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은 노예 출신 김준의 기적적인 출세를 그린 입지전적 드라마다. 게다가 고려의 항몽시기와 겹치고 있어 고려 무인들의 애국충절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정통사극을 표방했다고 해도 드라마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랑 그것도 파란만장한 사랑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당대의 최고 권력자의 딸 송이의 비뚤어진 사랑과 집착에 의해 비극적인 결말이 예고되고 있다.

헌데 그런 스토리 라인과 달리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조선과는 사뭇 다른 여인들의 애정관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조선하면 성리학의 영향으로 여성들이 대단히 정숙하고, 수동적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적어도 중기 이후의 모습이다. 조선 초기만 해도 고려의 영향으로 여성들은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인 애정관을 갖고 있었다는데, 그 흔적을 무신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 흥미롭다.

이를 통해서 조선시대에 남녀상열지사라 하여 배척받았던 고려가요 쌍화점의 배경을 적잖이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쌍화점에 대해 ‘당대의 퇴폐적이고 문란한 성윤리’를 그렸다고 평가하지만 그 분위기를 현대에 와서 짐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무신을 보면 틈틈이 조선과 다른 성풍속도를 짐작케 하는 장면들이 등장하곤 한다. 곧바로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은 기생의 복색이다. 시대가 고려이기 때문에 기생이라 불러서는 안 되겠지만 편의상 기생이라 한다. 이 기생들은 주로 최우의 서출인 만전, 만종이 등장할 때 나온다. 헌데 좀 주의 깊게 기생들의 복색을 보면 조선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

무엇보다 기생들의 옷이 가슴골이 드러날 정도로 깊이 파였다. 몇 겹의 옷으로 꽁꽁 감추기만 했던 조선의 기생들과는 많이 다르다. 기생이니 당연하다고 무심코 지나치기 십상인 것이지만 사실 보기에 따라서는 파격적인 의상이다. 고려의 복색은 전해지는 유물이 많지 않아서 고증이 쉽지 않기 때문에 무신에 등장하는 기생의 파격적인 노출은 다분히 상상에 의한 설정일 가능성이 높다.

그 상상의 근거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조선과 구별되는 고려의 성문화가 아닐까 싶다. 바로 쌍화점으로 대표되는 파격적인 성윤리가 그렇다. 지금으로 봐도 깜짝 놀랄 정도로 과감한 연애인데, 당대의 최고 유행가였던 쌍화점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고려의 남녀관계는 현대인도 따라가지 못할 자유연애를 즐겼던 것은 아닐까 짐작할 수 있다.

왕조실록 등 기록이 방대하게 전해지는 조선과 달리 고려에 대해서는 참고할 기록이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당대의 문화에 대해서는 부족한 기록에 기반을 둔 작가적 상상력이 발휘되어야 한다. 기생의 지나치게 많이 패인 앞섶은 그런 면에서 의외의 디테일이었다. 물론 여염의 복색은 좀 달랐겠지만 그래도 여인의 옷매무새는 당대의 성문화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는 점에서 주의 깊게 볼 필요도 있을 것이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형제의 난이 숨 가쁘게 진행되는 와중의 좀 엉뚱한 발견이었지만 부족한 고려사에 대한 갈증의 일단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단역에 불과한 기생의 옷에 의미를 둔다는 것은 앞으로 무신 제작진이 격구에 투자했던 것만큼은 아닐지라도 조선과 크게 다른 고려의 문화적 특징들을 시청자에게 보여주기를 바란다는 의미도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쉬움도 있다. 기생의 파격 의상 말고도 무신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비뚤어지긴 했어도 최소한 적극적인 애정관을 갖고 있다. 그런 성격을 설명하기에 그녀들의 의상은 너무 좀 얌전하다는 인상도 있다. 또한 무인들이 주된 인물이기는 하지만 그에 비해 여인들의 의상에는 투자가 좀 빈약하다는 느낌도 있다.

고려의 무인정권과 비슷한 일본의 막부와 비교해본다면 그 초라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다. 막부의 오오쿠를 그린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의상은 화려함 그 자체이다. 그것은 쇼군의 정실과 측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오오쿠만큼은 아니어도 도방의 내실 분위기가 너무 초라한 것은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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