐다.

한국 콘텐츠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문화 상품이다. 넷플릭스는 현지화 전략을 통해 유능한 제작인력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양산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디즈니+ 역시 한국 시장에 들어서며 이 전략에 집중하고 있다.

애플의 경우 많은 작품들이 만들어지지 않는 상황에서도 한국 공식 입성과 함께 벌써 두 번째 작품이 나왔다. 이는 한국 작품에 대한 소구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한국에는 입성하지 않았던 HBO MAX 역시 하반기 본격적 서비스를 준비한다는 점에서 한국 콘텐츠는 앞으로 더 많이 만들어져 소통될 것이다.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

애플은 현대물이 아닌, 굴곡진 한국 근현대사를 담은 거대한 이야기에 과감하게 투자하며 넷플릭스와 변별성을 확보했다. 그리고 넷플릭스와 달리, 서구 문화권에 익숙한 방식을 접목함으로써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데도 성공했다.

언어의 장벽만이 아니라, 최근까지 한국을 아시아의 작은 나라 정도로만 생각하던 이들이 한국 문화와 역사까지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는 점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김구 선생은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제 한국 문화가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주는 시대가 되었다. 문화강국을 꿈꾸셨던 김구 선생의 원대한 포부는 이제 이렇게 꽃을 피우고 있는 중이다.

넷플릭스에 이어 디즈니 역시 한국 작품을 스무 편 가깝게 만들겠다고 나섰다. '파친코'의 시즌제 가능성을 제작자가 밝히기도 했다. 이런 한국 문화에 대한 소구는 앞으로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파친코'란 철저하게 한국적인 소재의 이야기에 세계인들이 공감하고, 한국 이민사가 전 세계 이민자들을 위한 헌사가 될 정도로 대표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세계가 한국 문화를 적극 소비하게 된 시대, 우린 우리 문화를 제대로 소비할 준비가 되었는지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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