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오늘날 한국 언론은 19세기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
투명성 원칙이 한국 언론계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 세계일보 1월 17일자 1면 [단독]보도 <윤석열 부부와 친분 있는 무속인, 선거대책 본부에서 고문으로 일하다>는 국민의힘이 이튿날 선거대책본부 산하 네트워크 본부를 전격 해산하는 계기가 됐다.

뒤따라 관련 상황을 보도한 신문 대부분은 정보 출처를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서울신문은 “인사에 개입했다는 한 언론의 보도가 나오면서다. (중략) 보도에 따르면”, 조선일보는 “의혹을 제기한 일부 보도는”, 동아일보는 “관련 보도가 나온지 하루 만에” 등으로 표기하며 정보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관훈저널 2022 봄호>에 실린 기고글 ‘한국 언론의 미개한 관행, 출처 표기 없는 복제 보도’에서 “정간법에 따라 등록된 국내 언론은 2만 2,700여 곳으로 도대체 ‘한 언론’과 ‘일부 언론’이 2만여 언론사 가운데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관련 보도를 인용하며 출처를 명확히 표시한 신문은 경향신문과 한겨레 정도였다.

세계일보 단독 보도를 '일부 보도' 또는 '관련 보도'로 표기한 조선일보, 동아일보 지면

# 2월 6일 연합뉴스는 윤석열 대선 후보 선대본부의 원희룡 정책본부장 인터뷰 기사를 게재했다. 원 본부장은 해당 인터뷰에서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통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여러 신문이 이를 받아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언론 인터뷰에서”(2월 7일 지면기사), 동아일보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2월 7일 지면기사)라고 보도했다. 연합뉴스를 표기한 신문은 중앙일보와 세계일보 정도였다.

안 교수는 “연합뉴스 보도를 베껴 쓰는 관행도 마찬가지로, 이런 행위는 저작권법은 물론 언론사 간 계약 위반”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관행은 법률의 힘을 빌려 바로잡기에 한계가 있다. 저작권법 위반은 친고죄에 해당하기에 신문사가 직접 다른 신문사를 고발해야 하며, 저작권 침해 결정이 나더라도 손해배상액이 소송비용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안 교수는 법률이 아닌 규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표기 없이 다른 언론 보도를 베껴 쓰는 관행은 '직업적 규범'으로 직능 단체가 자율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얘기다. 원래 출처인 언론사를 밝혀 적기만 하면 이같은 관행은 해소된다.

연합뉴스 인터뷰를 '한 언론 인터뷰'로 인용한 동아일보 지면 보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는 '동아일보'라고 표기했다.

안 교수는 한국 언론이 출처 표기를 회피하는 이유에 대해 “잘못인 줄 알면서도 잘못을 저지르는 게 창피하므로 잘못의 증거를 조금이나마 숨기려는 ‘집단 심리’가 배경에 있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단독 보도한 언론사를 자신의 기사에 표기하지 않는 것은 투명성 규범 전반을 소홀하게 여기는 한국 언론의 19세기적 관행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기사를 상품에 비유하자면, 정보 출처 표기는 ‘원산지 및 유통 이력 표기’와 같다”며 “한국 언론이 원산지 및 유통 이력을 한사코 감춘 상품만 진열대에 올려놓는다면 머지않아 손님들이 이를 찾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안 교수는 "상품 기준에 대한 업계의 인식을 전반적으로 바꾸고 제조 공정에 대한 업계의 표준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언론 현업단체에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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