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컬링은 우리에게 '이색 스포츠'로 인식돼 왔습니다. 빗자루질을 하면서 돌(스톤)을 굴리는 모습 자체가 독특하면서도 생소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보다는 엘리트 스포츠로 국내에 저변이 넓지 않다보니 경기 방식이나 모든 것이 그저 '다른 나라 스포츠'로 인식돼 왔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우리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했던 스포츠이기도 했습니다. 집중력, 정확도를 많이 요하는 것으로는 양궁과 비슷하고, 개인 기술보다는 팀워크가 더욱 요구돼 단체 종목에 강한 한국에게 좋은 계기를 가져다 줄 종목으로 예상돼 왔습니다. 여기에다 생활 스포츠로도 조금씩 보급되면서 컬링에 대한 인식도 점점 좋아졌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세계 정상권에 도전장을 던지려 했던 스포츠가 바로 컬링이었습니다.

기대가 컸던 바로 그 컬링에서 마침내 좋은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세계 여자 컬링 선수권에서 한국 여자팀이 세계 강호들을 잇따라 물리치고 4강에 오른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심지어 선수들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기에 그 성과는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기적'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기적은 그만큼 힘겨운 연습, 척박한 환경을 모두 이겨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런 만큼 이들이 낸 성과 가치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 강릉실내빙상장에서 열린 '2009 강릉세계여자컬링선수권대회'에 참가한 한국 선수들이 스위스 선수들과 경기를 펼치고 있다.(연합뉴스 자료사진)
그저 대단한 여자 컬링의 기적

성적만 봐도 한국 여자 컬링은 큰 박수를 받을 만했습니다. 세계 1위인 스웨덴을 이기는 파란을 일으킨 것을 시작으로 이탈리아, 스코틀랜드, 미국 등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이기기 힘들었던 팀들을 차례로 꺾었습니다. 여기에 아시아 최강이자 2009년 세계선수권 우승팀이었던 중국에게마저 이기면서 한국은 기적이 아닌 실력으로 상대를 연달아 제압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러시아를 꺾으면서 한국은 사상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며 당초 목표했던 것 이상의 성과를 내는데 성공했습니다. 2002년 9전 전패를 당했던 것을 생각하면 10년 동안 몇 걸음을 진보한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좋은 성적도 눈부시지만 정말 어려운 환경 속에서 피나는 노력, 연습을 통해 이룬 쾌거였기에 그 값어치는 더욱 대단했습니다. 이 대회를 준비하면서 훈련 장소도 마땅하지 않고, 잠도 모텔에서 해결해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그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캐나다 현지에 들어가서도 선수들은 햄버거로 끼니를 때웠고, 한인 민박집에서 훈련장을 오가면서 연습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목표를 위해 땀을 흘렸고 묵묵히 훈련에 매진했습니다. 세계선수권을 넘어 오직 올림픽에 나서겠다는 그 꿈 하나에 선수들은 이를 악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의지는 경기에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세계 최강을 무너뜨렸고, 아시아 최강도 이겨냈습니다. 한국 팀이 써내려간 기적에 현지 팬들이 한국을 열렬히 응원하기 시작했고, 주목했습니다. 아직 대회가 전부 끝나지는 않아도 적어도 이번 세계선수권의 주인공은 한국 여자 컬링 팀이었습니다.

김연아, 스키점프, 봅슬레이에 이은 또 하나의 기적

한국 여자 컬링의 기적은 우리 아마추어 스포츠들이 자주 써냈던 여러 가지 기적들의 계보를 이을 만한 쾌거입니다. 겨울 스포츠에서만 봐도 한국 스포츠가 쓴 기적은 엄청났습니다.

몇십 년이 지나야 나올까 말까 했던 피겨 스케이팅에서는 김연아라는 '피겨 여왕'이 등장하면서 피겨 역사를 다시 써내려갔습니다. 또 동계 유니버시아드에서 1위를 차지한 스키점프의 기적은 영화 국가대표로 소개돼 화제가 됐습니다. 썰매가 없어 남의 나라 썰매를 빌려 타는 악조건 속에서도 세계 대회에 입상한 봅슬레이의 기적은 지난 밴쿠버 동계올림픽 전부터 크게 주목받았습니다. 그 뒤를 이어 여자 컬링이 또 하나의 큰 성과를 내면서 한국 겨울 스포츠의 또 다른 꿈, 희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의 특성상 겨울 스포츠가 크게 두각을 나타내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실외 스포츠 같은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고, 실내 스포츠 역시 어느 정도 좋은 성적을 내는 스케이팅조차 선수가 줄고 팀이 줄어들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만큼 환경도 많이 척박하고, 운동에 전념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꾸준하게 새로운 종목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보면 환경을 이겨내고 뭔가를 이뤄내서 꿈을 이루겠다는 의지가 이뤄낸 성과라는 것밖에 달리 평가할 것이 없습니다. 기존에 한국 스포츠가 갖고 있는 투혼 뿐 아니라 세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자신감, 패기가 더해지면서 이제는 어떤 종목에서도 못할 것이 없는 한국 스포츠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래가 더 중요, 그래도 희망은 충분히 있다

물론 앞으로가 여자 컬링은 더 중요합니다. 이번이 반짝이 아니라 이번을 계기로 더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도 꾸준한 성장은 분명 한국 컬링에 큰 힘이 됐습니다. 한국은 지난 2009년 강원도 강릉에서 세계 컬링 선수권을 유치한 것을 계기로 컬링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높여왔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이번 여자팀의 선전을 계기로 한층 더 양질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을 얻었습니다. 장기적으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메달권을 기대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가능성은 높습니다.

이번 세계선수권에서의 여자 팀 선전은 어쨌든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주 흐뭇하게 했습니다. 아직 경기가 남아 있는 가운데서 기왕이면 결승 무대까지 진출하는 모습으로, 세계를 그야말로 더욱 깜짝 놀라게 하는 한국 여자 컬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선전을 계기로 한국 컬링 뿐 아니라 다른 동계 스포츠의 성장, 발전에도 좋은 계기로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대학생 스포츠 블로거입니다. 블로그 http://blog.daum.net/hallo-jihan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스포츠를 너무 좋아하고, 글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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