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장영]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OTT의 격전지였다. 작품상을 두고 넷플릭스의 <파워 오브 도그>와 애플 TV+의 <코다>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이는 영화 시장이 대격변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의미로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밖에 없다.

오랜 기간 대중의 유희의 도구이자 누군가에게는 삶 자체가 되었던 영화는 극장이라는 틀을 통해 향유됐다. 뤼미에르 형제는 기차가 들어오는 것과 공장 노동자들의 출근 모습을 담은 영상을 카페에서 틀면서 현재의 영화와 극장이란 틀을 만들어냈다.

이 방식은 시대가 흐르며 더욱 정교해지고 다양해졌으며 거대해졌다. TV가 등장하니 극장은 컬러 영화를 만들어냈고, 컬러 TV가 등장하자 거대한 규모와 최첨단 음향 시스템 등 TV로 채울 수 없는 규모의 힘으로 극장은 위협자들을 물리쳤다.

뤼미에르가 극장의 시작을 알렸다면, 에디슨은 개인기기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에디슨은 영화를 개인이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전파하려 했다. 핍쇼라고 불리는 눈을 가져가 야한 그림들을 보는 만화경으로 돈벌이에 급급했던 에디슨은 뤼미에르와 달리, 성공하지 못했다.

에디슨이 의도한 돈벌이 방법은 이제 현실이 되었다. OTT가 확대되며 극장이 아닌 집에서 영화를 보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과거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극장을 꼭 찾아야만 했고, 상영 시기를 놓친 이들은 오랜 시간 기다림을 선물로 받아야 했다.

비디오 렌탈 사업은 이 기다림을 조금은 줄여줬다. 이전에는 TV '주말의 명화'나 '명화 극장'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서 영화를 볼 수 있던 시대도 존재했으니 말이다. 비디오는 극장과 TV 사이의 그 어느 지점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줬다.

27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4회 오스카 시상식에서 영화 '코다'의 출연 배우들과 제작진이 무대에 올라 최우수 작품상을 받고 있다. (할리우드 AFP=연합뉴스)

세계 최대 OTT 업체인 넷플릭스가 비디오 렌털 사업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흐름은 보다 명확해진다. 극장과 TV 사이 경계를 허물기 위해 그들은 판 자체를 뒤집는 방식을 택했다. 인터넷으로 세계는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 변화된 시대 효과적인 서비스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OTT는 그렇게 세상의 지배자가 되어가고 있다.

OTT 서비스는 미국이라는 나라이기에 가능한 서비스 중 하나였다. 이런 서비스 이전에 스포츠 채널이 일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적용하고 확대하기에 용이했을 듯하다.

94회 아카데미시상식은 OTT 전성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자본이 이곳으로 집중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코다>, <파워 오브 도그>, <킹 리차드>, <듄>, <엔칸토> 등이 주요상을 휩쓸었고, 이들은 모두 OTT 업체가 제작해 서비스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미국 시장을 지배한 OTT 사업자들의 움직임은 더욱 강력해질 수밖에 없다. 이미 미디어 공룡이 된 그들은 영화사들을 자신 소유로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넷플릭스, 디즈니+, 애플TV+, HBO, 프라임 비디오 등 메이저 OTT들은 시장 장악을 위해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 붓고 있다.

해외 OTT (PG) (이미지=연합뉴스)

극장사업이 아닌, 집에서 손쉽게 볼 수 있는 OTT에 천문학적 돈이 몰리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팬데믹은 이런 시장 변화를 가속화했다. 감염병 확산이란 불안하고 불행한 현실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게 극장은 두려운 공간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극장에 대한 추억이 많은 이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굳이 극장을 갈 이유가 있는지 의문을 품게 되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시대가 변하며 극장에 대한 추억 역시 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멀티플렉스는 편의성과 안락함을 줬지만, 추억은 제거되었다. 이런 극장의 위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었다.

