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코로나19 확진자 및 격리자들의 사전투표를 둘러싼 논란은 황당하다. 논란이 뻔한 방법을 일부러 고수한 선관위의 태도는 과연 독립기관의 격에 맞는 수준인지 의문이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완벽한 준비를 하기보다는 일단 안이한 수준에서 계획을 세우고, 실행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떔질??처방으로 일관하는 태도는 한국 관료 시스템의 고질적 문제이다.

이번 대선은 모든 걸 확신할 수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윤석열 안철수 두 후보 간의 단일화 효과도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길에 들어섰다. 국민의힘 소속 인사들도 단일화에 의한 시너지 효과 자체는 크지 않다고 진단한다. 이미 정권교체 여론 동조층의 윤석열 후보로의 쏠림이 있었던 데다 단일화 과정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재명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은 오히려 자신들로의 결집이 이뤄질 수 있다며 희망을 걸고 있는데, 그걸 감안하더라도 공표 금지 기간 직전까지의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볼 때 이재명 후보가 밀리는 상황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재명 후보 측 주장대로 ‘단일화 역풍’이 일어나더라도 승부는 여전히 종이 한 장 차이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 사전투표와 관련한 논란은 대선 결과 불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제다. 본투표일에는 논란이 없도록 조치하겠다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담을 수도 없다. 유권자들이 현명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대선 후보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거의 모든 주장을 음모론의 형식으로 내놓고 있는 윤석열 후보의 반응은 부적절하다. 윤석열 후보는 이번 사태를 사전투표에 불신을 갖고 있는 보수층에 대한 분열책으로 규정했다. 다시 말하자면 선관위가 일부러 그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허술한 음모가 있을 수 있겠는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윤석열 후보가 뭘 우려하는지는 알겠다. 선거 전체를 부정선거로 보고 투표를 포기하는 보수 유권자층이 있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우려는 ‘압도적 표차로 이겨야 논란에도 승리를 확정지을 수 있다’는 논리만 제기하면 될 일이다. 오히려 이 사태의 배경에 어떤 음모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 자체가 부정선거에 대한 우려를 키울 거라는 점에서 윤석열 후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발언이다.

제20대 대통령선거 사전 투표 이틀째인 5일 오후 부산 수영구 팔도시장 내 수영동 사전투표소에서 확진·격리자들이 외부에 마련된 임시 투표소에서 사전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후보의 음모론은 고질적이다. 윤석열 후보는 유세 현장에서 이 정권이 부동산 정책에 실패한 이유를 일부러 집값을 올려 유권자들이 집 주인이 돼 보수화되는 걸 막으려 했기 떄문이라고 주장한다. 이 같은 주장은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쓴 <부동산은 끝났다>란 제목의 책에 나오는, 부동산 정책이 현실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는 내용의 일부분을 악의적으로 부풀린 것이다. 오히려 그 책의 전체 주장은 자가 보유의 능력이 되는 사람들에게는 장기저리대출을 해 부담을 줄여줘야 하지만 집을 애초에 사기 어려운 사람에 대한 대책도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공공임대주택 확대는 한계가 있으니 민간임대시장을 근대화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하고, 따라서 다주택자의 존재를 인정해야 하며, 대신 양도소득세 중과 등은 포기하더라도 임대사업자 등록과 임대소득세 납부 유도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실제 이런 주장이 이 정권의 부동산 정책에 그대로 관철됐는지 여부는 별개로 따져보더라도 이걸 갖고 ‘일부러 집값을 올렸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윤석열 후보는 “민주당 정권이 강성노조를 전위대 삼아 못된 짓을 다 하는데 그 첨병 중 첨병이 언론노조”라면서 느닷없이 주장하기도 했는데, 이 주장은 <뉴스타파>의 6일 보도와 관련이 있는 게 아닌지 의심된다. 해당 보도는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가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과의 대화에서 부산저축은행 수사 당시 박영수 전 특검을 통해 윤석열 당시 검사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는 내용이다.

물론 김만배 씨의 주장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 검증이 필요하다. 그런데 선거 전에 사실관계를 밝히긴 어렵기 때문에 각자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얘기 이상이 되지 못할 것이다. 이재명 후보 지지층에게는 지지를 망설일 이유를 더는 제한적 효과는 있겠지만 선거에 큰 영향없는 얘기라는 뜻이다. 그러나 문제는 보도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이게 언론노조와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양당 후보 모두가 아전인수식 해석을 하고 있지만 지역별 사전투표율을 보면 부동층 스윙보터, 특히 수도권의 경우 아직 지지 후보를 결심하지 못한 표심이 상당한 걸로 보인다. 각 후보들이 남은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 유권자들을 설득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음모론적 세계관에 설득되리라는 기대는 유권자들의 수준을 우습게 보는 것이다.

물론 이런 문제에선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도 벗어나지 못한다. 이재명 후보의 문제는 음모론이라기 보다는 속이 보인다는 데에 있다. 이재명 후보는 유세 종반부 전략을 젊은 여성층을 겨냥하는 것으로 잡는 듯 보인다. 이전까지는 특정 유튜브 채널 출연을 거부하는 등 오히려 ‘이대남’ 표심을 의식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제와서 n번방 사건을 고발한 박지현 씨 등을 전면에 내세우는 선거 캠페인을 어떻게 봐야 할까? 상대 후보에 ‘이대남 마켓팅’의 상징인 이준석 대표가 있지 않았다면 효과를 보기 어려운 방식이었을 거다.

선거를 열흘 남짓 남겨놓고 벼락치기 하듯 나온 정치개혁을 고리로 한 선거연대 및 통합정부 구성 제안도 마찬가지다. 선거법 개정을 위성정당 창당으로 걷어 차버린 이력이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 이재명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이 정치개혁 의제를 실제로 진정성 있게 밀어 붙일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유권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안철수 후보가 윤석열 후보와 단일화를 선언한 이후 이재명 후보의 정치개혁 주장은 동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그러나 이런 저런 믿을 수 없는 대선 후보들의 발언과 행보 속에서도 유권자는 누군가 한 사람을 선택해야만 한다. 결국 뭘 구체적으로 믿는다기보다는 한 번 더 속아준다는 심경으로 지지 후보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최소한 성의는 있어야 한다. 최악의 비호감 대선이라고들 하는데, 그건 이런 저런 논란 때문만이 아니다. 각 후보부터 선관위까지 이렇게 모두 성의가 없는 대선이 처음인 것이다. 유권자들은 불행하다. 이제 며칠 남지도 않아 후보들에게 무슨 변화를 주문하기도 어렵다. 각자 알아서 현명한 판단을 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선거에서 지지 후보를 정해 한 표 던진 유권자는 앞으로 ‘생존자’로 불러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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