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간담회'를 통해 공수처장 사퇴를 압박하면서 '공수처 흔들기'라는 언론 비판이 이어진다. 공수처의 독립성을 강조한 인수위가 정작 정권 출범 전부터 공수처 독립성을 흔들었다. 공수처 비난에 열을 올려 온 보수언론은 인수위의 부적절한 압박에 발을 맞추고 있다.

30일 인수위 정무사법행정분과 간사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은 공수처 간담회 후 브리핑에서 "김진욱 처장의 거취에 대해 입장 표명을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국민적 여론이 있다고 (공수처에)말했다"고 밝혔다. 김 처장의 자진 사퇴를 압박한 것이다. 김 처장의 남은 임기는 2년이다. 이 의원에 따르면 인수위는 인사청문회 당시 김 처장이 "정치적 중립성·독립성·공정성은 공수처의 생명선"이라고 답변한 것을 지적하며 입장 표명을 거론했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인수위 간사단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브리핑 후 언론에서 '인수위, 공수처장 거취 표명 요구' 등의 언론보도가 이어지자 인수위 대변인실은 "보도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국민적 불신여론을 전달했을 뿐"이라며 "처장에 대한 거취 표명을 요구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31일 한겨레는 사설 <인수위 '공수처장 사퇴' 압박, '정치적 중립' 안중에 없나>에서 "말이 좋아서 '요구'이지, 사실상 사퇴를 압박한 것"이라며 "독립 수사기관인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훼손하는 부적절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정권이 바뀌었다고 임기가 정해진 수사기관의 수장에게 사퇴를 종용하는 행위야말로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허무는 일임을 정말 모르고 한 말인지 한심할 따름"이라며 인수위의 해명에 대해 "무책임한 말장난"이라고 질타했다. 한겨레는 이날 1면과 8면에 각각 <공수처 만난 인수위, 김진욱 처장 사퇴 압박>, <공수처 독립성 강조하더니… 인수위 부적절한 흔들기> 등의 기사를 게재했다.

3월 31일 한겨레 사설, 경향신문 기사 갈무리

같은 날 한국일보는 사설 <인수위의 공수처장 거취 언급, 부적절하다>에서 "인수위가 김진욱 공수처장 거취와 관련해 ‘입장 표명을 해야 한다’는 여론을 전달한 것은 부적절했다"며 "여론 전달이라는 우회적 방식이긴 하지만 법정 임기가 남은 독립기관 수장의 거취를 압박하는 뉘앙스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관련 기사 <인수위, 김진욱 거취 여론 언급에… 여운국 "처장에 전달하겠다">에서 "인수위와 공수처 간담회가 부적절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며 "공수처는 독립기관으로 인수위를 만날 의무가 없고, 고발사주 의혹을 포함해 윤 당선인이 입건된 사건들을 수사 중이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한국일보에 "인수위가 대통령 당선인을 상대로 수사 중인 기관을 만나 여러 우려와 지적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 <공수처장 흔드는 인수위>, 서울신문은 <인수위 “공수처장 거취 표명 여론 있어”… 독립기관장 사퇴압박 논란>이라고 보도했다. 서울신문은 해당 기사에서 인수위가 공수처장의 '거취 표명'을 거론하고 나섰다며 "인수위는 국민적 불신 여론을 전달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권한 없는 인수위가 법률상 독립기관장에게 사퇴를 압박한 모양새가 돼 논란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서울신문은 "공수처는 법률상 독립기관으로 대통령이나 청와대에서 업무에 관여할 수 없다. 이날 날 인수위와의 만남이 업무 보고가 아닌 간담회 형식으로 이뤄진 것도 같은 이유"라며 "또 공수처장의 임기는 법으로 3년이 보장된다"고 짚었다.

서울신문은 앞서 김오수 검찰총장 사퇴를 압박한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사례를 언급하며 "인수위가 공수처장의 사퇴를 거론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수사기관의 독립성·중립성 훼손이 다시 일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공수처법 제3조 2항은 '수사처는 그 권한에 속하는 직무를 독립하여 수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3조 3항은 '대통령, 대통령비서실의 공무원은 수사처의 사무에 관해 업무보고나 자료제출 요구, 지시, 의견제시, 협의, 그 밖에 직무수행에 관여하는 일체의 행위를 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3월 31일 중앙·조선일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간담회 관련 기사 갈무리

그러나 인수위가 공수처 업무보고를 받지 않는 것을 두고 '패싱' 등을 거론해 온 주요 보수언론은 인수위의 공수처장 사퇴 압박 입장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 조선일보 <인수위 "공수처 신뢰 바닥, 처장 거취표명 여론있다">, 중앙일보 <공수처 공개 압박에 나선 인수위 "김진욱, 거취 표명하는게 국민 뜻"> 등이다. 이들 보도에는 인수위가 독립기관의 장을 상대로 거취 표명을 압박해 논란이라는 내용 자체가 없다. 대신 <여운국 차장 "뼈깎는 노력할 것">, <공수처 "앞으로는 조심하겠다"> 등의 부제목을 달아 공수처가 인수위의 입장과 비판을 수용했다는 뉘앙스를 강조했다.

중앙일보는 인수위가 김 처장 거취에 대한 국민적 여론을 언급하자 여운국 공수처 차장이 "처장에게 이런저런 내용들을 보고하고 전달하겠다. 나도 차장으로서 처장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한 책임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중앙일보는 "우리가 국민의 의사를 전달한 것이다. 거취를 압박한 건 아니다"라는 인수위 관계자 해명을 덧붙였다. 조선일보 역시 같은 내용의 여 차장 답변을 보도했다.

반면 보수언론으로 분류되는 동아일보는 관련 기사에서 "공수처법상 김 처장의 임기는 2024년 1월까지"라며 "독립기관의 장인 김 처장의 거취 표명을 압박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자 이 의원은 다시 브리핑에 나서 진화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공수처 수사 대상이다. 공수처는 고발사주, 판사사찰, 옵티머스 펀드 부실수사, 신천지 압수수색 방해, 부산저축은행 부실수사, 허위 부동시 등의 의혹이 제기된 윤 당선자를 입건했다. 다만 윤 당선자는 대통령에 취임하면 헌법에 따라 내란·외환의 죄를 범하지 않고서는 재직 중 형사소추를 받지 않는다.

또 윤 당선자는 수사기관인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하겠다며 법무부 장관 '수사지휘권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윤 당선자가 정작 법률상 독립적 수사기관으로서 자신을 수사하고 있는 기관을 흔들어 공약과 배치되는 행보를 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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