2003년 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은 당시에도 극장에 대한 아련함을 선사하며 감동을 주기도 했다. 토토와 알플레도 아저씨의 우정과 추억을 담은 1988년 작 <시네마 천국>은 보다 명료하게 극장의 역사를 담아냈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다가온다. 토토가 살던 작은 마을 극장에 대한 추억은 과거가 되고, 그렇게 사멸해 가는 극장의 운명은 당시에는 영화적 소재였지만 이제는 현실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실제 멀티플렉스가 공룡이 되며 단관 극장들이 사라졌다. 하지만 효율성만을 추구한 멀티플렉스엔 한계가 있었다. 아이맥스 등 거대함과 신기한 체험이 가능한 극장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모두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 <시네마 천국> 스틸 이미지

멀티플렉스보다 집 소파에서 TV로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더 편안해진 시대는 거대화되는 TV로 인해 보다 효과적으로 대체되고 있다. 프로젝트 역시 과거 고가의 거대한 형태가 아닌, 한손으로 들고 다녀도 될 정도로 콤팩트하게 생산돼 어디서나 자신만의 극장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휴대용 프로젝트와 휴대폰만 있으면 어디든 그곳이 극장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OTT의 급속한 확대는 그렇게 극장이라는 거대한 공간을 해체시키고 있다. 팬데믹은 이런 해체를 보다 가속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극장의 위기는 생각보다 더 빨리 오고 있는 느낌이다.

국내에서는 CGV가 당장 4월부터 주중 관람료를 14,000원으로 올린다. 이는 OTT 한달 서비스 비용으로 소비자들은 이를 극장에서 사용하며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따지게 된다는 의미다. 흑백과 컬러 대결과 크기의 차이로 극장의 우월함을 증명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 거대한 네트워크를 만들고 영화사마저 지배한 공룡 OTT 업체들의 등장으로 극장 사업은 사양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거대한 공간과 고정적인 유지 비용이 요구되는 극장이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 돈 먹는 하마가 더는 효율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이는 사멸의 길로 간다는 의미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기존 영화 시스템을 지지하는 이들과 새로운 시대의 충돌이었다. 넷플릭스는 국내 시장 입성을 위해 봉준호 감독을 선택했고, 이는 칸 영화제와 마찰로 이어졌다. 극장 업자들이 OTT에서 만든 영화에 대해 지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카데미는 OTT 작품들에 주요상들을 몰아주며 다른 선택을 했다. 뤼미에르와 에디슨의 차이만큼 유럽과 미국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의미다.

2020년 3월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경영난 심화로 영업 중단에 들어갔던 CGV 명동점 Ⓒ연합뉴스

영화는 영원할 것이다. 영화잡지 <키노> 편집장으로 시네필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던 정성일 평론가는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란 책으로 영화에 대한 애정을 설파했었다. 세상이 영화인지, 영화가 세상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렇게 되었다. 경계는 모호하고 그런 모호성은 이를 더욱 유용하게 만들고 있다.

영화는 존재하지만 극장은 다르다. 극장은 어쩌면 유물처럼 변해갈 가능성도 높아졌다. 100인치 TV와 그 이상의 프로젝트가 일상이 되어가면 굳이 극장을 찾을 이유가 없다. 편안하게 집에서 OTT를 통해 바로 영화를 감상하는 시대에 굳이 한 달 사용료에 준하는 관람료를 내고 극장을 찾을 이유가 있을까?

OTT가 새로운 수익원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메이저 회사들은 영화사까지 인수하며 규모를 키우고 있다. 한 지역, 한 국가가 아닌 전 세계를 상대로 사업이 가능한 OTT는 많은 한계를 가진 극장을 무기력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수많은 추억을 만들어준 극장을 멀티플렉스가 밀어내 고사시키더니, 이제는 OTT가 거대한 멀티플렉스를 밀어내려 하고 있다. 영화제는 그저 하나의 지역 축제가 되어가고 과거의 영화광들이 더는 존재하지 않는 시대, 영화는 새로운 생존을 모색하고 있고 극장은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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