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간 LG는 ‘주장 징크스’에 시달렸습니다. 주장을 맡아 팀을 이끌어야 할 선수들의 개인 성적이 하나같이 저조했으며 팀 또한 동반 부진에 빠진 것입니다.

2007년 김재박 감독의 취임과 함께 LG의 주장으로 임명된 것은 이종열입니다. 장충고를 졸업하고 1991년 LG에 입단한 뒤 17년 만에 주장이 된 것입니다. 이종열은 121경기에 출장해 주장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타율 0.285 111안타로 상위 타선에서 활약해 커리어 하이였던 1999년에 버금가는 좋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2007년이 투고타저 시즌이었으며 이종열의 포지션이 2루수였음을 감안하면 훌륭한 기록이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2년 연속 주장을 맡은 2008년 이종열은 타율이 0.232로 추락했고 출전 경기 수도 81경기로 감소했습니다. 30대 중반을 넘어서며 나이를 이기지 못한 것입니다. 주장 이종열의 개인 성적과 LG의 팀 성적이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다고는 볼 수 없지만 2007년 이종열이 맹활약할 때 시즌 막판까지 4강 싸움을 하며 5위를 기록했던 LG의 시즌 성적은 이종열이 부진했던 2008년 최하위로 추락했습니다. LG의 ‘주장 징크스’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종열은 2009년 12경기에만 출장한 뒤 은퇴했습니다.

2009년 LG의 새로운 주장으로 임명된 것은 조인성입니다. 주전 포수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인 조인성이 주장으로 적합하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조인성은 2009년 0.214의 타율로 데뷔 이후 최악의 타율을 기록했습니다. 득점권 기회에서 조인성의 방망이는 헛돌거나 타구를 내야 높이 퍼 올릴 뿐이었습니다.

조인성에게는 시련의 해였습니다. 95경기에 출장하며 2006년 이후 유일하게 두 자릿수 경기에만 출장했는데 2009년 8월 6일 잠실 KIA전에서 심수창과 언쟁을 벌여 2군으로 강등되는 징계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조인성은 2군 강등 이후 시즌 종료까지 1군에 올라오지 못했고 LG는 7위에 그쳤으며 김재박 감독은 재계약에 실패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주장이라는 짐을 내려놓은 뒤 2010년 조인성은 3할 타율(0.317)과 100타점(107타점) 고지를 넘어서며 생애 첫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는 점입니다. ‘주장 징크스’에서 조인성도 자유롭지 못했던 것입니다.

2010년 박종훈 감독의 취임과 함께 임명된 주장은 박용택입니다. 2009년 0.372의 놀라운 타율로 타격왕에 등극한 박용택의 주장 선임은 당연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타격에 눈을 뜬 박용택이 2년 연속 타격왕에 오를 것이라는 기대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박용택은 시즌 내내 부진하다 3할 타율에 간신히 턱걸이하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LG는 6위에 그쳤습니다.

2011년 박용택은 2년 연속 주장을 맡으며 홈런 타자로 변신해 4번 타순에 고정 배치될 것이라 예고되었습니다. 시즌 초반 박용택은 홈런을 양산하며 변신에 성공하는 듯했고 LG는 6월까지 상위권을 유지해 드디어 꿈에 그리던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무리한 체중 불리기의 부작용으로 햄스트링 이상이 찾아온 박용택은 부진에 빠졌고 LG 역시 추락을 거듭한 끝에 9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 실패라는 불명예 신기록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2년 연속 6위에 머문 박종훈 감독은 자진 사퇴 형식으로 팀을 떠났습니다.

▲ 이병규 ⓒ연합뉴스
2012 시즌을 앞두고 임명된 김기태 감독은 새로 지휘봉을 잡으며 선수들은 물론 코칭스태프와 프런트까지 참여하는 것으로 선출 방식을 바꾼 끝에 이병규가 주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2차 드래프트를 통해 돌아온 최동수와 플레잉 코치로 복귀한 류택현을 제외하면 이병규는 팀내 최고참 선수입니다. 1980년대에 태어난 선수들이 다수인 올 시즌 8개 구단 주장 중 1974년 생 이병규는 최고령입니다. 보다 젊은 선수가 주장을 맡아야 하지만 LG의 어려운 팀 사정상 이병규가 총대를 멘 것입니다.

주장은 매일 같이 출장할 수 있는 야수들 중에서 주로 선택되며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의 가교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팀 분위기 전체를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장의 성적이 부진하면 동료들에게 따끔한 충고를 하기도 어려우며 팀 분위기를 견인하기도 어렵습니다.

2008년 이후 LG의 주장들은 하나같이 예년만 못한 부진에서 허우적거렸으며 LG 역시 저조한 성적을 면치 못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LG가 항상 단결이 되지 않는 ‘모래알 팀’으로 인식된 것에는 ‘주장 징크스’의 탓도 없지 않습니다. 마흔을 바라보는 이병규가 주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그 어느 해보다 이탈 선수가 많아 전력이 약화된 LG 선수단을 단결시키며 개인적으로도 ‘주장 징크스’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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