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을 결국 결정해버렸다. 반응이 별로 좋지는 않은 것 같다. 충분한 국민적 의견 수렴이 되지 않은 데다 당사자인 국방부 내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오고, 안보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안보 문제나 군심(軍心)에 나름대로 민감한 조선일보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윤석열 당선인의 공약은 ‘광화문 시대’였다. 물론 실현되기는 어려울 걸로 봤다. 그래서 ‘광화문 시대’가 ‘용산 시대’로 바뀌었다는 것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충분한 검토가 있었는가를 따져볼 필요는 있다.

윤석열 당선인이 ‘광화문 시대’를 말할 때는 분명 충분한 검토를 거쳤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와서는 “시민들에게 거의 재앙 수준”이라고 한다. 뒤늦게야 문제점을 파악한 것은 당연히 문제다. 공약 사항에 대해서도 그랬을진대 과연 ‘용산 시대’는 ‘광화문 시대’보다 얼마나 더 진지한 검토를 거쳤는지 의문이 남는 건 당연하다.

일반 국민 입장에서 ‘용산 시대’의 가능성을 처음 접한 것은 경향신문 15일자 지면에 실린 <청와대는 국방부로 가야···"'용의 땅’ 대통령 시대”>란 칼럼을 통해서다. 이전까지 대통령 집무실의 국방부 이전은 공식적으로 거론된 바 없다. 이러다보니 해당 칼럼을 쓴 기자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은 김용현 전 합참 작전본부장이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을 주도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는데, 당사자들은 부인하고 있다.

어쨌든 이 칼럼이 나온 시점을 기준으로 봐도 ‘용산 시대’가 본격적으로 검토된 것은 일주일이 채 안 되는 기간에 불과한 셈이다. 물론 윤석열 당선인은 공약을 만들 때부터 고려했던 안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이전까지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의 안보적 측면과 함께 비용 문제도 거론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용산 시대’로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크게 나눠 세 가지 정도의 목표를 언급하고 있다. 첫째는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동이 떨어져 있는 현재 청와대 구조로는 효율적인 의사소통과 업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청와대의 구조를 바꾸면 얼마든지 해결 가능한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비서동인 여민관의 집무실을 이용해 ‘본관과 비서동이 떨어져 있다’는 문제는 일단 해결을 한 상태이다.

둘째는 민관합동위 등의 형태로 민간 전문가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구조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역시 대통령이 의지를 가지면 현재의 청와대 구조에서도 얼마든지 실현할 수 있는 과제이다. 민간 전문가들이 지금껏 청와대가 너무 멀거나 경비가 너무 삼엄해서 접근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통치 구조의 문제이지 공간의 문제는 아니란 얘기다.

셋째는 일반 시민들과의 접점을 넓히겠다는 거다. 시민들이 대통령 집무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폐쇄적인 통치관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는 게 윤석열 당선인의 생각이다. 그런데 현재의 국방부도 시민친화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구조변경은 필수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미군이 반환한 부지를 개발해 용산공원을 조성하면 시민들과의 자연스러운 스킨십 강화를 모색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용산공원은 2027년 완공 목표이고 이마저도 미군이 부지 반환을 예정대로 할 때를 전제로 한다. 전문가들은 용산공원의 완공은 윤석열 당선인 임기가 끝나야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 물론 부지가 반환되는 대로 순차적으로 공원 조성을 해나가겠다는 것이겠지만, 이게 시민들과의 접점 강화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일 수밖에 없다는 거다.

결국 윤석열 당선인이 제시하는 목표 달성을 위해 반드시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들이 청와대를 나오고 싶어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남는 것은 다소 밀어 붙이기 식으로 집무실 이전을 결정했더라도 이후 통치 과정에서 애초 목표했던 바를 달성하느냐의 여부이다. 실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용산 시대’를 연 것은 논란에도 불구 잘한 결정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앞서 확인한 대로 ‘용산 시대’가 애초에 의도한 목표를 자동으로 달성해주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면, 어떤 것에 중점을 둬야 할까? 결국 이견을 포용하고 잘못 판단한 것은 인정하며 뒤에 숨지 않고 정치의 전면에 나서는 대통령의 리더십이 필요한 것이다. ‘용산 시대’는 이런 리더십을 구현하기 위한 도구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거다.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들의 모습에서 이러한 면을 볼 수 없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이 비대했기 때문이다. 권한이 너무 크니 한 번 움직일 때의 파장을 관리하기가 어려웠던 거다. 때문에 ‘용산 시대’의 성공은 필연적으로 대통령 권한의 약화와 협치의 필요성을 요구한다. 이건 단지 ‘과거 회귀’로만은 달성할 수 없는 목표이다. 그러잖아도 인수위 구성에 대해 ‘서오남’ 편중이라는 지적과 ‘이명박근혜 출신 인사와 호남권 올드보이들의 만남’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는데, 썩 좋은 시작이라고 말할 수 없다. 나머지 반을 어떻게 채울지, 협치는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보여주는 게 앞으로의 과제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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