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아버지가 살인사건의 공범인 것을 알게 된 장일은 진실이 두려워져 선우를 말리는 것이 해결이라고 생각했다. 거기까지는 아마도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장일은 거기서 한 발 아니 아주 멀리까지 가버렸다. 친구를 죽인 것이다. 카인과 아벨의 살인같은 끔찍한 일이었다.

진실을 밝히기에 장일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너무도 컸다. 진실은 잃을 것이 많지 않은 사람들의 몫이다. 장일은 아직 가진 것은 없지만 앞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주 많다고 믿고 있어, 그 미래를 위해 유일한 친구 선우를 차가운 바닷물 속에 던져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나 물에 빠진 선우는 죽지 않았다. 깊은 바닷물에 가라앉으면서 친한 친구의 배신이 슬퍼 눈물이라도 흘리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이미 충분히 외로워진 선우로서는 친구의 배신에 분노보다는 고독이 더 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죽어가는 순간은 누구나 외로울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물속으로 가라앉는 선우의 표정은 분노보다 더 뜨겁게 시청자의 가슴을 끌어당겼다.

그 순간 흘러나온 임재범의 <운명의 끈>은 너무도 적절해서 전율이 느껴졌다. 비장하고 슬픈 영혼의 노래는 가슴에 낙인처럼 파고들었다.

욕망1. 살인의 유전

선우의 죽음은 너무도 잔인하다. 선우에게 그런 것보다 시청자에게 더 그렇다. 드라마라는 것이 일상적일 수는 없겠지만 선우는 자기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친구에게 살인을 당하게 했다. 물론 죽은 것은 아니지만 죽은 목숨보다 더 처절하고 비참한 것이 선우의 입장이다.

그러나 묘하게 장일도 피해자이다. 아버지가 정직했다면, 장일은 친구를 죽일 지경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다. 장일이 선우를 죽이려고까지 한 데는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과 함께 평생 자기만을 위해 굽실거리고 사는 아버지에 대한 연민 또한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장차 법관이 되겠다는 장일이 살인사건의 진실을 덮은 것도 모자라 친구마저 살해한 행위를 용서할 수는 없지만 더 크게 본다면 진노식 회장의 돈과 권력이 강요한 대리살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해서 장일은 살인범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일 수도 있다. 진실과 우정을 다 버렸지만 장일은 그때부터 양심의 감옥에 갇히고 만 것이다.

욕망2. 욕망으로 죄를 덮는 또 다른 살인

장일은 지독히도 통속적인 처세를 갖고 있다. 교정에서 처음 수미를 봤을 때만 해도 금방 사랑에 빠져버릴 것 같았지만 수미 아버지의 직업이 박수무당인 것을 알고는 곧바로 마음을 돌릴 정도로 차가운 심장을 가지고 있다.

시골 미용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서울까지 머리를 하러 기차를 탔다가 우연히 장일과 같은 자리에 앉게 됐지만 장일은 그런 수미를 스토커쯤으로 취급한다. 게다가 기차역에서 소매치기를 당해서 돈을 빌려달라는 수미에게 모욕까지 안겨주었다.

그런 장일이 이미 수미의 마음 너무 깊은 곳까지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수미 아버지가 장일 아버지에게 돈을 요구하는 편지를 발견하고는 수미 역시 진실을 밝히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한 또 다른 계획을 머릿속에 담고 있었다.

선우가 장일과 친해진 것도 그랬듯이 수미에게 선우는 고마운 친구였다. 무당딸이라는 이유로 모두가 기피하는 수미에게 유일하게 말을 걸어주는 따뜻한 아이였다. 그러나 수미는 장일의 약점을 통해서 자신의 욕망의 포로가 되고 만다. 그래서 장일과 수미는 다른 듯 같다.

선우는 곧바로 깨어나거나 죽지 않고 15년이나 지난 뒤에 갑자기 눈을 뜨게 된다. 선우를 공소시효가 끝난 뒤 깨어나게 한 설정에는 작가의 더 잔인한 의도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선우가 병상에서 식물처럼 15년을 보내는 동안 장일을 비롯해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선한 듯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위선이다. 그 위선에 선우의 부활은 평범한 복수가 아닌 심판의 의미가 될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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